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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4 15:58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인천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2)

“80년대 초만해도 인근 대성목재 삼미사(목재소) 동일방직 INI스틸(옛 인천제철) 인천항 부두 근로자들이 많이 몰려 들었다”

 “낡고 허름한 냉면집에서 작업복 입은 근로자들이 덕담을 나누며 냉면을 즐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인천 지역 언론인이었던 고 고일(高逸)씨가 1955년 펴낸 ‘인천석금’에는 ‘사정옥과 평양관에는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는 생생한 장면들이 묘사돼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직접 찾는 손님보다는 주문이 많았다. 서울등 먼거리까지 자전거에 냉면목판을 싣고 배달한 시절도 있었다. 배달원들이 마치 자전거경주대회를 여는 듯 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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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촘 양이 많아서 한그릇으로는 부족하더라구.

 그래서 무한 리필이라는 말에 삘 받아서 바로 사리 추가를 외쳤더니 이렇게 주시는거

야. 김치와 시원한 냉면 육수, 사리는 무한이니깐 점심부터 저녁까지 버텨볼까 살짝 생각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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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인터뷰 -  박봉규(인천,45세)

 

89년부터 19여년 정도 단골로 출퇴근을 하셨다는 박봉규 씨.


박봉규 님께 아저씨 냉면은 어떤 매력이 있어, 계속 찾게 되나요?

- 양이 푸짐하고, 가격은 저렴하고 맛도 좋아서 계속 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아저씨께서 단골들을 안 잊어요. 저는 사장님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오기 시작했지요.

 

오랫동안 아저씨 냉면을 찾으셨는데, 아저씨 냉면과 얽힌 사연이 있으신가요?

- 저는 이곳에서 연애를 했습니다. 제 데이트 장소였지요. 그 때는 냉면을 반도 못 먹고, 주인아저씨께 냉면 반만 달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화평동 냉면거리의 역사를 아시나요?

- 20년 전만해도 냉면 거리는 없었어요. 화평동 냉면은 갑자기 알려지게 되었지요.

아저씨 냉면도 원래 이곳에 있던 게 아니라, 2번이나 이사를 해서 지금 이 자리로 오게 되었어요.

 

 

냉면은 예전 그대로 인가요? 아니면 달라졌나요?

- 예전과 달라진 점은 옛날에는 살얼음이 아니라 큰 얼음 하나가 냉면 속에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처음 왔었던 80년대 후반에는 냉면 값이 800원이었지요. 그때 당시에도 동인천에는 먹을거리가 많았는데, 2000원만 가지고 있어도 무척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군인들도 많이들 오곤 했어요.

지금은 많이 비싸진 거죠. 그래도 국물이 담백한 건 여전하네요.

또 예전엔 가게에 다락방이 있어서 운치가 있었고, 가끔씩 그 다락방이 기억도 나지만 지금은 현대식으로 개발돼서 옛날에 비해 정은 많이 없어진 거 같아요.

 

아저씨께서는 사진에 보이는 사모님과 결혼에 골인 했다고 하시니, 이 곳이 추억의 데이트 코스이자 살아 있는 역사시지.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인터뷰를 정말 친절하게 잘 응대해주셔서 감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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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일에 가린, '원조' 아저씨 냉면 사장님 인터뷰

 

 "세숫대야 냉면은 손님들이 만든 거야. 예전에는 냉면도 곱빼기, 보통 이렇게 따로 있었는데 단골 관계가 성립되면서 자꾸 드리고 하니까 지금 말하는 세숫대야 냉면이 된 거지. 손님들이 원하는 것을 맞춰 드린 거지. 우리가 세숫대야 냉면이라고 타이틀을 걸지 않았었어."

 

 

 냉면거리의 살아있는 역사이신데 그 특별한 역사를 말해주세요

-  피난민들이 6.25 사변 이후에 서울과 근접해 있는 이곳으로 많이 건너오셨는데,

할 수 있는 것이 냉면 음식점을 차리는 것이어서 여기서 냉면을 팔기 시작했어.

옛날에는 냉면이 누구나 먹을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중산층 이상에서 먹을 수 있었어.

 

내가 개업할 때만 해도 화신면옥하고 경인면옥이 있었는데, 냉면 한 그릇이 4500원이었어.

그런데 대성목재 한 달 월급이 10년 정도 다닌 사람이 48000원이었어.

그러면 냉면 11그릇이면 10년 정도 다닌 사람의 월급이었단 말이야. 그렇게 누구나가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아니었단 말이야. 그때 내가 500원으로 개업을 한 거야.

 

그래서 전국의 냉면 값을 다 다운시켜 놨어.

그런 데들이 역사가 있는 집들이야.

화신면옥은 없어지고, 경인면옥은 남아있는데, 폐업상태까지 와있어.

그래서 여기가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짜장면 집 같이

누구나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낸 거지.

 

그래서 여기에 줄을 서서 잡수시다가 IMF때 사람들이 퇴직금을 받거나 구조조정으로 나오거나 해서 돈을 아껴야 한다는 긴박한 마음을 갖고 두 분이나 세분이서 2~3만원으로 점식식사 하던 것을 우리는 네 분이 잡수시면 만원이고, 양도 푸짐하고, 저녁때까지 포만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드렸고,

맛도 맞춰드렸고 그때 당시 여기가 포화상태가 됐던 적이 있었어.

가게가 성황을 이뤘을 때는 냉면 집이 스무 개였어, 지금은 아홉 개 밖에 없어.

예전에는 직원들도 두고 했지만, 지금은 알찬 경영을 하고 있지.

그래서 옛날 1.4후퇴 때 넘어오신 분들의 냉면 맥을 계속 이어오다가,

 

 그 맥은 어느덧 끊어졌고 내가 새롭게 만들어 낸 거지. 옛날에는 다데기가 들어가는 냉면이 없었어. 내가 옛날에 일식을 했어서,

그 경험을 냉면에 적용해서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 거지.

실향민들과의 관계는 이젠 사라지다시피 한거지.

다른 관계가 있다면 옛날에 여기에 부두 노동자가 많았으니까,

그 분들이 여기에 많이 찾아 주셨지. 지금도 가끔씩 오시고.

 

 


그럼 여기 가게 오픈일은 언제인가요?

- 오픈일은 80년대 초쯤 될 거야. 아저씨가 여기 테이블 두 개로 시작했어.

 배달도 하면서 손님들을 몰고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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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께서 사장님이 손님들 얼굴을 다 기억하신다고 말씀해 주신 게 인상적_

 

 


  가게를 시작하시고, 예전이랑 바뀐 점은 없나요?

- 우리 집은 옛날이랑 바뀐게 모냐면 옛날에는 냉면에 배를 넣어주던 것을 국물에 과일을 갈아 넣어드리는 거야. 달라진 건 없고 과일을 국물 만드는데 많이 쓰는 거지.

 

 

 

 음식이 아니라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질려서 하겠어요. 그 일 자체를 먼저 사랑해야지.

 

저희가 건국 60주년을 기념하여,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혹시 사장님께서 건국 60년 동안 기억에 남는 역사적 사건이 있으신가요?

- 그런 건 어두워. 내일 외에 그 밖에 일은 어두워. 대학에서도 자기 전공을 열심히 하면 다른 과목을 등한시하게 되잖아. 내일을 열심히 하면서 다른 거를 잃었다고 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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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때? 건빵국방에서 야심에 차다 못해 활기차게 연재할

 '우리, 먹으러 갑니다 '

 

역사도 되새기고, 데이트할 맛집정보도 알고!! 일석 이조?!

응원 댓글도 부탁한다구!

 

다음에도 맛있는 거 먹으러 고고씽~!!!

 

 

 

  국민과 함께 Smile, 60년지기 국방부   

              공感, 의食주, 육해空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국방부가 함께합니다 :)

 

 

사진 출처 :

1)싸이월드 동영상 - 레몬 먹는 아기

http://video.cyworld.com/clip/view?video_seq=62036513

2)DC Inside - HIT 갤러리

http://gall.dcinside.com/list.php?id=hit&no=5481&page=1&search_pos=-3456&k_type=0110&keyword=%EB%82%98%EB%8A%94+%EC%A0%84%EC%B2%A0%EC%9D%B4%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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