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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6 11:04

나라를 지킨 '아이들', 학도병 이야기

나라를 지킨 '아이들', 학도병을 아시나요?

 

 학도병 [, student soldier]

 

                    전쟁 또는 사변시에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자진하여 적과 싸운 의용병



 약 반 세기 전이었던 1950년에 설립되어 군 중에서도 학도의용군이라고 구분되는 학도병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략을 저지했던 지금의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의 나이로 전쟁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실제로 6.25 전쟁 뿐만 아니라 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한국의 젊은 학생들을 일컫기도 합니다.


 지난해 6월 22일 오후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 한적한 시골마을 뒷산에서

 군번줄없이 9시 20분을 가리킨 채 멎어 있는 손목시계와 녹슨 숟가락도 발견된 유해로 인해 안타까움을 주었던

이름 없는 학도병 발굴을 비롯해 이번 해 7월 강원도 고성 건봉령을 비롯한 곳곳에서 학도병들의 유해가 발굴되고 있지만

아직 수많은 유해들이 아직도 차가운 땅 속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떤 일을 겪었던 것일까요?

 







1950年 6月 27日 , 29日

 충남의 한 중학생의 일기장에서는 당시 상황을 몰라 불안해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터진 후 이틀이 지나고 우리 나라에 찾아왔던 전쟁은

 그 당시 학생이었던 아이들에게는 실감나지 않는 일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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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육자료박물관

유월 이십칠일 화요일 청(晴)

"이제껏 가정실습으로 인한여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세사(世事)와 국가에 대변(大變)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썼(었)는데 금일 학교에 가니 교장선생님께(서) 25일 오전 6시에 북한군이 월남했다는 소식을 전하여 주는데 백천, 옹진, 장단, 강릉, 연백 다섰군데라고 하였다."

유월 이십구일 목요일 운(蕓)

"학교에 가보니 정부가 대전으로 이동하였다고 하며 수원에 참모부가 왔고 한강철교가 끊혔다는 소문이 들렸더라..."




 



 1949년 학교마다 설치되었던 학도 호국단이
전쟁이 발발하면서 학도 의용대로 바뀌면서부터 학도병들의 공식적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에서 3주간의 훈련을 받은뒤 소총 한 자루와 담요,
그리고 몸에 맞지도 않는 군복을 지급받고는 전방에 바로 투입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당시
무척이나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라를 위해서
그들의 꽃다운 자신들의 젊음과 애국심만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에게는 군번이 부여되지 않았으며
 군복을 지급받지 못한 많은 학생들은 학교 교복을 입고 전쟁에 뛰어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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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전쟁 기간 중 독립유격 제1대대, 제3보병사단 학도의용군 중대, 육군 정훈대대, 학도 포병의용대 등으로 조직돼

휴전 때까지 약 5만 명의 대원이 직접 전투에 참전했다고 합니다.

 또 27만 대원들이 후방 선무공작 등을 통해 군을 지원했으며

그 중 7000여 명이 꽃다운 나이에 조국을 위해 산화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는 국내 학도병 조직뿐만 아니라 재일 교포 민단 학생들로 구성된 재일 학도의용군 700여 명도

바다를 건너와 전후방 각지에서 나라를 위해 전쟁이 뛰어들었다고 하니,


 그 당시 우리 학생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용기와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필요한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가시나요?












1950年 8月 11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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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도병들이 참가했던 가장 참혹했던 전쟁으로 8월 11일의 포항여중 전투를 드는데

당시 포항여중을 지키라는 임무를 하달받았던 학도병 71명 중

전사자 47명과 부상자 17명이라는 비참한 결과만을 남기고 끝났던 전투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각 학도병당 당시 M1소총 한 정과 실탄 250발만을 지급받았기 때문에

실탄을 다 쓴 후에는 무방비 상태로 많은 학도병들이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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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사진_ 광주 전투 이후 조국을 위해 몸을 바쳐 싸웠던

                  학도병 전사자, 부상자들


  위쪽 사진_ 6.25 유해 발굴 중에서 발굴 된

                  학도병들의 만년필들



 최근 유해 발굴 사업으로 유해가 발굴되었던,

적의 포탄에 의해 32명 전원이 전사했던 강원도 고성 건봉령 전투 역시도

아픈 기록으로 기억되어있습니다.




 학도병, 그들은 우리와 다른 시대를 살았고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들은 지금의 우리 아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지금의 우리 아이들보다 아주 튼튼한 것도 아니었고

 그들이 지금의 우리 아이들보다 훨씬 키가 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몸 하나를

 대한민국을 위해

 바쳤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전쟁의 피해자들에 대해

 어렴풋이 어른들 뿐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과 같이

 또 지금의 대학생들과 같이

 어리고 밝고 순수하기만한 아이들이

 나라를 위해 총을 들어야만 했고

 자신을 방어해주는 군복 하나 없이

 교복을 입고 전쟁에 뛰어들었던 학도병, 그들도 역시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었던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군번조차 없어서 제대로 된 기록없이

 차가운 흙 속에 묻혀있던 그들을 찾아내는 것이

 지금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요




 1950년 8월 포항여중 전투에 참가한 학도병 이 우근의 일기입니다.
이 우근은 국군 제 3사단 소년병으로 포항여중 앞 벌판에서 전사했습니다.
이 일기는 그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이 글은 어느 여군 정훈장교에 의해
기록되어졌는데 수첩의 핏자국으로 인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1950년 8월 10일 쾌청
 
어머니, 전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두고 10명은 될 겁니다.
 
나는 네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 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이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론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 입히는 壽衣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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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병들이 출정 전 태극기에 쓴 맹서와 각오


 

 
 

 2007年 6月 4日

 국가에서는

6.25전쟁 중 혁혁한 무공을 세웠지만 관련 법령의 미비와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사정으로 수여하지 못하고
세월 속에 묻혀있던 훈장을 반세기 만에 주인에게 되돌려준다는 취지로 무공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오전 11시 52사단에서 무공훈장을 받은 이재학(75.서울시 강서구 공항동)씨는

"젊은 혈기에 나라를 지키고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해 군복도 없이 교복을 입고 싸웠다"며

"포신이 휘어져 포탄이 바로 눈앞에 떨어지는 치열한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훈장까지 받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직도

 많은 유해들은 가족의 품에 돌아가지 못하고 차가운 흙 속에 묻혀있습니다.















 2008年

  60여년이 지난 지금,

 여러분들은

 학도병을 기억하시나요?

 
















  국민과 함께 Smile, 60년지기 국방부   

              공感, 의食주, 육해空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국방부가 함께합니다 :) 

 

 

■ 출처 ■

학도병 정의 _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85432

 

□ 사진자료 _ 중학생의 일기장

오마이뉴스 2007-06-25 14:25 [전쟁이 났다는데, 오늘 학교에 가야 하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8521

 

□ 학도병의 역사적인 기록 참고자료 _ 국방일보 2007년 04월 25일 [시론-학도병들의 유해도 찾는다]

□ 학도병 사진, 포항 전투 _ 블로그

한국전쟁 학도병편

http://blog.naver.com/ja767676?Redirect=Log&logNo=70018826899

 

□ 사진자료 _ 학도병 만년필

중앙일보 [한국전쟁 참전 4개국 유품들]


□ 학도병 자료, 강원도 고성 _ 강원일보 2008년 04월 15일 [가슴에 묻었던 소대원 찾아왔어요]


□ 훈장수여자료/ 이재학 수여자 인터뷰 _ 연합뉴스 2007-06-05 10:04  [당신의 훈장을 이제야 드립니다]

기사입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130&aid=000002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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