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8.02 2기 지하철 이야기♬ (5~9호선), 재미로 보는 환승거리!
  2. 2008.07.30 서울 지하철 시리즈 : 2. 2호선 처음 계획은 순환선이 아니었다?
  3. 2008.07.30 서울 지하철 시리즈 : 1. 1호선 건설 과정의 Behind Story♬
  4. 2008.07.30 서울 지하철 시리즈 : Prologue.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
2008.08.02 16:46

2기 지하철 이야기♬ (5~9호선), 재미로 보는 환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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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시리즈

 

4. 2기 지하철 이야기♬




앞선 1-4호선이 서울 1기 지하철이라면,

5-8호선은 2기 지하철이라 볼 수 있다.

기존 노선으로 이동되는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서울시 어디든지 지하철 하나로 갈 수 있기 위해 만들어진 2기 지하철.



1995년에 5호선 왕십리-상일동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1996년에 여의도-왕십리 구간까지 5호선이 완전히 개통되었다.


광화문 사거리에는 지하보도가 있는데,

5호선 개통 이전에는 횡단보도를 대신하는 지하도 역할만 하다가,

5호선이 개통되면서 지하철 역까지 이어주는 통로가 되었다.

최근 지하보도 중앙에 작은 문화공간이 들어서서

오가는 시민들에게 작은 휴식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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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지하보도이자 광화문역으로 들어서는 입구.

들어가면 지하도 가운데에 광화랑이라는 문화공간이 있다.

출처 : http://blog.naver.com/yb0829?Redirect=Log&logNo=60048506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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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지하도 안 모습. 리모델링 이후 훨씬 깔끔해진 느낌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inleem?Redirect=Log&logNo=140008838601)



1996년에는 7호선 장암-건대입구 구간이 개통되었다.

2000년 건대입구-신풍 구간을 마지막으로,

7호선 역시 완전히 개통되었다.


현재 이 7호선은 강남 지역에서 2호선과 나란히 달리고 있는데,

이는 너무 남쪽으로 치우쳐져 달리는 2호선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2호선의 과밀화를 일부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1996년에는 8호선 잠실-모란 구간 역시 개통되었다.

그리고 1999년, 암사-잠실 구간이 개통되어,

8호선 역시 강동 지역에서 대중교통 역할을 착실히 하고 있으며,

분당에서 서울까지 좀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에는 6호선 봉화산-상월곡 구간이 개통된다.

2001년, 시공 업체 부도 등으로 잠시 지연되었던

약수, 이태원, 버티고개, 한강진 4개 역까지 완공되면서,

6호선 역시 완전히 개통되었다.


6호선 역들중에는 녹사평역이라는,

지하역이지만 자연 채광이 들어오게끔 디자인되어

정말 예뻐서 흡사 호텔 로비같은 느낌을 주는 역이 있는데,

이 역에서 종종 드라마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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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평역에서 촬영된 KBS 드라마 '마왕'. 중앙에는 완소 신민아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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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디자인된 녹사평역. 출처 : 左 http://blog.naver.com/bohe76?Redirect=Log&logNo=31645427 

http://photo.naver.com/view/2007090422074141485)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9년 개통 예정인 9호선!

9호선은 서울메트로나 한국도시공사가 아닌,

최초로 민간 기업이 건설, 운영하는 노선이다.

1차로 김포공항-강남 구간이 2009년에 개통되는데,

서울을 동서로 오가며 주요 지역을 모두 통과하기 때문에,

황금노선(Golden Line) 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때문인지 9호선의 열차 색깔 역시 금색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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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달리게 될 9호선 열차. 세련된 디자인이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3&aid=0000172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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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공사중인 9호선 역들. 왼쪽은 교보타워 사거리에 세워질 신논현역.

오른쪽은 3, 7호선과 환승이 되는 고속터미널역.

출처 : 左 http://blog.naver.com/olha?Redirect=Log&logNo=30033944291 

http://blog.naver.com/olha?Redirect=Log&logNo=3003218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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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선 노선도. 출처 : http://www.metro9.co.kr/img/03.operationPlan/04img02.gif)





p.s

재미삼아 보는 역 간 최대 환승거리!



1기 지하철을 건설할 당시에는

2기 지하철까지 건설되리란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2기 지하철을 건설하면서 생겨난

1기, 2기를 연결하는 환승역들 중에서는 종종,

엄청난 길이-_-의 환승통로를 지닌 역들이 있다.

다음은 그 대표적 예들이라 할 수 있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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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 간 환승거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하는!

4, 7호선 환승인 노원역.

노원역을 환승하지 않은 자,

환승거리를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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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만만치 않게 긴 2, 8호선 환승인 잠실역.

환승 통로에 역을 하나 더 세워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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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 5호선 환승인 동대문운동장역.

2, 4호선 환승은 매우 가깝지만,

2, 5호선 환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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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5호선 환승인 종로 3가역.

3호선이 없었다면 1, 5호선은 환승역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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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호선 환승 신길역.

길이는 별로 안 길어보이지만

지상노선인 1호선과

지하노선인 5호선의 환승 높이는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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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호선 환승 신당역.

환승역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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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 글을 쓴 교통부 보좌관이 자주 이용하는

2, 6호선 환승 합정역.

합정역 같은 경우는 합정역 버스 정류장이

2호선, 6호선 따로 있을 정도이다. -_-;;



앞으로 지하철을 환승할 때에는,

가급적 위 역은 피해서 환승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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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17:33

서울 지하철 시리즈 : 2. 2호선 처음 계획은 순환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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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시리즈

 

2. 2호선 처음 계획은 순환선이 아니었다?



1974년 어느 날, 안국동의 한 한식집에서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구자춘

홍익대 도시계획과 교수 김형만이 만났다.

김 교수는 서울은 이제 4대문 중심의 단핵도시에서

도심, 영등포, 영동(강남)을 중심으로 하는

3핵도시로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구 시장은 그 의견을 깊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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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된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노선)


앞서 양택식 시장 때 1호선을 계획하면서

2-5호선의 노선 역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영등포-왕십리까지의 구간으로 확정되었던

2호선 노선을 구자춘 시장은,

3핵을 중심으로 서울이 발전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강북 도심-영등포-영동(강남)-잠실-왕십리를 오가는

순환 노선으로 변경해버린다.


"구로공단 앞은 통과해야겠지."

"서울대 앞도 지나야겠지."

"대학가 앞이니 신촌도 지나야지."

1975년 2월 초순, 대통령 연두순시를 앞둔 어느 날,

도시계획과장과 지하철건설본부장을 시장실로 부른 채,

구자춘 시장은 색연필을 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서울시 지도에 선을 그어 나가기 시작했다.

20분 후, 서울시 지도 위엔

둥그런 형태를 띈 노선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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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된 서울 지하철 2호선 노선)


단 20분만에 단일노선이 순환노선으로 바뀌어버렸다.



본래 열차 노선은 단일노선이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때쯤,

순환노선이 만들어지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당시는 겨우 막 1호선이 건설된 시점.

이러한 상황에서도,

구 시장이 강하게 주장하는 '순환노선 기획안' 이라는

이 엄청난 프로젝트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고,

1978년 3월 9일, 이 계획대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착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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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건설 사진.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영상에서 캡쳐)


그리고, 순환 계획에 따라 차례로 노선이 건설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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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성수-신설동-종합운동장-교대-서울대입구-시청의 순환선.



도심을 통과하는 을지로선까지 건설하자,

1984년 5월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시공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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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 시공식 때 시청역을 달리는 2호선. 右: 2호선 시공식 때 참석해서 축하하는 대통령.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순환선인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전 구간 48km가 순환선으로 완전히 개통되어,

시민들의 교통이 한결 편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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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로터리 앞과 서울시청에 걸린 2호선 전 구간 개통 축하를 알리는 표지판.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지하철 노선 선정과 계획은 많은 전문가의 동의를 구하며

신중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찌 보면 너무 대충 계획된 노선이겠지만,

현재 2호선의 역들은 서울의 주요 지역모두 통과하고 있고,

한강 이남 지역 인구가, 특히 영등포-구로-관악-강남에서만

1266000명이 늘어난 사실로 보아,

3핵도시론과 지하철 2호선이 서울에 끼친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실제로 2호선 건설로 인해,

서울의 4대문 내에만 집중되었던 도시 기능인구

점차 다른 지역으로 분산되었기 때문이었다.



지하철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면서,

지하철뿐만이 아니라 지하도 역시 같이 건설되었다.

이곳은 지금도 서울의 중요 상업지역으로 이용되는데,

을지로 지하에 있는 대략 3km가 넘는 지하 쇼핑센터

그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본인은 그곳에서 길 잃어버린 적이 정말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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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건설 때 같이 건설된 을지로 지하보도.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이렇게 건설되기 시작한 지하도가... 현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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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차례로 을지로, 영등포,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사진.

출처 을지로 : http://wow.seoul.go.kr/wow/photo/photo_thum_view.jsp?num=214024

영등포 : http://wow.seoul.go.kr/wow/photo/photo_thum_view.jsp?num=4426

고속터미널 : http://wow.seoul.go.kr/wow/photo/photo_thum_view.jsp?num=4698)


이러한 모습으로 변해, 상업지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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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17:19

서울 지하철 시리즈 : 1. 1호선 건설 과정의 Behind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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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시리즈

 

1. 1호선 건설 과정의 Behind Story♬




자, 이제 드디어!

1971년 4월 1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서울역-청량리 구간의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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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착공식. 출처 : 대한민국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 http://www.visionkorea60.go.kr)

경인(서울-인천), 경수(서울-수원) 기공식 역시 같은 해 4월 7일 인천 공설운동장에서

화려하게 거행되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이라면,

남영-서울역, 청량리-회기 구간에서는 잠시,

지하철은 멀쩡히 잘 달리고 있는데

지하철 내의 거의 모든 전등이 꺼지는

기이한 현상 을 체감할 것이다.

그 현상의 해답 역시, 이번 시리즈에 있다.




앞 시리즈에서,

철도청은 서울 외곽 지역 철도를 전철화 하는 공사를 맡았고,

서울시는 도심 지하철 구간 지하철 건설을 맡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데...

철도 전철화는 25,000볼트의 교류 전원을 사용해야만 했다.

지하철 건설은 1,500볼트의 직류 전원을 사용해야만 했다.

철도청의 기존 철도를 지하철에 맞춰 1,500볼트로 하면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 문제였다.

반대로 지하철을 철도에 맞춰 25,000볼트로 하면

전화선에까지 전류가 흘러들어 통화 장애  가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전류 방식이 다르다고 중간에 지하철을 갈아타게 만든다면

시민들의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지하철은 직류로, 철도는 교류로 하기로 하고

열차는 직류/교류 겸용으로 달리게끔 결정하였다.

물론 직/교류 겸용 열차가 단용 열차보다는 단가가 훨씬 비쌌지만,

시민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야 가격쯤은 감수해야 하는 법...

때문에 전류가 바뀌는 남영-서울역, 청량리-회기 구간에서는


류가 일치하지 않아 일시적으로 열차의 전원을 끈다.



그래서! 열차 내의 불이 모두 꺼지는 것이다.

그리고 열차만 관성으로 계속 주행되는데,

이를 사구간(dead section)이라 한다.

전류 방식이 바뀐 다음에는, 다시 전동차의 전원을 켠다.

전류 문제는 해결했으니 이제 공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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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앞 공사사진. 멀리 당시 서울역 모습이 보인다. 출처 : 국가기록원 영상에서 캡쳐)




지하철(地下鐵)이지만 1호선은 그리 깊이 굴착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지하에서 터널식으로 뚫지 않고 지상에서 바로 파고 들어가는 방식을 채택했다.

공사비가 적게 들고 공사 기간도 단축되었지만

시내 곳곳에서 교통 혼잡같은

시민들의 엄청난 인내와 희생을 불러왔다.

특히나 70년대에는 서울이 개발되지 않아

서울역-종로 구간이 서울의 가장 혼잡한 지역이었을 터...

안 그래도 혼잡한 구역에서, 시민들의 불편함은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근대화와 앞으로 있을 생활의 풍요를 위해

시민들은 정말 고맙게도 공사의 불편함을 참아주었다.

어찌 보면 시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이라 볼 수도 있었겠지만,

보다 발전될 나라를 위해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준

당시 시민들에게 감사를.




서울 지하철은 일본의 동경과 오사카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 시도였다.

1972년, 지하철 공사가 진행되던 당시,

한국의 GNP겨우 300달러에 불과했다.

국민 한 사람이 일년에 대략 30만원 정도만 벌던 시기에,

우리나라는 지하철 건설이라는 대업을 이루어낸 것이다.

시민들도 지하철 건설이 신기해 구경하고 싶어하였고,

건설본부는 지하구간 공사 현장을 시민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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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공사 시기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 영상에서 캡쳐)

(혹시 그때 구경해보신 분 계신가요? )



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서울 지하철이 상당한 이슈가 되었던 바,

대만의 교통부 장관공사 현장을 시찰하기도 했고,

시운전 때에는 하와이 호놀룰루 시장인도의 외무부 장관도 시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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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운전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 영상에서 캡쳐)




1974년 8월 15일...

드디어 서울역-청량리 구간,

서울 지하철 개통!

이 구간을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13분.

지하철 건설은 실로, 진정한 대중교통시대의 막을 열었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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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날은 애통하게도 장충동 국립극장 광복절 행사에서

당시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운명한 날이었다.

그리하여 개통식에는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한 채

국무총리와 대법원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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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식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 영상에서 캡쳐)


비록 개통식 날 비극적인 일이 있었지만,

1호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서울에서

도심 구간의 확실한 교통수단 역할을 해왔으며,

대한민국을 발전하게 만든 주 원동력인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었다.




(위 컨텐츠는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 2 (손정목. 한울)' 를 토대로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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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17:13

서울 지하철 시리즈 : Prologue.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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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시리즈

 

Prologue.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




1955년...

서울의 인구는 대략 157만 명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70년...

서울의 인구는 대략 553만 명으로 증가했다.

인구의 증가는 무엇을 의미할까?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면 개인의 업무량과 교제량이 증가하면서

필연적으로 교통 인구  가 증가하게 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서울의 인구에 따라

서울시는 1965년 그 이름도 찬란한(?)

'시정 10개년계획안' 을 발표하게 된다.

이 계획에서 서울시 관료들은 제 1차적으로

14.88km 길이의 지하철 노선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다.

당시 서울 시장이던 김현옥은 교통난 완화책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서울시의 온갖 교통도로를 건설 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다니던 전차를 없애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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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서울을 가로지르던 전차. 사진출처 : 광화문 연가 (이영미. 예담) )


당시 전차는 성인 남자가 달려가면 잡아탈 수 있을 정도의 속력이라

대도시의 교통수단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별명이 불도저이던 김현옥 시장마저도 지하철 건설마저는 쉽게 구상하지 못하는데

이유는 짐작했겠지만... 바로 '돈'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음 임기를 맡게 된 양택식 시장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하철 건설만은 하리라고 굳게 다짐한다.

그리하여 양택식 시장은

"서울의 교통난을 해결하는 길은

조속한 시일 내에 지하철을 건설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면서,

아주 강력하게 본인의 의사를 주장한다.




하지만 세상 일은 쉽지 않은 법...

그 당시 우리나라의 예산은 정말 바닥을 기고 있었고 (-_-;;)

따라서 외국 차관이 필요했던 바, 차관을 빌리려면 경제기획원 장관의 승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부총리 자리를 맡고 있던 김학렬

양택식 시장의 지하철 건설 계획을 듣자마자

단 한 마디로 그 계획을 일축한 후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와 같이 보고한다.



"각하, 서울에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



당황스러운가?

당시 그 보고를 들었던 박정희 대통령 역시 이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당시 김 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현 단계는 아직도 긴축경제가 필요하다, 안 그래도 인구 증가가 격심한 서울에 지하철 건설 같은 대규모 건설을 실시하면 인구의 격증 현상이 가중되며 주택난과 교통난도 훨씬 심각해진다, 아직 한국은 GNP가 200달러밖에 안 되므로 지하철은 투자의 우선순위가 되지 못한다..."

와 같은 논리정연한 말을 기관총 쏘아대듯 빠른 템포로 보고했지만,

대통령의 뇌리에 남는 말은 오직 하나.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

 


당시 버스 위주 시내교통한계  에 다다른 탓에

새로운 교통수단이 필요한 때라는 것은 대통령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

"지하철을 건설해야 서울의 교통난이 완화된다" 라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 중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갈등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당시 주일대사였던 이후락이 잠시 한국에 귀국했다.

평소 이후락 대사를 신임하던 박 대통령은 지하철 건설에 관해 의견을 물었고,

이후락 대사는

"지하철 건설은 세계적인 대도시의 공통된 추세"

라며 지하철 건설이 시급하다 주장한다.

사실이 그러했다. 당시 선진국의 대도시에서 지하철이 없는 도시는 없었다.

이제 대통령은 오히려 경제기획원 장관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부는 1970년 제4차 한일 정기 각료회의에,

서울 지하철 건설에 일본이 경제적, 기술적으로 협력해주길 요청했고,

일본은 그에 찬성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우리나라의 지하철 건설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금전적 문제였지, 기술적 문제는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의 토목, 건설 기술어느 정도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일본 정부는 차관 제공의 경제적 타당성, 일본 기술진의 협력 범위,

공사 지도 범위 등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에 교통조사단을 파견했다.

그들은 처음엔 한국의 토목기술 수준이 미흡한 상태라면

일본 기술진도 대거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찰 이후 토목, 건축기술에 관해서는

일본 기술진이 개입할 여지가 없음

확인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제,.

1. 서울역-종로-청량리를 연결하는 9.8km 구간 지하철 건설,

2. 서울역-인천, 서울역-수원, 용산역-성북 구간은 기존 철도를 전철화해 외곽 전철과 도심 지하철 연결,

3. 1974년부터 운영 계획. 도심 지하철구간은 서울시 담당, 외곽 전철구간은 교통부 담당.

을 축으로 하는 大 지하철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위 컨텐츠는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 2 (손정목. 한울)' 를 토대로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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