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8.08.09 대한민국, 21세기 장보고를 꿈꾸다
  2. 2008.08.09 [번외편] 교통부 블로그, 과연 몸값은 얼마?
  3. 2008.08.07 여의도에 비행장이????????? (1)
  4. 2008.08.07 내 아녀자된몸으로 어찌 반소매,통치마를 입으리까???
  5. 2008.08.05 놈놈놈 패러디 - "기적왕"
  6. 2008.08.04 [풍요의 기적] 이제부터 막걸리를 먹을 수 없다구요?!
  7. 2008.08.04 "님은 먼곳에" 그 속에감춰진 비하인드 스토리...
  8. 2008.08.02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2)
  9. 2008.07.29 국민과 함께하는 건국 내각 EVENT!! - 교통부
  10. 2008.07.26 SBS 토론 시시비비 건국 60주년 특집(08. 07. 18)
2008.08.09 23:03

대한민국, 21세기 장보고를 꿈꾸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다.

그리고 대륙으로 이어지는 북쪽의 땅은 아직은 갈 수 없는 곳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가야 한다.

 

그래서

 

외국外國이란 말도 많이 쓰지만

섬도 아닌 나라에서 해외海外로 나간다고 한다.


바다 밖으로 나간다.

 

대한민국 전도를 거꾸로 놓고 있는 지도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반도국가로 바다로의 진출이 용이하고

바다의 중요성이 그 만큼 크다 .

 

바다를 물류의 공간으로 더불어 이제는 바다를 자원의 보고로  보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해양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해양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국립해양조사원을 설립하고

바다 속과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바다에는 곳곳에 관측소들이 있다.

그 중 가장 특별한 곳이라고 한다면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남단 이어도


(출처 : 조선일보)

 

우리나라의 최남단이기에 남으로부터 올라오는  태풍을 제일먼저 관측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해양, 환경, 기상 관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어도는 우리나라의 대륙붕 위에 존재하는 암초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해양자원개발은 물론 이거니와 동북아 해양의 중심으로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해양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해양개발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독도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일본이 이를 노리는 이유는 독도의 자원과 독도의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이다.

독도의 바다 아래에는 하이드레이트라는

소위 불타는 얼음의 엄청난 양이 매장되어 있다.



(출처 : 한국경제일보)

 

고유가 시대, 자원 고갈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하이드레이트에 눈을 쏠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바다를 연구하고 바다를 개발하고 있다.

바다는 물류, 자원의 중심이 될 곳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다는

말 그대로 블루오션인 셈이다.


천년도 더 전에

장보고가 동북아시아의 바다를

이끌었다면

21세기의 동북아시아 바다는

대한민국이 이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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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10:01

[번외편] 교통부 블로그, 과연 몸값은 얼마?

  




7월 9일부터 지금까지, 한 달 동안 열심히 달려온 저희 교통부 블로그의 몸값은 얼마일까요?


7월 9일 오픈해서 지금까지 운영되어 온, 저희 대학생 사이버 건국내각의 교통부 블로그


다른 컨텐츠 포스팅을 준비하다가, 스스로 한 달간의 활동을 점검해 보기위해, 우리는 블로그를 평가하는 사이트를 찾았다.


그래서 우리가 찾은 곳은 블로그얌!이라는 블로그 가치 평가 사이트! (링크 - http://www.blogyam.co.kr/)


정확히 한 달동안 우리가 운영해온 블로그의 몸값은 과연 얼마일까? 우리는 어떻게 평가가 될까?


궁금증과 함께, 기본사항을 적고, 블로그 평가를 기다린 지 약 1시간, 드디어 평가가 되었다는 메일 도착!


두구두구두구두구!! 과연, 우리 교통부 블로그는 어떻게 평가되었을까?



↑ 교통부 블로그는 위와 같이 평가되었습니다.



두둥!!  우리 교통부 블로그의 몸값은 바로 481,310원!!


생각보다 낮은 몸값에 우리는 조금은 아쉬웠지만, 재미삼아 블로그를 평가하기 위해 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아래, 남은 기간 마무리를 잘 해내겠다는 다짐아래, 그냥 재미로 끝내기로 마음 먹었다 ^^



하지만, 이 평가로 인해 얻은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


우리는 정확히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에서 창조해 냈다는 것!


1948년 정부수립 ~ 오늘날까지, 건국 60년동안 기적의 역사를 창조해낸 위대한 국민들과 같이


     한 달만에, 블로그 상에서 의미있는 컨텐츠들을 창출해 냈다는 것!

                      또한 앞으로도 좋은 컨텐츠들을 계속 창출해 나갈 것이라는 것!



건국 60년동안 교통/건설/국토/해양분야에서 이루어진 기적의 역사길을 재현해 온 우리 교통부


위의 평가에서 나온 것처럼, 친절하고 꼼꼼한 블로그 주인의식과 대한민국의 주인의식으로


건국60년 동안 국민들이 많은 것들을 이룩해낸 것처럼,저희도 남은 기간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건국내각 교통부의 블로그 많이많이 사랑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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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17:14

여의도에 비행장이?????????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대한민국 60년 항공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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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라이트형제_http://magic.iin.co.kr/iin0112/war/summary/war.htm>


국내에 비행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라이트 형제가 비행을 한 후 10년 뒤인 1913년이였습니다!

비록 일본 해군중위 나라하라가 용산 연병장에서 떴다 내린 정도였지만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으로 기록되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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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항공기중 하나인 커티스 JN-4D_http://bemil.chosun.com/brd/view.html?tb=BEMIL105&pn=30&num=772>


이듬해 1914년 8월에는 다카사라는 일본 민간인이 미국의 커티스라는 복엽기로

용산에서 남대문까지 비행을 해 서울 시민을 놀라게 하기도 했답니다.

용산의 일본군 연병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이었던 셈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1922년 12월 모국방문 기념비행을 해낸 안창남이 바로  그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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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안창남:http://www.koreanhistory.org/webzine/read.php?pid=10&id=270>


1922년 12월 모국방문 기념비행을 해 한국인의 기개를 떨친 한국인 최초 비행사입니다!^^  


그렇다면 ?

 

한국 최초 비행장은?


네. 바로! 여! 의! 도! 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16년 가을, 당시 경기도 시흥군 여의도에 육군 간이비행착륙장이 개설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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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비행장의 위치>                                                                         <1920년 여의도 비행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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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여의도 비행장의 모습:http://blog.daum.net/tourofduty/5306827>


 

당시 여의도 비행장의 모습을 보면 알 수있듯이 간이비행착륙장의

모습일뿐 공항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24년 정식비행장으로 승격돼 민간항공기와 군항공기가 공동으로 이용하게 됐고


광복후 1948년 되서야 민간비행장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 최초의 민간항공사인 대한국민항공사(KNA)도 여의도 비행장에서 첫 취항을 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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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rlife.net/webzine/auto_read.html?page=2&gnum=19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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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carlife.net/webzine/auto_read.html?page=2&gnum=19263




그러나 여의도 비행장의 장마철 잦은 홍수로 인하여

1958년 1월, 공항의 기능을 김포로 이전하면서 여의도는 군전용 비행장으로 사용되다가

1971년, 개장 54년만에 폐쇄되고 그 이후 여의도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나 대규모 집회 장소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시민들의 안식처인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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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당시 여의도비행장 항공사진:http://airwar.hihome.com/airwar/korea/part3/korea-3-6.htm>






 


김포공항은 1939년 당시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에

일본군이 1천317 × 16미터 규모의 활주로 3개를 건설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이곳에 비행장을 만들고 가미가제 특공대 훈련장으로 활용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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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rlife.net/webzine/auto_read.html?page=2&gnum=19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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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rlife.net/webzine/auto_read.html?page=2&gnum=19263


해방후에는 김포공항의 관할권은 미군으로 넘어으며,
1951년에 2천268 × 45미터 규모의 활주로를 새로 건설,
김포공항을 미 제5공군 전용 활주로로 사용했습니다.


그 후 1958년 1월 미군측과 김포공항의 관리권을 3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한다는 협정을 체결,

드디어 1958년 3월 대통령령으로 김포공항을 국제공항으로 지정했습니다!


김포공항이 바야흐로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대한항공이 항공공사를 수한 후

동시에 5대의 비행기를 정비할 수 있는격납고를 1971년 1월에 준공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1973년 4월에 국내선 청사로 사용 중인 건물도 준공돼 하늘에서 내려다 봤을 때

그나마 공항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죠.


1980년대를 지나며 폭증하는 항공수요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또다른 청사의 건립은

시급한 당면과제였습니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김포공항의 주요 여건상 장애요인

(장애구릉, 주거지역 밀집, 북방 비행금지지역)이 고질적으로

 제기되면서 신공항건설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은 지구촌 시대에 전략적 산업으로 항공운송사업을 적극 육성 중이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2001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착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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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한산해진 현재의 김포공항의 모습: http://www.sz21c.com/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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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14:29

내 아녀자된몸으로 어찌 반소매,통치마를 입으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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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作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tiger6107?Redirect=Log&logNo=140006377269]



신생활운동에 따른 여자의복 개량이 남자들 항의로 중지


'내 아내는 배우나 여급이 아니니 면직을 당할망정 모델로 함은 이 이상 모욕을 참을 수 없소'하고 시청에 향하여 온 사건,

즉 시청 당국에서는 신생활운동 중의 하나로 여자의복을 신체제로 저고리를 동정도 없고 깃도 없이 소매를 반쯤 몽땅 잘라버린 보기에 좀 이상한 것을 장려하고 있는데

시에서는 이것을 일반에게도 보급 장려시키기 위하여 시 부녀과 부인들과 성년처녀들에게 입히고 시내 8구청을 돌며 구청 직원들과 일반에게 가정부인들로 하여금 과히 보이고 싶지도 않은 자기 얼굴과 기타 요모조모를 보이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계면쩍어서  "기생이냐, 갈보냐"하며 우락부락 분개하고 보이콧하는 중 그래도 시장 특명이라 하고 달래며 속행시키었다 하는데 드디어 남편들이 전기와 같이 궐기하였고 또 "내 딸을 함부로 뭇사나이들에 선보이는 것이냐"하고 부형들의 항의도 있자 이치가 그럴 듯하여 드디어 중지하기로 되었다고 한다.(자유신문 1949.7.17)


대한민국이 세워졌을 즈음에는 반팔옷이 이상해 보였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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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소매 바람으로 여름을 나자!

끈 나시와 초미니 스커트가 길거리를 활보하는 요즘은 반소매조차 더워보이지요?

49년의 신문기사를 하나 소개할게요~


반소매와 통치마를 입자는 신생활운동 전개

반소매바람으로 여름을 나자!

신생활운동의 선구로 여름에는 윗저고리 없이 반소매나 긴소매셔츠 바람으로 출입하고

여자는 통치마에 반소매 적삼으로 하자는 외침은 작년부터 인데 그 실천은 아직 철저치 못한 점이 있어

 서울시에서는 신생활 촉진회를 주동으로 요즘 솔선실행의 열을 다시 올리고 있다.


한편 여자층은 통치마 입기는 자진해 잘 되지만 차마 반소매 적삼은 통 귀뜸으로도 듣지 않는 모양으로

하다 못해 시에서는  우선 접대부들에게 솔선수범하도록 어제 시공관에 수백명을 모아 놓고

"반소매에 통치마 입읍시다"하고 권하고 있었다.


어제 시청직원의 실천은 어떤가 카메라를 돌려 봤더니 국장급은 학무국장 외 몇 분밖에 없고

그 이하 직원중에서도 절반이 될까 말까 정도였지만 아마 경찰국에서도 실천할 모양으로 이에 따라 차츰 반소매 시민은 늘 성싶다.

(경향 신문 1949. 7. 22)


사람들에게 반소매를 입히기가 저리도 힘들었었군요ㅋㅋ


신생활운동은요-

낡은 생활양식을 개선하고 국민의 생활의식을 높이려는 사회운동이에요 관혼상제의 간소화, 의식주 생활의 개선 따위를 꾀합니다.


운동계기는 다르지만 요즘 비슷한 기사 본적 있지 않나요?

쿨비즈 운동이랑 쫌 비슷하죠?

쿨비즈 운동은-NO타이, NO노상의인 시원한 차림으로 근무함으로써 냉방정도를 줄여서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운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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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5 11:37

놈놈놈 패러디 - "기적왕"



2008년 8월 10일 오전 7시 35분경
'SBS 건국 60주년 특집 굿모닝 세상은 지금'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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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21:06

[풍요의 기적] 이제부터 막걸리를 먹을 수 없다구요?!

 [풍요의 기적] 이제부터 막걸리를 먹을 수 없다구요?!


우리 서민들의 술,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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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주를 언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통과 역사가 어우러진 우리민족의 술! 하면 막걸 리가 떠오릅니다.


 


비오는 날

막걸리에 파전을 안주삼아

친구들 몇 명 모아놓고 소소한 얘기하면서 마시는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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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아는 사람만 아는 참맛일거예요^-^



물론 등산과 막걸리도 떼놓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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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막걸리도 못먹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구요?


아니..

술도 못먹게하다니......



조선 태종과 영조시대에는 연이은 흉년으로 인해

쌀이 원료인 술을 못먹게하는 금주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금주령은 현대에도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후

그 여파로 아직 기아에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상태에서

미국의 원조에 의지를 하고 있던 때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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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65년  양곡관리법을 실시하고

쌀로 술을 빚는 행위를 금지 하였습니다



그래도 밀가루로 막걸리는 있었답니다.

하지만 상상해보세요~

밀가루 막걸리 맛을....

사실 먹어보지않은 저도 잘은 모르겠네요..

분명한건!!!

예전 쌀막걸리만 했겠습니까~



그렇게 서민의 술 막걸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듯 하였으나...........



 1976년이후 연이은 풍작

통일벼 보급으로 생산이 늘고 쌀 재고량도 적정 수준을 초과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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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드디어
쌀막걸리리 제조를 금지한 지 14년 만인 1977년 12월 쌀막걸리 제조를 허가했습니다.



                                쌀막걸리의 등장은 그 해 10대 뉴스에 포함될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자

                         기억하기조차 싫었던 보릿고개와 이별했음을 알리는 대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밀가루 막걸리에 질렸던 애주가들은 쌀막걸리의 등장에 신이 났죠


쌀막걸리가 선보인 8일 서울 주점가는 마치 축제의 거리와 같았다고 하네요~
7시부터 술집은 발디딜 틈도 없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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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19:55

"님은 먼곳에" 그 속에감춰진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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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님은 먼곳에'에서

순이(수애 역)의 남편이 근무했던 곳인

호이안 지대는

영화 속 내용과는 달리

실제로는 '청룡 부대'의 작전지역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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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서로 다른 지역과

서로 다른 특수한 작전을 부여받은

각 부대원들은

전투 작전 중에 서로 만나

백마부대와 맹호부대의 '오작교 작전'처럼

함께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베트콩' VC.

무력 침공을 목적으로 한 그들과의 전투에

참가한 '님들'의 실제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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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에 참전했던 그들은

공산 세력으로 강제 통일하려한 북부 월맹에 대항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싸웠을 뿐만 아니라 ,



당시 베트남 국민들을 위한

대민지원 사업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하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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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왼쪽 위 부터


30포 의무대 위생병/ 경로 잔치 / 대민 지원 /   대민 진료 /도깨비 부대장 고아원 선물 /백마 도깨비 부대 / 백마부대가 건설한 백마로 /  백무부대가 건립한 귀순 용사촌 / 백마부대 대민 진료 / 백마부대가 건립한 백마 유치원 / 비둘기 부대 어린이 금연 운동 비둘기 부대가 준공한 난민 가옥 /  식수 공급 /진료소 /청룡부대 직업보도소 수련모습 / 투이호아 , 한국군 계속 주둔 요구 시위 모습 /

  

자~~그러면

'님은 먼곳에'

 영화 속 그 먼곳으로 갔던

 실제 '님들'의 이야기는 어떠한가?


'님은 먼곳에' 이야기처럼

우리나라가 해외로 파병을 보낸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1950년 6.25 전쟁에 의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미국 등의 강대국들에게

원조를 받았던 우리나라가


15년 밖에 지나지 않은 그 당시

다른 나라에 군사와

군수 물자를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1964~1973년,

그리고 그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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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에 있는 베트남은

그 북단을 중국과 접해있는 까닭에

고대로부터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것 처럼

베트남 또한

그런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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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2 16:45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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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동이야... ㅜ.ㅜ

2002 월드컵에서 느꼈던 그 환희가 내 뱃속에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을 외치고 있어
먹는 방법은 두 가지야.
어느정도 부대찌개를 먹은 후에 밥을 같이 비벼먹든가,
그냥 밥 위에다가 얹혀먹으면서 조물조물 먹는 법.
 
난 달라. 그래서 반은 얹히고 반은 조물조물 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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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정말 배고프지 않았다면 나를 문밖으로 패대기 쳤겠지만,

다행이 먹느라 정신 없는 탓에 그대로 놔두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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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건빵국방 팀원끼리는 콩 한조각이라도 나눠 먹는 끈끈한 정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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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경우는 아래위도 없고 콩 한쪽은 혼자 먹는 거라고 서로 외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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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흔적이야. 양이 많아 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다 먹은 걸 보니 전설의 맛집은 역시 맛집이더라구.

여기서 10자 평으로 음식 맛을 이야기 해보자면

'부대찌개 먹어봐야 안다'

30자 평을 하면

'달달한 햄, 야들야들 고기, 깊고 진한 국물 맛 이 적절히 어울리는 면발, 킹왕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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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낼 것인가 신발끈 묶고, 화장실을 다녀오며, 안오던 전화를 받기전에

이렇게 깊은 맛과 역사를 지닌 가게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직접 여쭤보기로 했어.


점심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이 이른 3시였지만 가게 안이 거의 찬

바쁜 시간에 겨우겨우 터줏대감 주인이신 허기숙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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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가게하신 지 몇 년 되셨나요?

A : 여기에서는 40년이 넘었는데, 내가 가게를  한지가 52년됐지.

Q : 그럼 52년이 되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뜻 깊었던 사건이나
가게에 대한 기억 등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A : 옛날에 내가 이 장사를 할 적에는 참 수많은 고생이 많았지.

참 수 많은 고비를 넘어갔지.

왜 그랬냐면, 그때 당시에는 부대 고기라는 거는 사회에서 쓰지를 못하게끔 되어 있었거든.

그런데 의정부, 이 동네가 양식음식점도 많고, 자체가 부대였어.

이제 그러니까 의정부가 쪼그마면도 여기가 다 미군들 촌이었지.

그러니까 먹고 살 것도 없고 하니까 맨 처음에는 오뎅으로 한 5달 정도 장사를 하고,

왜냐면 여기가 이쁜 색시들이, 양색시들이 나오니까 미군들이 밤이면 나와서 홀에서 춤을 추거든.

그래서 거기서 미군들 만나서 춤추고 들어오다가 오뎅하고 우동하고 그런 거를 주로 많이 먹고, 속 풀으려구.

그렇게 먹고 댕겼는데, 옛날 부대 아저씨들이 미군 부대 다니면서, 이쁜 색시들이 들어오니까 우리 집에 따라 들어왔단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고기를 내가 가져나 끌어올 테니 장사 할 수 있겠느냐" 해서, 나는 그냥 별 생각 없이 그럼 하겠다고,

지금 오뎅 장사 나으면 그거를 내가 하지요.

아저씨들이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러고서는 부대에 교대로 들어가면, 15명이야. 15명에 반반씩 들어가는 거야.

오늘은 이 조가 들어가면 내일은 저 조가 들어가고.

이렇게 들어가면 미군 장교들 음식을 차려주려고 하면, 여러 가지 수많은 고기가 있어.

모두 몇 종류냐 하면 12가지야.

그거를 그 아저씨들이 버리기 아까워서, 그때 당시에 우리는 어디 가서 고기를 먹어보지를 못하고.

내가 그때 150원씩, 그때 냉장고도 없어서 은박지에다가 말아서 배에다 차고 옷을 입고 나왔단 말이야.

그럼 뜨끈뜨끈한 걸 여기에 가지고 와서 우리 집에 와서 이만한 광우리에 쏟아놓고 했지.

아주 칠면조, 소고기, 양갈비 같은 고기들이 있었지.

그렇게 해서 이제 그걸 해가지고, 그때는 연탄이 있어서 그거를 볶음을 해서 파는 거야. 막걸리도 팔고.

서울 사람들은 여기를 시골이라 그랬지.

그때 당시에는. 시골이니까

그때는 도로도 잘 안 되어있고 하니까, 서울 사람들은 잘 내려오지 않았고

의정부 지역사람들이 와서 한 근에 얼마해서 볶아서 먹는 거야.

그렇게 해서 팔다가 한 1년 정도 했는데, 그게 소문이 자꾸자꾸 퍼지니까

당시에 나를 막 잡아가는 거지.

"누가 이걸 이렇게 갖다 줘서 팔았느냐." 고 취조했지

가게에 들어와서 구석구석 고기 같은 거 있나 막 뒤졌어.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대느냐고.

그래서 그냥 일주일에 한번 씩 계속 붙잡혀 갔지. 그렇게 하기를 13년을 붙잡혀 갔어.

1년 동안은 잘 넘어갔는데, 세관에서 날 잡으러 온 거야.

아침 9시에 들어가면, 저녁 9시에 나오고, 쇠고랑도 찼었어. 집도 짓지도 못해.

어디 온갖 안 뒤지는 데가 없었어.

두 자루씩 새 거도 아닌 고기를 다 뺏겼어. 뺏기고 나면 아저씨들이

"내가 무슨 소시지를 막 가져다 준 것도 아니고, 무슨 양주 같은 거 가져다 준 것도 아닌데,

일단 팔지를 말고 그때 당시에는 오다가다 샀다고 말하세요 할머니" 그랬지

우리를 불쌍하다 해서 애들 공부를 시켜야 하니까 뺏긴 만큼은 돈을 안 받겠다 하고 그냥 해라 했어.

뺏기고 나면 벌금 물고, 갔다 또 나오지.

그래서 시장에서 세 집 중에 두 집은 못하고,

나만 홀로 남았어. 그렇게 먹고 살았어.

이 동네 사람들이 나보고 붙잡혀 가면서 왜 하냐고 나보고 바보라고 했어.

그러다가 88 올림픽 때 즈음부터 마음놓고 식당을 하게 됐지

시에서도 허가를 내줬지

미국 회사에서 와서 미군 통역관하고 미군하고 한 10명 정도가 와서 고맙다고 하면서 고생 많이 했다고 했어.

걱정 없이 하라고 했어. 그래서  해서 지금까지 해온거야

그뒤로 이 주변에 부대찌개 집이 그래서 여기가 한집 두 집 생겨나더라구.

물론, 서울 시청에서도 오뎅가게가 가장 오래된 것을 알고 있어.

여기 우리 집에는 4대가 다니고 있어.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그 아들과 그 아들이지.

서울시장님은 고생했다고 위로해주시면서

부대찌개 거리 아치도 세워주고 같이 사진도 찍었지.

요번에는 1박2일 촬영 팀이 왔었고,

드라마 식객도 하면서 허영만 씨가 몇 년 전부터 와서 만화도 걸어주시고 하면서 가게가 잘되게 됐지.

허영만 씨가 많이 널리 퍼뜨려 줘서 항상 고마워.


Q : 앞으로 계속 장사를 하실 생각이신가요? 
A : 손자가 할 거야, 대학교 졸업하면. 손자가 나이가 26살이야. 손자가 자기가 가게를 하고 싶다고 했어. 가게는 하는 대로 해봐야지. 

인터뷰에 응해주신 허기숙 할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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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가격은 부대찌개 1인분에 7천원으로 올랐어. 다른 사이트 보고 갔다가 가격이 달라 천원 없어서

울지 말고 미리 미리 지갑에 넣고 다니라구.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재밌는 역사도 알고 꿩도 따고 알도 먹고 도랑치고 가재 먹는

우리, 먹으러 갑니다!

역시!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개봉이 박두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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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9 06:25

국민과 함께하는 건국 내각 EVENT!! - 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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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응원메세지 남겨주시고 ^^ 자주자주 놀러와주세요~

그리고, 8월 13일 이벤트 발표! 잊지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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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6 00:11

SBS 토론 시시비비 건국 60주년 특집(08. 07. 18)

때마침 건국 60주년 특집으로 진행되어서 챙겨 다녀왔습니다.


주제는
[건국 60주년 특집] ‘희망의 정치, 어떻게 할 것인가?’  였습니다.

토론 패널에는 박관용(제16대 국회의장), 김원기(제17대 국회의장),
이인호(KAIST 김보정 석좌교수), 김진현(세계평화포럼 이사장)
님이 참석하셨습니다.
김진현 이사장님은 저희 사이버 건국내각 발대식에서도 좋은 강연을 해주셨던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집행 위원장이시고, 이인호 교수님은 기념사업위원회 고문을 맡고 계십니다.
 
SBS 토론 시시비비 건국 60주년 특집은 건국60주년의 뜻 깊은 해를 맞이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마련되었습니다.
인생에 비유해 보면, 60년을 환갑이라고 일컬어 잔치를 벌이는 등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왔는데요.
환갑이란 천간과 지지로 이루어진 60갑자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전체적인 토론은
60년의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보면서 건국 60년의 의의, 건국 시기에 대한 논의,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 헌법개정 논의, 향후 대한민국 정치의 발전방향 등의 내용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김진현 집행위원장님께서는 대한민국 60년을 근대문명사의 세계적관점의 혁명사라고 표현하며
시민, 언론자유, 정치민주화, 경제성장, 사회적 다양성, 고등교육, 과학기술을 이룩한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하며 60년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하셨습니다.

토론의 전반부는 60년의 역사를 주로 다루었고,
후반부에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과 향후 정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패널간 열띤 토론이 가장 흥미로웠으며,
"인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판단하는 데에는 큰 오류가 있다.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라는
김진현 위원장님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건국 60주년 특집] ‘희망의 정치,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우리사회가 직면한 현실을 올바르게 진단해 봄으로써,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에 대한 혜안을 들어보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 토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SBS시시비비 홈페이지에 방문하셔서
   다시보기를 통해 시청해주세요 ^^(
http://tv.sbs.co.kr/opinion/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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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토론 시시비비 현장 녹화 진행사진 / 김진현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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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 종료 후 패널분들과 방청객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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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장에서 기념사진 / 위원장님과 기념사진
(위원장님께 내무부 정책보좌관이라고 인사드리고 사진 찍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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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시시비비 방청 세트

※ 사진 출처(단체 기념사진, 녹화 사진) : 시시비비 홈페이지 http://tv.sbs.co.kr/opinion/index.html
    사진 출처(기타) : 필자 촬영
    주제 및 패널 소개 출처 : 시시비비 홈페이지
http://tv.sbs.co.kr/opinion/index.html

written by 내무부 정책보좌관 이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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