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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1 [인터뷰] 월남 참전용사에게 묻다
  2. 2008.08.11 건국 60년, 60일 연속강연 '소프트 파워로 무장하라!' - LG 생활건강 차석용사장 (1)
  3. 2008.08.11 [교육과학기술부 방문기] 대한민국 과학의 현재와 미래 - 2 (1)
  4. 2008.08.11 맞춰라! 그리하면 칭찬받을지니...온도가 오르면 상품이 더 팔린다?
  5. 2008.08.09 [번외편] 교통부 블로그, 과연 몸값은 얼마?
  6. 2008.08.07 여의도에 비행장이????????? (1)
  7. 2008.08.07 내 아녀자된몸으로 어찌 반소매,통치마를 입으리까???
  8. 2008.08.07 6.25 전쟁의 숨은 주역들 - 기억해야..
  9. 2008.08.06 대통령이 받은 선물들
  10. 2008.08.05 국회의원의 상징, 무궁화 배지!
2008.08.11 18:01

[인터뷰] 월남 참전용사에게 묻다

그들을 기억하십니까??

월남참전용사..

   베트남전쟁(월남전쟁)

   북베트남의 주도로 남·북 베트남이 통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남베트남과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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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에 파병된 청룡부대원들>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의 요청 등에 따라 1964년에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하여 많은 경제적 이익과 전투 경험을 얻은 반면 그 대가로 수많은 전사상자와 고엽제 피해를 낳았습니다. 의무중대 파견 시작으로 1965년 부터는 맹호,청룡부대 그리고 1966년에는 백마부대 파견으로 연인원 30만 명, 최대 5만 명이 파병되었으며,이중 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참전 군인 중 이후 2만여 명이 고엽제 등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참전용사가 많이있습니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평화를 위해..대한민국을 위해..

용감하게 월남에 참전용사분들을 알기위해서

당시 월남참전하신 신기훈예비군연대장님으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Q. 간단히 신기훈 예비군 연대장님!!

                                  소개좀 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광운대학교 예비군연대장직책을 수행중인 신기훈이라고합니다.

1970. 5. 31일 3사관학교 2기로 소위로 임관.

26사단 대대 인사장교 재직시절 월남파병에 지원하여

71년 11월경 맹호 7-22지대로 파월하여 임무를 수행

이후 특전사, 39사단, 17사단, 수도군단등에서 근무를 하고

전역후 91.11.11일부로 광운대학교 예비군연대장으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광운대학교 예비군 및 민방위작전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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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훈예비군연대장님께서 근무하시는 광운대학교 예비군연대

Q. 연대장님께서는

     건국60주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앞으로 나가야할 방향은 무엇인지..말씀해주세요!

 

대한민국이 건국 60주년이 되기까지에는 국민 한명한명의 피와 땀으로 맺어진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국방을 지키는 군인으로 지금은 예비군 업무를 하면서 느낀거지만 더 노력해야합니다.

 

국가가 유지되려면 국민, 주권, 영토가 있어야 되듯이,

국방의 힘이 없다면 이는 국가가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국방의 힘을 기르는것도 중요하지만

가장시급한 문제점은 바로 국민들의 안보의식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를 보면 스위스가 중립국인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중립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확률은 극히 적습니다. 하지만, 스위스는 개인가정마다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민병대가 구성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보면 어떻습니까?

북한이라는 나라를 감성적으로만 볼 것인것인가?

 

군자체 뿐만아니라 국민들도 안보태세 의식강화를 해야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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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근무중이신 신기훈 예비군연대장님>



Q. 연대장님께서 월남참전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과,, 월남이야기들려주세요!

 

 월남당시에 밖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 도미노이론처럼 공산화가 되어가고 있었고

 대한민국의 사정을 보면 아시다시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이 힘들었을때입니다..

 그래서 많은 장병들이..처음에는 부대별로 차출되어 월남에 갔지만, 나중에는

 파병하여  전투수당을 받으면 돈도 많이 벌 수있고,,

 혹시라도 전사시 보상금으로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우스겟소리로 외국구경해본다는 말로 위안삼아,,

 대한의 청년들이 많이들 지원하였으며, 경쟁률도 쌨습니다.


 저 또한 보병장교로써 제 자신에게 발전도 되고,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지원을 하여

 맹호 1연대 7중대 1소대장으로 베트남 퀴논지역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지금부터 기억에 남은 몇가지 월남파병이야기를 몇마디 하겠습니다.




 -Episode #1

 제가 맡은 부대의 임무는 3개 대대가 푸킷산을 포위하고 낮에는 기지주변 수색정찰 및 보급로확보수색작전 밤에는 마을 길목 감시하여 베트콩들을 섬멸하는 임무였습니다. 어려운점은 베트남 민간인과 베트콩을 피아식별이 어렵다는점이 있었으며, 다른 하나는 지능화된 지뢰매설입니다. 본디 지뢰제거작업을 하면 지뢰가 철로 둘러쌓여있어서 지뢰탐지기가 철을 발견하여 지뢰를 제거할 수 있는데 베트콩들은 비닐에다가 화약을 넣어 지뢰를 만들어 매설하여, 보급로 이동하는 보급차 및 한국군을 위협하였습니다. 어느 하루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대대병기하사관이 다른부대 정비를 해야된다고 지뢰제거 및 도로확보 작전이 끝나기도 전에 출발하였습니다 이미 저를 비롯한 소대원들이 지뢰작업을 하고 있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앞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트럭이 터지는것입니다.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유능한 하사관이었는데.. 너무나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Episode #2

 한번은 매복작전중이었습니다.. 사람이 희미하게 보일정도의 동이 틀 무렵이었는데, 앞쪽의 1분대에서 적이 나타났다는 견인줄신호가 왔습니다. 소대원들을 지시하여 사격준비를 내렸고, 접근중이었는데 제가 본 모습은 사람의 형체가 땅을 열심히 파고 있는 모습이었고, 특히 바람이 불어 화약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지뢰를 매설하는 베트콩이 아닌지..의심되었지만, 정확한 것이 아니기에 생포작전을 지시하여, 지시받은 소대원이 접근하여 생포하였는데, 월남 농민이었던거 입니다.

그 농민은 옆쪽에 물이 흘러서 반대편 자기논 쪽으로 물을 대려고 땅을 판거였고, 가운데 물길을 사용한 미사일탄을 이용하여 물길을 만들어서 남아있는 화약냄새가 난것이었습니다.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구하자"

 당시 모토를 생각하여 생포작전을 지시하여 무고한 양민을 죽이는것을 막았는데,, 얼마전에 발생한 금강산사건이 아쉬움이 남네요..

 




 -Episode #3

 대대 작전중이었습니다. 옆중대인 8중대가 작전에 투입되고 제가 속한 7중대는 잔류부대였는데 갑자기 작전전날 변경이 된 것입니다. 소대장들 및 소대원들은 당황하였지만, 작전전날이라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하여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첩보에 의하면 적의 부대가 매복해있다는 거였는데 막상 가보니 적들의 흔적이 처음에는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산위쪽에서 아래쪽으로 탐색작전을 하면서 내려가다가 바위틈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육감적으로 이곳에 베트콩이 있을꺼같은 예감이 들어, 소대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해 제가 직접 대검만 들고 작은 동굴에 들어가서 솥단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작전상 소대원들을 지휘하는 소대장이 직접 동굴에 들어가는 경우는 드문 경우였지만, 소대원들에게 소대장의 용감함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들어갔으며, 그 이후 소대원들을 지휘하여 베트콩들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씀 간단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전에서도 말했지만, 건국60주년이 된 지금,,

  국민 의식 이대로 좋은가???

         국방의 모습 이대로 좋은가???

 

무엇인가를 잘 금방 잊어먹는우리나라의 민족의 특징,, 전쟁의 아픔도 빨리 싶어해서인가?

이제 곧 저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생각해보면

저의 인생에 가장 보람되었던 일은

군에 입대하여 국방을 지키고,.,평화의 십자군의 역할을 한 월남파병,,전역후 예비군업무까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게 보탬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제 젊은이들의 시대입니다!

대한의 젊은이들이여!! 강한 호국신념!! 도전정신!!을 갖고 대한민국을 지켜나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분들을 잊지말고 기억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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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업무 하면서 받으신 많은 표창창들 및 신기훈예비군연대장님>

## 더운날씨속에 바쁜 시간에도 시간을 내어 좋은 말씀해주신 광운대학교 신기훈 예비군 연대장님 감사합니다##



  국민과 함께 Smile, 60년지기 국방부   

              공感, 의食주, 육해空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국방부가 함께합니다 :)



베트남전쟁 다음사전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09b2431a

청룡부대 사진자료 : http://blog.naver.com/ojh7071?Redirect=Log&logNo=200179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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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1 17:37

건국 60년, 60일 연속강연 '소프트 파워로 무장하라!' - LG 생활건강 차석용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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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 인터뷰를 마친 정책보좌관과 대변인, KBS 건국특집방송 녹화를 마친 장관이 세종로에 모였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매일 저녁 7시 30분 에 진행되는 건국 60년, 60일 연속 강연 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오늘의 강연은 LG 생활건강의 차석용 사장소프트 파워로 무장하라라는 주제의 강연이었다.


문화, 교육, 과학 등 소프트 파워와 관련 깊은 내용의 홍보 활동을 맡고 있는 문교부원들은

'소프트 파워로 무장하라'라는 강의 주제에 큰 흥미를 느꼈고,

오후 일정인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강의를 경청하였다.  

오늘의 강의는 저녁에 비가 온다는 예보에 따라 실내인 세종아카데미 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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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파워로 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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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석용

뉴욕 주립대학 회계학 박사
코넬대학 대학원 경영학 석사

현 LG생활건강 대표이사
해태제과 대표이사
한국P&G 대표이사

1. Design
과거에는 기능이 중요했던 시기라면 이제는 기능이 디자인과 함께하지 않으면 더 이상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제품의 성능이 어느 정도 한계점에 다다르면 소비자는 자신의 기호에 맞는 것을 구매하게 된다. 여기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디자인은 상품의 정체성과 나아가 소비자의 정체성까지도 대변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2. Story
스토리는 객관적 진실에서 약간은 멀 수 있더라도 보는 이로 하여금 3D효과를 체험하게 한다. 그만큼 다방면, 심화적인 정보제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드라마 촬영장소로써의 관광지가 아닌, 몇십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스토리를 가진 관광지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 


3. Symphony
세세한 것 보다는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을 갖추라! 사람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찾을 수 있는 능력.

이제는 나 자신만이 잘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남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 필요한 시기이다. 문화적 컨텐츠를 개발함에 있어서도 단지 하나의 독특하고 세련된 장소, 상품보다는 주변 환경이나 연관제품과의 호환성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4. Empathy
논리만으로 사람을 설득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키 포인트는 ‘공감’에 있다.

나와 상대방, 또는 나와 대중의 공통적 경험이나 관심사를 찾아내어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굉장한 발명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사장되는 것이다.


5. Meaning
‘무엇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 단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 목표 이면의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6. Play
일의 반댓말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이제 일과 놀이는 동일 선상에 있는 단어이며 놀이의 반댓말은 ‘우울증’이 되는 시대가 오고있다.

항상 즐기면서 그 가운데에 진지함이 있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진지함만으로는 일의 능률도, 창의성도 기대할 수 없다.

21세기형 인재는 창의성을 갖춘 사람이다.
차석용 강연자님은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여유 있는 삶의 모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무엇에 쫓기듯 시간을 쪼개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창의성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씀이셨다.
또한 항상 노력하시는 강연자님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아직 나도 들어보지 못한 서태지의 신곡CD를 직접 구매하셔서 청중에게 감상평을 말씀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의 표본을 볼 수 있었다.


재미있고 신선한 ‘개인의 경험적’강연 내용에 조그만 충격을 받았고 아무래도 1달여 동안 몸담고 활동한

‘문화’분야에 대해 특히 많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가 활동하는 시간이 대학생의 방학보내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떤 일들을 함에 있어서 한 이정표를 제시해 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실속을 챙기는 실용주의적 모습도 잊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10개의 상품 중 3개 획득!

차석용님께서는 강의 중 광고에 관한 퀴즈를 맞춘 사람과 강의 후 질문을 한 사람에게 자사 제품을 선물로 주셨는데

우리 문교부원 세 사람 모두 퀴즈와 질문에 참여하여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도 받을 수 있었다.

좋은 강연에 선물까지~!! 정말 즐겁고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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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1 17:31

[교육과학기술부 방문기] 대한민국 과학의 현재와 미래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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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학고의 과학 영재 육성 프로그램과 입시 명문고로의 변질 문제


Q. 문교부 - 과학영재 육성을 위해 설립된 과학고가 그 설립목적과는 달리 명문대학 진학이나

의대 진학을 위한 입시명문고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과학고의 과학영재 육성 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과학영재 교육 내실화를 위한 방안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A. 교육과학기술부 - 과학 고등학교는 초중등교육법에 의해 과학영재 육성을 위한

특수 목적 고등학교로서2008년 현재 전국 20개교가 운영중입니다.

과학고의 과학영재교육 활성화 를 위해 다음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해 왔습니다.

* R&E(Research & Education)과제 - 교사와 학생이 팀을 이루어 연구를 수행하면서 탐구력, 문제해결력 배양 등 교육효과 발생
* 과학고 교사의 연수 및 탐구활동 지원
* 과학고의 실험 탐구 교육운영을 위한 기자재, 재료비 지원
* 학생 탐구활동 활성화, 창의성 위주 선발을 위한 입학 전형 개선 등


그간 과학고는 대학 입시를 위한 속진 위주의 교육, 조기졸업 증가, 전문 교과교육 부실 등
교육과정 운영이 설립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온 바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과학 영재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제도개선, 예산 확충 등 지원을 강화할 것입니다.

* 창의력, 탐구력 위주 입학 전형으로의 개선을 통해 과학영재 선발

*  실험 연구 프로그램의 지원 확대
* 과학고 현장에 맞는 교원 연수 제공 등

과학영재학교 확대와 함께 과학고의 영재교육을 내실화하여 세계적인 과학인재 양성에 힘쓸 것 입니다.


 

4. 중학생 이하 과학 영재 교육 실태(송유근군 사례와 관련)


Q. 문교부 -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과학천재소년 송유근군 의 경우

그에게 맞는 적합한 영재 교육 프로그램을 찾지 못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영재교육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중학생 이하 과학영재들의 교육 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A. 교육과학기술부 - (구)과학기술부에서는 1998년부터 대학에 과학영재교육원을 설치하여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수학 과학 분야의 영재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2008년 현재 25개 대학에 과학영재교육원을 설치, 약6,500명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구)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영재교육진흥법의 제정 과 함께 시도교육청을 지원하여
각급 학교에 영재학급 및 교육청 산하 영재교육원을 설치 하여 영재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008년 현재 영재학급은 580기관, 영재교육원은 265기관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초중학생 약 5만여명이 영재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 중 82%가 수학 과학 분야이 교육 수혜자 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이하 아동 중 수학 과학 분야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과학신동을 발굴하기 위해
과학신동판별 위원회 를 두고, 선정된 과학신동에게 맞춤식 교육시스템을 적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습니다.

송유근 군은 2006년 과학신동으로 선정 되어 2008년까지 지원을 받고 있으며,

차세대 과학신동은 각 영재교육원 및 과학영재 교육원에서 후보자를 추천하면 위원회에서 심사 후 지원할 예정입니다.


 

5. 이공계 인재 해외 유출 방지 방안


Q.문교부 -  우수 이공계인력들이 해외 유학을 통해 선진적이고 다양한 학문을 습득한 후
국내에 복귀하지 않는 이공계 인재 해외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 크나큰 손실이 아닐수 없는데요, 이공계 인재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이 있나요?


A. 교육과학기술부 -  이공계 인재의 국내 복귀율이 낮아지는 주된 이유는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의 낮은 연구역량, 열악한 연구여건, 자녀교육 등의 문제 때문입니다.
우수인재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내대학과 연구기관의 역량과 여건이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육성사업을 통해 국내 대학의 역량과 여건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정부출연연구소의 PBS제도 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안정적인 연구여건을 제공함으로써 우수 인재의 국내 복귀율을 높일 계획입니다.

 

* PBS제도 - 연구원들의 인건비와 연구비의 일부를 프로젝트 발주처로부터 경쟁적으로 수주해 자체 조달하는 제도.
정부출연기관간의 경쟁을 유발,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1990년대 후반에 도입됨.


이와함께 내년부터 국제연구인력교류사업을 대폭 확대하여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인 인재의 국내유입을 촉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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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 교육언론홍보팀 이대영팀장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 과학 발전 을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계시고,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육과학기술부가 현재 실시하고 있는 과학 분야 지원 정책을 자세히 알 수 있었던 보람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과학 기술에 대한 지원은 장기적인 투자와 지원이 절실히 요청되는 사업입니다.
대한민국의 과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수인재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통해
대한민국이 과학이 꽃피는 나라 , 세계 제일의 과학 강국 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문교부의 인터뷰에 도움을 주신 교육과학기술부의 이대영 교육언론홍보팀장님,
박중재 교육연구사님, 조종영 사무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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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1 16:15

맞춰라! 그리하면 칭찬받을지니...온도가 오르면 상품이 더 팔린다?

여러분 계속되는 기상 오보에 짜증나시죠?

어떤 분들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틀릴수도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구요.


또 어떤 분들은 아마 일기예보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가 잘 안되시는 분들도 계실꺼에요~


그래서 오늘은!

일기예보가 왜 중요하며 어떤 방법으로 예보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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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


일기예보는 단지 소풍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래요~

소풍 뿐만 아니라 마케팅에도 폭넓게 이용되고 있는데요~


 과즙음료는 최고기온 20도가 넘으면 팔리기 시작하구요~

그리고 25도가 넘으면 1도 상승할 때마다 판매량이 20%씩 증가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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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우유와 요구르트는 다른데요~ 20도에서 30도로 기온이 상승하면 매출이 약 8% 감소하게 된답니다.

날씨와 마케팅은 스포츠에도 적용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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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테니스는 평균기온 16도부터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24도에서 절정을 이뤄요~

패션업계도 날씨가 크게 좌우하는데요~


낮 기온이 27도 아래로 떨어지고 아침기온이 20도 아래로 내려가면
신사복을 입는 사람이 60%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이밖에도 날씨는 제조업과 건설업, 심지어는 보험업까지도 매출과 비용에 영향을 미친답니다~


그러면 이런 일기예보를 기상청은 어떻게 계산할까요~

일단,

"대기물리학과 대기화학, 대기역학, 기후역학, 유체역학 등 과학이론이 뒷받침돼야 한다. 여기에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상통계분석, 기후학, 환경철학, 환경생태학 등이 더해져 날씨를 예보하게 된다."

즉, 간단하게 말해서 습도,온도,기압 등을 측정,입력하면 슈퍼컴퓨터가 계산하는 것이라네요~

하지만, 역시 옛 어르신들의 말씀을 빌자면 '하늘의 뜻을 측정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가 많은건 사실이에요,


이럴 때 일수록 기상청에서 수고해주시는 분들을 응원해주고 기상이변이 일어나지 않도록 환경보호에도 앞장서는게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출처 : http://imagebingo.naver.com/album/image_view.htm?uid=chokh7700&bno=30704&nid=2667

 http://imagebingo.naver.com/album/image_view.htm?uid=yaong417&bno=27113&nid=5056

파이낸셜뉴스 2007-08-26 '일기예보 과학 한계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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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10:01

[번외편] 교통부 블로그, 과연 몸값은 얼마?

  




7월 9일부터 지금까지, 한 달 동안 열심히 달려온 저희 교통부 블로그의 몸값은 얼마일까요?


7월 9일 오픈해서 지금까지 운영되어 온, 저희 대학생 사이버 건국내각의 교통부 블로그


다른 컨텐츠 포스팅을 준비하다가, 스스로 한 달간의 활동을 점검해 보기위해, 우리는 블로그를 평가하는 사이트를 찾았다.


그래서 우리가 찾은 곳은 블로그얌!이라는 블로그 가치 평가 사이트! (링크 - http://www.blogyam.co.kr/)


정확히 한 달동안 우리가 운영해온 블로그의 몸값은 과연 얼마일까? 우리는 어떻게 평가가 될까?


궁금증과 함께, 기본사항을 적고, 블로그 평가를 기다린 지 약 1시간, 드디어 평가가 되었다는 메일 도착!


두구두구두구두구!! 과연, 우리 교통부 블로그는 어떻게 평가되었을까?



↑ 교통부 블로그는 위와 같이 평가되었습니다.



두둥!!  우리 교통부 블로그의 몸값은 바로 481,310원!!


생각보다 낮은 몸값에 우리는 조금은 아쉬웠지만, 재미삼아 블로그를 평가하기 위해 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아래, 남은 기간 마무리를 잘 해내겠다는 다짐아래, 그냥 재미로 끝내기로 마음 먹었다 ^^



하지만, 이 평가로 인해 얻은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


우리는 정확히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에서 창조해 냈다는 것!


1948년 정부수립 ~ 오늘날까지, 건국 60년동안 기적의 역사를 창조해낸 위대한 국민들과 같이


     한 달만에, 블로그 상에서 의미있는 컨텐츠들을 창출해 냈다는 것!

                      또한 앞으로도 좋은 컨텐츠들을 계속 창출해 나갈 것이라는 것!



건국 60년동안 교통/건설/국토/해양분야에서 이루어진 기적의 역사길을 재현해 온 우리 교통부


위의 평가에서 나온 것처럼, 친절하고 꼼꼼한 블로그 주인의식과 대한민국의 주인의식으로


건국60년 동안 국민들이 많은 것들을 이룩해낸 것처럼,저희도 남은 기간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건국내각 교통부의 블로그 많이많이 사랑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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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17:14

여의도에 비행장이?????????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대한민국 60년 항공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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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라이트형제_http://magic.iin.co.kr/iin0112/war/summary/war.htm>


국내에 비행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라이트 형제가 비행을 한 후 10년 뒤인 1913년이였습니다!

비록 일본 해군중위 나라하라가 용산 연병장에서 떴다 내린 정도였지만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으로 기록되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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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항공기중 하나인 커티스 JN-4D_http://bemil.chosun.com/brd/view.html?tb=BEMIL105&pn=30&num=772>


이듬해 1914년 8월에는 다카사라는 일본 민간인이 미국의 커티스라는 복엽기로

용산에서 남대문까지 비행을 해 서울 시민을 놀라게 하기도 했답니다.

용산의 일본군 연병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이었던 셈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1922년 12월 모국방문 기념비행을 해낸 안창남이 바로  그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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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안창남:http://www.koreanhistory.org/webzine/read.php?pid=10&id=270>


1922년 12월 모국방문 기념비행을 해 한국인의 기개를 떨친 한국인 최초 비행사입니다!^^  


그렇다면 ?

 

한국 최초 비행장은?


네. 바로! 여! 의! 도! 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16년 가을, 당시 경기도 시흥군 여의도에 육군 간이비행착륙장이 개설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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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비행장의 위치>                                                                         <1920년 여의도 비행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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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여의도 비행장의 모습:http://blog.daum.net/tourofduty/5306827>


 

당시 여의도 비행장의 모습을 보면 알 수있듯이 간이비행착륙장의

모습일뿐 공항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24년 정식비행장으로 승격돼 민간항공기와 군항공기가 공동으로 이용하게 됐고


광복후 1948년 되서야 민간비행장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 최초의 민간항공사인 대한국민항공사(KNA)도 여의도 비행장에서 첫 취항을 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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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rlife.net/webzine/auto_read.html?page=2&gnum=19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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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carlife.net/webzine/auto_read.html?page=2&gnum=19263




그러나 여의도 비행장의 장마철 잦은 홍수로 인하여

1958년 1월, 공항의 기능을 김포로 이전하면서 여의도는 군전용 비행장으로 사용되다가

1971년, 개장 54년만에 폐쇄되고 그 이후 여의도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나 대규모 집회 장소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시민들의 안식처인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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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당시 여의도비행장 항공사진:http://airwar.hihome.com/airwar/korea/part3/korea-3-6.htm>






 


김포공항은 1939년 당시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에

일본군이 1천317 × 16미터 규모의 활주로 3개를 건설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이곳에 비행장을 만들고 가미가제 특공대 훈련장으로 활용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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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rlife.net/webzine/auto_read.html?page=2&gnum=19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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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rlife.net/webzine/auto_read.html?page=2&gnum=19263


해방후에는 김포공항의 관할권은 미군으로 넘어으며,
1951년에 2천268 × 45미터 규모의 활주로를 새로 건설,
김포공항을 미 제5공군 전용 활주로로 사용했습니다.


그 후 1958년 1월 미군측과 김포공항의 관리권을 3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한다는 협정을 체결,

드디어 1958년 3월 대통령령으로 김포공항을 국제공항으로 지정했습니다!


김포공항이 바야흐로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대한항공이 항공공사를 수한 후

동시에 5대의 비행기를 정비할 수 있는격납고를 1971년 1월에 준공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1973년 4월에 국내선 청사로 사용 중인 건물도 준공돼 하늘에서 내려다 봤을 때

그나마 공항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죠.


1980년대를 지나며 폭증하는 항공수요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또다른 청사의 건립은

시급한 당면과제였습니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김포공항의 주요 여건상 장애요인

(장애구릉, 주거지역 밀집, 북방 비행금지지역)이 고질적으로

 제기되면서 신공항건설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은 지구촌 시대에 전략적 산업으로 항공운송사업을 적극 육성 중이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2001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착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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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한산해진 현재의 김포공항의 모습: http://www.sz21c.com/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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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14:29

내 아녀자된몸으로 어찌 반소매,통치마를 입으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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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作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tiger6107?Redirect=Log&logNo=140006377269]



신생활운동에 따른 여자의복 개량이 남자들 항의로 중지


'내 아내는 배우나 여급이 아니니 면직을 당할망정 모델로 함은 이 이상 모욕을 참을 수 없소'하고 시청에 향하여 온 사건,

즉 시청 당국에서는 신생활운동 중의 하나로 여자의복을 신체제로 저고리를 동정도 없고 깃도 없이 소매를 반쯤 몽땅 잘라버린 보기에 좀 이상한 것을 장려하고 있는데

시에서는 이것을 일반에게도 보급 장려시키기 위하여 시 부녀과 부인들과 성년처녀들에게 입히고 시내 8구청을 돌며 구청 직원들과 일반에게 가정부인들로 하여금 과히 보이고 싶지도 않은 자기 얼굴과 기타 요모조모를 보이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계면쩍어서  "기생이냐, 갈보냐"하며 우락부락 분개하고 보이콧하는 중 그래도 시장 특명이라 하고 달래며 속행시키었다 하는데 드디어 남편들이 전기와 같이 궐기하였고 또 "내 딸을 함부로 뭇사나이들에 선보이는 것이냐"하고 부형들의 항의도 있자 이치가 그럴 듯하여 드디어 중지하기로 되었다고 한다.(자유신문 1949.7.17)


대한민국이 세워졌을 즈음에는 반팔옷이 이상해 보였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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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소매 바람으로 여름을 나자!

끈 나시와 초미니 스커트가 길거리를 활보하는 요즘은 반소매조차 더워보이지요?

49년의 신문기사를 하나 소개할게요~


반소매와 통치마를 입자는 신생활운동 전개

반소매바람으로 여름을 나자!

신생활운동의 선구로 여름에는 윗저고리 없이 반소매나 긴소매셔츠 바람으로 출입하고

여자는 통치마에 반소매 적삼으로 하자는 외침은 작년부터 인데 그 실천은 아직 철저치 못한 점이 있어

 서울시에서는 신생활 촉진회를 주동으로 요즘 솔선실행의 열을 다시 올리고 있다.


한편 여자층은 통치마 입기는 자진해 잘 되지만 차마 반소매 적삼은 통 귀뜸으로도 듣지 않는 모양으로

하다 못해 시에서는  우선 접대부들에게 솔선수범하도록 어제 시공관에 수백명을 모아 놓고

"반소매에 통치마 입읍시다"하고 권하고 있었다.


어제 시청직원의 실천은 어떤가 카메라를 돌려 봤더니 국장급은 학무국장 외 몇 분밖에 없고

그 이하 직원중에서도 절반이 될까 말까 정도였지만 아마 경찰국에서도 실천할 모양으로 이에 따라 차츰 반소매 시민은 늘 성싶다.

(경향 신문 1949. 7. 22)


사람들에게 반소매를 입히기가 저리도 힘들었었군요ㅋㅋ


신생활운동은요-

낡은 생활양식을 개선하고 국민의 생활의식을 높이려는 사회운동이에요 관혼상제의 간소화, 의식주 생활의 개선 따위를 꾀합니다.


운동계기는 다르지만 요즘 비슷한 기사 본적 있지 않나요?

쿨비즈 운동이랑 쫌 비슷하죠?

쿨비즈 운동은-NO타이, NO노상의인 시원한 차림으로 근무함으로써 냉방정도를 줄여서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운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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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03:11

6.25 전쟁의 숨은 주역들 - 기억해야..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인 6.25 전쟁.
한국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6.25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한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10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러 휴전협정을 하여, 현재까지 휴전상태는 이어져오게 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여러분들,
6.25 전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6.25 전쟁의 아픔을 마음 속에 지워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아픈 과거는 마음 속에서 꺼내볼 때마다 마음을 아리게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있기까지, 이렇게 대한민국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기까지는
6.25 전쟁 당시 우리를 위해 한 목숨 바쳐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픈 과거를 항상 마음 속에서 꺼내볼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점은 우리 마음 속에 6.25 전쟁의 아픔을 지워버려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진 전쟁과 전쟁으로 인해 희생하신 분들을 우리는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이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6.25 전쟁은 단지 북한과 남한에게만 기억되는 희생의 역사일까요?



 
아닙니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이 땅엔 수많은 나라의 참전용사들이 왔습니다.
 
 

<6.25 전쟁 유엔참전국>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한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10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러 휴전협정을 하여, 현재까지 휴전상태는 이어져오게 됩니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민국(남한)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국무성에 사태의 긴급성을 알렸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열어 한국 문제를 건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조선군의 즉각적인 전투 행위 중지와 38도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청하는 미국의 제안을 9대 0으로 가결합니다.(유고슬라비아는 기권)


  이러한 결의를 북한 측에 통고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아 다시 안전 보장 이사회를 열어 "회원국들에게 군사 공격을 격퇴하고, 그 지역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남한에 제공할 것"을 7대 1(기권2)로 결의했으며, 이 날 해리 S. 트루먼은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남한에 대한 해,공군의 지원을 즉각 개시하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결국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콜롬비아, 터키 등 16개국의 회원국이 유엔군을 조직하여 한국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그럼 6.25 전쟁이 시작했을 떄의 상황을 살펴볼까요?

6.25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으며 한달여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어붙이는 등 신속하게 전세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서울과 원산, 평양까지 탈환하여 곧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게 됩니다.  

  그리고 38도선을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엔을 시작으로 휴전문제가 언급되었고,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서명되면서 3년 10개월에 걸친 승리 없는 전쟁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6.25 전쟁에 있어 한국은 유엔군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휴전협정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되었을 정도로 당시 한국은 큰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유엔군이 한국에 와서 전쟁의 상황을 변화시켰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표-1 6·25 전쟁 당시 남북 군사력 비교>

구 분

부 대 / 병 력

주 요 장 비

남 한

북 한

남 한

북 한

지 상 군

*보병:8개 사단*해병:1개 부대*기타 지원부대등9만 6,140명

*보병:10개 사단*전차:1개 여단*기타 기계화부대,경비대,특수부대등19만 1,680명

*곡사포:91문*대전차포:140문*박격포:960문*장갑차:27대

*곡사포:552문*대전차포:550문*박격포:1,728문*장갑차:54대*전차:242대

해 군

6,956명

4,700명

*경비함:28척*기타함정: 5척

*경비함:30척*보조함:80척

공 군

1,897명

2,000명

*연습/연락기:22대

*전투기/전폭기/ 기타 : 211대

10만 5,752명

19만 8,380명

 

 


       출처: 군사편찬연구소 (http://www.imhc.mil.kr/imhcroot/data/korea_view.jsp?seq=4&page=1)



우리는 당시 유엔군으로서 한국에 오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모국이 아닌 나라, 한국이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평화를 위해 전쟁 통에 피를 흘리셨던 많은 분들을 우리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표-2 유엔군 피해 현황>


구분

전사/사망

부상

실종

포로

총계

178,569

555,022

28,611

14,158

776,360

한국

137,899

450,742

24,495

8,343

621,479

미국

36,940

92,134

3,737

4,439

137,250

영국

1,078

2,674

179

977

4,908

오스트레일리아

339

1,216

3

26

1,584

네덜란드

120

645

-

3

768

캐나다

312

1,212

1

32

1,557

뉴질랜드

23

79

1

-

103

프랑스

262

1,008

7

12

1,289

필리핀

112

229

16

41

398

터키

741

2,068

163

244

3,216

태국

129

1,139

5

-

1,273

그리스

192

543

-

3

738

남아프리카 공화국

34

-

-

9

43

벨기에

99

336

4

1

440

룩셈부르크

2

13

-

-

15

콜롬비아

163

448

-

28

639

에티오피아

121

536

-

-

657

노르웨이

3

-

-

-

3


 출처: 라이프인코리아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



그런데 우리나라 곳곳에 그 분들을 기리는 참전비는 찾는 사람도 없이,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참전비에 대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관리 주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관리에 필요한 별도의 지원금이 책정돼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우리 역사에 큰 힘이 되어주셨던 분들을 기리는 참전비에 좀 더 자주 찾아가 그들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참전비를 방문하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도 한국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해 알게하는 현장 체험 학습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전비는 6.25 전쟁 당시 유엔참전국이었던 나라별로 한국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 참전비, 영국 참전비, 캐나다 참전비, 태국 참전비, 프랑스 참전비, 호주 참전비, 터키 참전비, 그리스 참전비,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비, 네덜란드 참전비, 뉴질랜드 참전비, 에디오피아 참전비, 콜롬비아 참전비, 필리핀 참전비,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인도․ 스웨덴 의료지원단 참전비 등이 있습니다.


나라별 참전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lifeinkorea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 곳: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Subject=UN2#txt01)




<UN묘지의 모습>


그리고 부산 남구 대연동에 위치해 있는 UN묘지는 1955년 11월 15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에서 오직 하나 뿐인 유엔 관리의 묘지로서,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16개국의 전투지원국과 5개국의 의료지원국의 유엔군 장병의 전사한 영령을 안치한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인 유엔군과 그들을 기리는 참전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삶을 한국에 바치셨던 그 분들께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자녀로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당신을 마음 속 깊이 기억하겠습니다. 한국을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참전비에 대한 좋은 동영상을 발견해서 여기에 링크하여 올려봅니다. ^^





참고 기사 출처:

1) 다음 카페

(http://cafe212.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1VE8&mgrpid=null&fldid=HOgg&contentval=000FI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948&fenc=L7rwq15N-910&srchid=IIMim84n00)

2) 라이프인코리아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

3) 다음 백과사전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X7629)


사진 출처:  

1)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sapjt/26br/16?docid=1ET7a|26br|16|20080618210054&q=6.25%20%C0%FC%C0%EF%20%BB%E7%C1%F8&srchid=CCB1ET7a|26br|16|20080618210054)

2) 동아누리

(http://www.donga.com/e-county/sssboard/board.php?tcode=01012&s_work=view&no=256862)

3) 다음 카페

(http://cafe212.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1VE8&mgrpid=null&fldid=HOgg&contentval=000FI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948&fenc=L7rwq15N-910&srchid=IIMim84n00)

4) 라이프인코리아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
 
동영상 출처: 다음 TV팟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8539191&q=%C2%FC%C0%FC%BA%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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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16:58

대통령이 받은 선물들

대통령이 받은 선물!?

이라고 하면 혹시 사과상자나 007가방 같은 뇌물이 생각나시나요?

저희가 보여드릴 대통령이 받은 선물은

대통령이 세계 곳곳을 방문하고 기념으로 받은 선물을 말합니다.

국가 정상 끼리 오가는 선물이므로 각국의 문화를 대표할만한 그런 선물 주고 받게 됩니다.

다만 공무원법상 10만원 이상의 선물은 임기가 끝나고 대통령기록관으로 반납해야합니다.

따라서 경기도 성남시 판교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에 방문한다면

역대 대통령이 받은 선물들을 구경해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그 선물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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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어깨띠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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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명예시민 메달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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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예도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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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잠수함 모형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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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공화국의 판화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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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석제장식품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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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마차모형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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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박차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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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수리 조각품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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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시코의 은제 모형배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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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은제 기사모형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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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인디언 장갑, 가죽신 세트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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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의 레일못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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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지리아 여인 조각상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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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프리카의 산돼지 이빨 조각상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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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의 원주민 모양 체스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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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의 무소뿔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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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호러스 신상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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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봉의 머리장식 여인 조각상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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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은제꽃 장식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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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그림자 인형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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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의 전통악기 모형 액자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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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유리공예품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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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은제 티스푼 세트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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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은제 냅킨꽃이(상)와 문지칼(하)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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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우 공화국의 액자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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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하고 온 기분이네요!

다른 대통령의 선물은 지하에서 보관 중이라고 합니다.^- ^

대통령기록관에 한번 가보세요!


written by 내무부 장관 최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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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5 16:31

국회의원의 상징, 무궁화 배지!

안녕하세요^^ 내무부 정책보좌관 이유성 입니다.
오늘은 국회의원들이 항상 달고다니는 '국회의원 배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헌 60주년을 맞이하여 헌정기념관에서 개최되었던
'헌정 자료로 보는 국회' 전시회를 다녀왔는데요.
그곳에서 지금까지 국회의원  배지의 변천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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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정기념관 지하 1층 '헌정 자료로 보는 국회' 전시장 ]

여러분은 TV와 신문등의 대중매체에서 국회의원이 나올때에
정장에 달려져 있는 무궁화 모양의 배지를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흔히 국회의원에 당선되거나 재선에 실패했을 때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다.""국회의원 배지를 반납하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만큼 국회의원들이 달고 있는 배지는 국회의원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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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김학용 의원 / 15대 ~ 현재까지 국회의원 배지 ]

지금의 국회의원 배지는 지름 1.6cm 로 어른 손톱만한 크기입니다.
무게는 6g 이고  순은에 금을 입혔습니다.(전 순금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중앙에는 나라 국(國)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배경은 붉은 색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배지는 옷에 부착하는 방식에 따라 2만2000원짜리와 1만5950원짜리 두 종류로 나뉘게 되는데요.
앞면은 똑같고, 뒷면엔 국회 기수와 제조연번이 찍혀있습니다.


국회의원 배지는 국회의원 당선시에 1인당 1개씩 지급되고, 그 후에는 사서 사용해야 합니다.
배지를 파는 곳은 국회 본관 736호 총무과로 의원 인장과 돈을 가져가면 되지요^^
참고로 신용카드는 안된다고 하네요^^;.
배지는 무조건 1인당 1개라는 규정은 없구요, 각 의원실마다 2~3개 정도의 배지가 있습니다.

국회의원 배지 제조사는 동광산업이라는 기업으로 서울 소재 배지 전문제작 업체인데요,
이 곳은 지난 10대 국회부터 무려 20여년간 국회의원 배지를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국회의원 임기가 끝났을 때 배지를 반납한다고 알고있지만
배지를 반납한다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일뿐 실제로는 반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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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대 국회부터 제14대 국회 배지 ]

국민을 대변하고 대표하는 국회의원.

국회의원 배지는 국민을 대변하는 자에게 국민이 수여 한 큰 힘의 상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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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신분증의 변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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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수첩의 변천 ]

※ 출처 ※
- 국회 배지 내용 : 머니투데이 국회의원 배지는 얼마?
http://stock.moneytoday.co.kr/view/mtview.php?no=2007022216425528225&type=1&TVEC
- 기타 사진 및 자료 : 국회 헌정기념관 직접 촬영

written by 내무부 정책보좌관 이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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