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08.08.11 [인터뷰] 월남 참전용사에게 묻다
  2. 2008.08.07 남상미 기자가 전하는 특종 ~! 특종 ~! 마로니에 공원에 대형 태극기.. 미래 60년후엔?
  3. 2008.08.07 6.25 전쟁의 숨은 주역들 - 기억해야..
  4. 2008.08.03 60번째 생일을 맞은 대한민국에게
  5. 2008.08.03 나라를 지키는 그녀들! 그녀들은 우리 군의 어머니! (2)
  6. 2008.08.02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2)
  7. 2008.08.02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1)
  8. 2008.08.01 독도는 우리땅, 그것이 알고 싶다.
  9. 2008.08.01 여러분은 "건빵"을 즐겨드시나요??
  10. 2008.07.25 집중 호우, 이럴 때 생각나는 건 누구 ?
2008.08.11 18:01

[인터뷰] 월남 참전용사에게 묻다

그들을 기억하십니까??

월남참전용사..

   베트남전쟁(월남전쟁)

   북베트남의 주도로 남·북 베트남이 통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남베트남과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베트남에 파병된 청룡부대원들>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의 요청 등에 따라 1964년에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하여 많은 경제적 이익과 전투 경험을 얻은 반면 그 대가로 수많은 전사상자와 고엽제 피해를 낳았습니다. 의무중대 파견 시작으로 1965년 부터는 맹호,청룡부대 그리고 1966년에는 백마부대 파견으로 연인원 30만 명, 최대 5만 명이 파병되었으며,이중 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참전 군인 중 이후 2만여 명이 고엽제 등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참전용사가 많이있습니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평화를 위해..대한민국을 위해..

용감하게 월남에 참전용사분들을 알기위해서

당시 월남참전하신 신기훈예비군연대장님으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Q. 간단히 신기훈 예비군 연대장님!!

                                  소개좀 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광운대학교 예비군연대장직책을 수행중인 신기훈이라고합니다.

1970. 5. 31일 3사관학교 2기로 소위로 임관.

26사단 대대 인사장교 재직시절 월남파병에 지원하여

71년 11월경 맹호 7-22지대로 파월하여 임무를 수행

이후 특전사, 39사단, 17사단, 수도군단등에서 근무를 하고

전역후 91.11.11일부로 광운대학교 예비군연대장으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광운대학교 예비군 및 민방위작전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기훈예비군연대장님께서 근무하시는 광운대학교 예비군연대

Q. 연대장님께서는

     건국60주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앞으로 나가야할 방향은 무엇인지..말씀해주세요!

 

대한민국이 건국 60주년이 되기까지에는 국민 한명한명의 피와 땀으로 맺어진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국방을 지키는 군인으로 지금은 예비군 업무를 하면서 느낀거지만 더 노력해야합니다.

 

국가가 유지되려면 국민, 주권, 영토가 있어야 되듯이,

국방의 힘이 없다면 이는 국가가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국방의 힘을 기르는것도 중요하지만

가장시급한 문제점은 바로 국민들의 안보의식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를 보면 스위스가 중립국인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중립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확률은 극히 적습니다. 하지만, 스위스는 개인가정마다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민병대가 구성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보면 어떻습니까?

북한이라는 나라를 감성적으로만 볼 것인것인가?

 

군자체 뿐만아니라 국민들도 안보태세 의식강화를 해야될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심히 근무중이신 신기훈 예비군연대장님>



Q. 연대장님께서 월남참전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과,, 월남이야기들려주세요!

 

 월남당시에 밖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 도미노이론처럼 공산화가 되어가고 있었고

 대한민국의 사정을 보면 아시다시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이 힘들었을때입니다..

 그래서 많은 장병들이..처음에는 부대별로 차출되어 월남에 갔지만, 나중에는

 파병하여  전투수당을 받으면 돈도 많이 벌 수있고,,

 혹시라도 전사시 보상금으로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우스겟소리로 외국구경해본다는 말로 위안삼아,,

 대한의 청년들이 많이들 지원하였으며, 경쟁률도 쌨습니다.


 저 또한 보병장교로써 제 자신에게 발전도 되고,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지원을 하여

 맹호 1연대 7중대 1소대장으로 베트남 퀴논지역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지금부터 기억에 남은 몇가지 월남파병이야기를 몇마디 하겠습니다.




 -Episode #1

 제가 맡은 부대의 임무는 3개 대대가 푸킷산을 포위하고 낮에는 기지주변 수색정찰 및 보급로확보수색작전 밤에는 마을 길목 감시하여 베트콩들을 섬멸하는 임무였습니다. 어려운점은 베트남 민간인과 베트콩을 피아식별이 어렵다는점이 있었으며, 다른 하나는 지능화된 지뢰매설입니다. 본디 지뢰제거작업을 하면 지뢰가 철로 둘러쌓여있어서 지뢰탐지기가 철을 발견하여 지뢰를 제거할 수 있는데 베트콩들은 비닐에다가 화약을 넣어 지뢰를 만들어 매설하여, 보급로 이동하는 보급차 및 한국군을 위협하였습니다. 어느 하루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대대병기하사관이 다른부대 정비를 해야된다고 지뢰제거 및 도로확보 작전이 끝나기도 전에 출발하였습니다 이미 저를 비롯한 소대원들이 지뢰작업을 하고 있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앞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트럭이 터지는것입니다.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유능한 하사관이었는데.. 너무나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Episode #2

 한번은 매복작전중이었습니다.. 사람이 희미하게 보일정도의 동이 틀 무렵이었는데, 앞쪽의 1분대에서 적이 나타났다는 견인줄신호가 왔습니다. 소대원들을 지시하여 사격준비를 내렸고, 접근중이었는데 제가 본 모습은 사람의 형체가 땅을 열심히 파고 있는 모습이었고, 특히 바람이 불어 화약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지뢰를 매설하는 베트콩이 아닌지..의심되었지만, 정확한 것이 아니기에 생포작전을 지시하여, 지시받은 소대원이 접근하여 생포하였는데, 월남 농민이었던거 입니다.

그 농민은 옆쪽에 물이 흘러서 반대편 자기논 쪽으로 물을 대려고 땅을 판거였고, 가운데 물길을 사용한 미사일탄을 이용하여 물길을 만들어서 남아있는 화약냄새가 난것이었습니다.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구하자"

 당시 모토를 생각하여 생포작전을 지시하여 무고한 양민을 죽이는것을 막았는데,, 얼마전에 발생한 금강산사건이 아쉬움이 남네요..

 




 -Episode #3

 대대 작전중이었습니다. 옆중대인 8중대가 작전에 투입되고 제가 속한 7중대는 잔류부대였는데 갑자기 작전전날 변경이 된 것입니다. 소대장들 및 소대원들은 당황하였지만, 작전전날이라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하여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첩보에 의하면 적의 부대가 매복해있다는 거였는데 막상 가보니 적들의 흔적이 처음에는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산위쪽에서 아래쪽으로 탐색작전을 하면서 내려가다가 바위틈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육감적으로 이곳에 베트콩이 있을꺼같은 예감이 들어, 소대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해 제가 직접 대검만 들고 작은 동굴에 들어가서 솥단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작전상 소대원들을 지휘하는 소대장이 직접 동굴에 들어가는 경우는 드문 경우였지만, 소대원들에게 소대장의 용감함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들어갔으며, 그 이후 소대원들을 지휘하여 베트콩들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씀 간단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전에서도 말했지만, 건국60주년이 된 지금,,

  국민 의식 이대로 좋은가???

         국방의 모습 이대로 좋은가???

 

무엇인가를 잘 금방 잊어먹는우리나라의 민족의 특징,, 전쟁의 아픔도 빨리 싶어해서인가?

이제 곧 저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생각해보면

저의 인생에 가장 보람되었던 일은

군에 입대하여 국방을 지키고,.,평화의 십자군의 역할을 한 월남파병,,전역후 예비군업무까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게 보탬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제 젊은이들의 시대입니다!

대한의 젊은이들이여!! 강한 호국신념!! 도전정신!!을 갖고 대한민국을 지켜나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분들을 잊지말고 기억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비군업무 하면서 받으신 많은 표창창들 및 신기훈예비군연대장님>

## 더운날씨속에 바쁜 시간에도 시간을 내어 좋은 말씀해주신 광운대학교 신기훈 예비군 연대장님 감사합니다##



  국민과 함께 Smile, 60년지기 국방부   

              공感, 의食주, 육해空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국방부가 함께합니다 :)



베트남전쟁 다음사전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09b2431a

청룡부대 사진자료 : http://blog.naver.com/ojh7071?Redirect=Log&logNo=20017921017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8.07 13:23

남상미 기자가 전하는 특종 ~! 특종 ~! 마로니에 공원에 대형 태극기.. 미래 60년후엔?

" 남상미 기자 ~! 긴급회의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로니에 공원에 나타난 대형 태극기~!!
 
 
 
저 남상미 기자가
그 정체를 지금부터 파헤쳐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손선풍기와 풍선, 그리고 부채, 맛있는 간식을 통해

상공부와 체신부, 법무부의 블로그를 알게 되셨다면~!!!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응원해주세요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 이 그림은 아직 태극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

 



 

국민 여러분의 한 글자 한글자

소중한 응원의 메시지로 가득 차

 

드디어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더운 날씨임에도

한 손에는 풍선과 한 손에는 부채와 선풍기를 들고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국민과 함께 한 건국 60돌 기념 생일파티는

우리 모두에게

 

즐거운 추억이 되고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공부에서는 이번 행사가 비록 서울에서만 열렸지만

전국의 국민이 함께 했다는 의미에서

 

지금 사는 곳 또는 갔다왔던 곳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힘들게 독도에 다녀오신 분과 제주도가 고향이신 분들도 찾아냈다고 하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공부, 체신부, 법무부의 컨텐츠와 블로그 홍보

사이버 건국내각 활동,

건국 60주년 홍보를 위한 활동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캡쳐이미지  - 드라마 식객 캡쳐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ilsses/120053525005
활동 사진 - 국방부 최웅석 장관님 직접 손수 촬영 ( 감사합니다 ㅋ )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8.07 03:11

6.25 전쟁의 숨은 주역들 - 기억해야..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인 6.25 전쟁.
한국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6.25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한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10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러 휴전협정을 하여, 현재까지 휴전상태는 이어져오게 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여러분들,
6.25 전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6.25 전쟁의 아픔을 마음 속에 지워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아픈 과거는 마음 속에서 꺼내볼 때마다 마음을 아리게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있기까지, 이렇게 대한민국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기까지는
6.25 전쟁 당시 우리를 위해 한 목숨 바쳐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픈 과거를 항상 마음 속에서 꺼내볼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점은 우리 마음 속에 6.25 전쟁의 아픔을 지워버려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진 전쟁과 전쟁으로 인해 희생하신 분들을 우리는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이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6.25 전쟁은 단지 북한과 남한에게만 기억되는 희생의 역사일까요?



 
아닙니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이 땅엔 수많은 나라의 참전용사들이 왔습니다.
 
 

<6.25 전쟁 유엔참전국>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한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10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러 휴전협정을 하여, 현재까지 휴전상태는 이어져오게 됩니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민국(남한)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국무성에 사태의 긴급성을 알렸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열어 한국 문제를 건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조선군의 즉각적인 전투 행위 중지와 38도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청하는 미국의 제안을 9대 0으로 가결합니다.(유고슬라비아는 기권)


  이러한 결의를 북한 측에 통고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아 다시 안전 보장 이사회를 열어 "회원국들에게 군사 공격을 격퇴하고, 그 지역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남한에 제공할 것"을 7대 1(기권2)로 결의했으며, 이 날 해리 S. 트루먼은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남한에 대한 해,공군의 지원을 즉각 개시하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결국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콜롬비아, 터키 등 16개국의 회원국이 유엔군을 조직하여 한국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그럼 6.25 전쟁이 시작했을 떄의 상황을 살펴볼까요?

6.25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으며 한달여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어붙이는 등 신속하게 전세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서울과 원산, 평양까지 탈환하여 곧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게 됩니다.  

  그리고 38도선을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엔을 시작으로 휴전문제가 언급되었고,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서명되면서 3년 10개월에 걸친 승리 없는 전쟁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6.25 전쟁에 있어 한국은 유엔군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휴전협정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되었을 정도로 당시 한국은 큰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유엔군이 한국에 와서 전쟁의 상황을 변화시켰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표-1 6·25 전쟁 당시 남북 군사력 비교>

구 분

부 대 / 병 력

주 요 장 비

남 한

북 한

남 한

북 한

지 상 군

*보병:8개 사단*해병:1개 부대*기타 지원부대등9만 6,140명

*보병:10개 사단*전차:1개 여단*기타 기계화부대,경비대,특수부대등19만 1,680명

*곡사포:91문*대전차포:140문*박격포:960문*장갑차:27대

*곡사포:552문*대전차포:550문*박격포:1,728문*장갑차:54대*전차:242대

해 군

6,956명

4,700명

*경비함:28척*기타함정: 5척

*경비함:30척*보조함:80척

공 군

1,897명

2,000명

*연습/연락기:22대

*전투기/전폭기/ 기타 : 211대

10만 5,752명

19만 8,380명

 

 


       출처: 군사편찬연구소 (http://www.imhc.mil.kr/imhcroot/data/korea_view.jsp?seq=4&page=1)



우리는 당시 유엔군으로서 한국에 오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모국이 아닌 나라, 한국이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평화를 위해 전쟁 통에 피를 흘리셨던 많은 분들을 우리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표-2 유엔군 피해 현황>


구분

전사/사망

부상

실종

포로

총계

178,569

555,022

28,611

14,158

776,360

한국

137,899

450,742

24,495

8,343

621,479

미국

36,940

92,134

3,737

4,439

137,250

영국

1,078

2,674

179

977

4,908

오스트레일리아

339

1,216

3

26

1,584

네덜란드

120

645

-

3

768

캐나다

312

1,212

1

32

1,557

뉴질랜드

23

79

1

-

103

프랑스

262

1,008

7

12

1,289

필리핀

112

229

16

41

398

터키

741

2,068

163

244

3,216

태국

129

1,139

5

-

1,273

그리스

192

543

-

3

738

남아프리카 공화국

34

-

-

9

43

벨기에

99

336

4

1

440

룩셈부르크

2

13

-

-

15

콜롬비아

163

448

-

28

639

에티오피아

121

536

-

-

657

노르웨이

3

-

-

-

3


 출처: 라이프인코리아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



그런데 우리나라 곳곳에 그 분들을 기리는 참전비는 찾는 사람도 없이,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참전비에 대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관리 주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관리에 필요한 별도의 지원금이 책정돼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우리 역사에 큰 힘이 되어주셨던 분들을 기리는 참전비에 좀 더 자주 찾아가 그들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참전비를 방문하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도 한국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해 알게하는 현장 체험 학습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전비는 6.25 전쟁 당시 유엔참전국이었던 나라별로 한국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 참전비, 영국 참전비, 캐나다 참전비, 태국 참전비, 프랑스 참전비, 호주 참전비, 터키 참전비, 그리스 참전비,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비, 네덜란드 참전비, 뉴질랜드 참전비, 에디오피아 참전비, 콜롬비아 참전비, 필리핀 참전비,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인도․ 스웨덴 의료지원단 참전비 등이 있습니다.


나라별 참전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lifeinkorea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 곳: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Subject=UN2#txt01)




<UN묘지의 모습>


그리고 부산 남구 대연동에 위치해 있는 UN묘지는 1955년 11월 15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에서 오직 하나 뿐인 유엔 관리의 묘지로서,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16개국의 전투지원국과 5개국의 의료지원국의 유엔군 장병의 전사한 영령을 안치한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인 유엔군과 그들을 기리는 참전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삶을 한국에 바치셨던 그 분들께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자녀로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당신을 마음 속 깊이 기억하겠습니다. 한국을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참전비에 대한 좋은 동영상을 발견해서 여기에 링크하여 올려봅니다. ^^





참고 기사 출처:

1) 다음 카페

(http://cafe212.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1VE8&mgrpid=null&fldid=HOgg&contentval=000FI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948&fenc=L7rwq15N-910&srchid=IIMim84n00)

2) 라이프인코리아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

3) 다음 백과사전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X7629)


사진 출처:  

1)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sapjt/26br/16?docid=1ET7a|26br|16|20080618210054&q=6.25%20%C0%FC%C0%EF%20%BB%E7%C1%F8&srchid=CCB1ET7a|26br|16|20080618210054)

2) 동아누리

(http://www.donga.com/e-county/sssboard/board.php?tcode=01012&s_work=view&no=256862)

3) 다음 카페

(http://cafe212.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1VE8&mgrpid=null&fldid=HOgg&contentval=000FI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948&fenc=L7rwq15N-910&srchid=IIMim84n00)

4) 라이프인코리아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
 
동영상 출처: 다음 TV팟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8539191&q=%C2%FC%C0%FC%BA%F1)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8.03 22:31

60번째 생일을 맞은 대한민국에게

오는 15일이면 정부가 수립된지 60주년입니다

60번째 생일을 맞은 '대한민국'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담아보았습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60번째 생일을 맞은 대한민국에게 한마디 하는 것을

쑥쓰러워하셨습니다.

항상 곁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고마움을 표현한다는 건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는 듯이




"에이 무슨 할 말이 있겠어 ~ "

하시면서 웃으시는 모습에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60번째 생일을 맞은 대한민국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

 
   
 축하한다

힘내라 대한민국

대한민국 화이팅


축하의 메세지도 다르고

써준 사람들의 나이도 서로 달랐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그 마음만은 하나임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겠죠


 


수천년동안 지켜온 우리의 땅을

단지 몇 십년이라는 식민 시절 때문에 빼앗긴 설움을

아직도 깨끗하게 해결하지 못해준

독도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담아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보낼 예정인

아들,

동생,

친구 혹은 애인에게도

전할 말을 써주셨습니다.



대한민국과 함께 한 60년

그 60년이 항상 기뻤다거나 행복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숨겨두고 싶을만큼 좋지 않은 추억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마를 날 없었던 우리의 슬픈 이야기들을

지금의 우리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고 발전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60년을 ㅡ

위대한 국민과 이루어낸 기적의 역사라 부를만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대한민국 화이팅!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8.03 04:19

나라를 지키는 그녀들! 그녀들은 우리 군의 어머니! (2)

 그렇다면 북한의 경우엔 여군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북한 여군의 모습들

  북한에서는 여군의 경우 남성과 똑같이 16~17세에 입대하게 됩니다. 북한 여군은 매년 9~10월 정도에 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사전에 지명하여 선발합니다. 물론 지원입대도 가능합니다. 여군의 의무복무 기간은 병사 7년, 군관(장교)은 10년 정도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행정·통신·방공·간호·전투요원 등 모든 병과에 배치되며 소수의 여군은 특수부대에서 활동하기도 합니다.

 

북한군은 여군 비율이 높은데 이것은 남성들의 군입대 감소보다 여성의 군입대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군단급에는 군단 무전결속소(중계소: 대대 약 450명)를 비롯해 군단 보위부(기무사 예하) 여군소대(약 40명)까지 대략 700여 명의 여군이 보직돼 있습니다.

 

또한 북한에서 여군은 각 군단 및 사단 이하 부대에 소속된 통신부대·군의소(군병원)·군단예술선전대와 사단별로 배치돼 있는 대공(對空) 고사총(14.5㎜ 구경) 부대에 주로 복무합니다.

 

한 탈북 여군은 "북한에서 여군도 출신성분과 '빽', 미모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군들이 가장 희망하는 부대는 군의소고, 뒤를 이어 통신부대와 예술선전대로 지원자가 몰리지만, 반면에 고사총 부대는 모든 여군이 기피합니다.

그 이유는 여성 고사총 부대 출신들이 5~6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면 몸이 성한 곳이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북한 여군의 모습

 

 

북한의 여군은 1936년 4월 중국의 만강 부근 수림에서 조직된 여군중대가 시초이며, 이후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꾸준히 성장해 창설된 지 56년 만인 92년에 첫 여성 장령(장군)을 배출했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북한군은 군 복무 중에는 남녀가 공식적으로 사귈 수 없으며 규정을 어기고 몰래 사귀다 보위부·정치부에 알려지게 되면 바로 생활제대(불명예 제대)를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장기복무로 끊임없이 이성교제가 문제시되고 있다고 하는데,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니 만큼 연애 감정만큼은 통제할 수가 없나 봅니다.

 

북한이 현재 여군들을 위해 특별히 배려하는 것은 복무 중 일부 부대이기는 하지만 북한산보다 질이 좋은 중국제 분(파운데이션)과 크림을 배급하는 것, 그리고 제대하면 북한 사회에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군 경력을 인정해 초급 간부를 선발할 때 유리하도록 고려해 주는 정도라고 하네요.

 

 

우리 한국 여군과 비교해보면 북한에서는 여군으로 들어가는 것이 매우 보편화 되어 있고, 남녀 간의 구별이 확실함으로 미루어 보아 군 생활에 있어 여군은 불평등한 사항이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이제는 여군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마음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다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여군들은 그녀들의 마음 속에 큰 애국심과 함께 어머니의 마음으로, 한국이 보다 안전하여 한국의 자식들인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가슴 깊이 여군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임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녀들을 잊지 말고, 나라를 위하는 그녀들을 응원해야할 것입니다.

 

 

그 이름도 찬란한 한국의 여군! 앞으로도 파이팅입니다!!!

 

 

사진 출처:

 

(1) 네로의 조그 블로그 http://www.i-nero.com/iblog/?no=24
(2)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CultureTypeView.jsp?writeDate=20070510&writeDateChk=20070510&menuCd=2004&menuSeq=36&kindSeq=1&menuCnt=30935

 

기사 출처:

 

조선일보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2008072600029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CultureTypeView.jsp?
writeDate=20070510&writeDateChk=20070510&menuCd=2004&menuSeq=36&kindSeq=1&menuCnt=30935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8.02 16:45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감동이야... ㅜ.ㅜ

2002 월드컵에서 느꼈던 그 환희가 내 뱃속에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을 외치고 있어
먹는 방법은 두 가지야.
어느정도 부대찌개를 먹은 후에 밥을 같이 비벼먹든가,
그냥 밥 위에다가 얹혀먹으면서 조물조물 먹는 법.
 
난 달라. 그래서 반은 얹히고 반은 조물조물 먹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애들이 정말 배고프지 않았다면 나를 문밖으로 패대기 쳤겠지만,

다행이 먹느라 정신 없는 탓에 그대로 놔두더라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건빵국방 팀원끼리는 콩 한조각이라도 나눠 먹는 끈끈한 정이 있었지만,

.

.

.

.

.

.

.

.

.

.

.

.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같은 경우는 아래위도 없고 콩 한쪽은 혼자 먹는 거라고 서로 외치고 있었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그 흔적이야. 양이 많아 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다 먹은 걸 보니 전설의 맛집은 역시 맛집이더라구.

여기서 10자 평으로 음식 맛을 이야기 해보자면

'부대찌개 먹어봐야 안다'

30자 평을 하면

'달달한 햄, 야들야들 고기, 깊고 진한 국물 맛 이 적절히 어울리는 면발, 킹왕짱!!!'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가 낼 것인가 신발끈 묶고, 화장실을 다녀오며, 안오던 전화를 받기전에

이렇게 깊은 맛과 역사를 지닌 가게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직접 여쭤보기로 했어.


점심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이 이른 3시였지만 가게 안이 거의 찬

바쁜 시간에 겨우겨우 터줏대감 주인이신 허기숙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Q : 가게하신 지 몇 년 되셨나요?

A : 여기에서는 40년이 넘었는데, 내가 가게를  한지가 52년됐지.

Q : 그럼 52년이 되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뜻 깊었던 사건이나
가게에 대한 기억 등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A : 옛날에 내가 이 장사를 할 적에는 참 수많은 고생이 많았지.

참 수 많은 고비를 넘어갔지.

왜 그랬냐면, 그때 당시에는 부대 고기라는 거는 사회에서 쓰지를 못하게끔 되어 있었거든.

그런데 의정부, 이 동네가 양식음식점도 많고, 자체가 부대였어.

이제 그러니까 의정부가 쪼그마면도 여기가 다 미군들 촌이었지.

그러니까 먹고 살 것도 없고 하니까 맨 처음에는 오뎅으로 한 5달 정도 장사를 하고,

왜냐면 여기가 이쁜 색시들이, 양색시들이 나오니까 미군들이 밤이면 나와서 홀에서 춤을 추거든.

그래서 거기서 미군들 만나서 춤추고 들어오다가 오뎅하고 우동하고 그런 거를 주로 많이 먹고, 속 풀으려구.

그렇게 먹고 댕겼는데, 옛날 부대 아저씨들이 미군 부대 다니면서, 이쁜 색시들이 들어오니까 우리 집에 따라 들어왔단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고기를 내가 가져나 끌어올 테니 장사 할 수 있겠느냐" 해서, 나는 그냥 별 생각 없이 그럼 하겠다고,

지금 오뎅 장사 나으면 그거를 내가 하지요.

아저씨들이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러고서는 부대에 교대로 들어가면, 15명이야. 15명에 반반씩 들어가는 거야.

오늘은 이 조가 들어가면 내일은 저 조가 들어가고.

이렇게 들어가면 미군 장교들 음식을 차려주려고 하면, 여러 가지 수많은 고기가 있어.

모두 몇 종류냐 하면 12가지야.

그거를 그 아저씨들이 버리기 아까워서, 그때 당시에 우리는 어디 가서 고기를 먹어보지를 못하고.

내가 그때 150원씩, 그때 냉장고도 없어서 은박지에다가 말아서 배에다 차고 옷을 입고 나왔단 말이야.

그럼 뜨끈뜨끈한 걸 여기에 가지고 와서 우리 집에 와서 이만한 광우리에 쏟아놓고 했지.

아주 칠면조, 소고기, 양갈비 같은 고기들이 있었지.

그렇게 해서 이제 그걸 해가지고, 그때는 연탄이 있어서 그거를 볶음을 해서 파는 거야. 막걸리도 팔고.

서울 사람들은 여기를 시골이라 그랬지.

그때 당시에는. 시골이니까

그때는 도로도 잘 안 되어있고 하니까, 서울 사람들은 잘 내려오지 않았고

의정부 지역사람들이 와서 한 근에 얼마해서 볶아서 먹는 거야.

그렇게 해서 팔다가 한 1년 정도 했는데, 그게 소문이 자꾸자꾸 퍼지니까

당시에 나를 막 잡아가는 거지.

"누가 이걸 이렇게 갖다 줘서 팔았느냐." 고 취조했지

가게에 들어와서 구석구석 고기 같은 거 있나 막 뒤졌어.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대느냐고.

그래서 그냥 일주일에 한번 씩 계속 붙잡혀 갔지. 그렇게 하기를 13년을 붙잡혀 갔어.

1년 동안은 잘 넘어갔는데, 세관에서 날 잡으러 온 거야.

아침 9시에 들어가면, 저녁 9시에 나오고, 쇠고랑도 찼었어. 집도 짓지도 못해.

어디 온갖 안 뒤지는 데가 없었어.

두 자루씩 새 거도 아닌 고기를 다 뺏겼어. 뺏기고 나면 아저씨들이

"내가 무슨 소시지를 막 가져다 준 것도 아니고, 무슨 양주 같은 거 가져다 준 것도 아닌데,

일단 팔지를 말고 그때 당시에는 오다가다 샀다고 말하세요 할머니" 그랬지

우리를 불쌍하다 해서 애들 공부를 시켜야 하니까 뺏긴 만큼은 돈을 안 받겠다 하고 그냥 해라 했어.

뺏기고 나면 벌금 물고, 갔다 또 나오지.

그래서 시장에서 세 집 중에 두 집은 못하고,

나만 홀로 남았어. 그렇게 먹고 살았어.

이 동네 사람들이 나보고 붙잡혀 가면서 왜 하냐고 나보고 바보라고 했어.

그러다가 88 올림픽 때 즈음부터 마음놓고 식당을 하게 됐지

시에서도 허가를 내줬지

미국 회사에서 와서 미군 통역관하고 미군하고 한 10명 정도가 와서 고맙다고 하면서 고생 많이 했다고 했어.

걱정 없이 하라고 했어. 그래서  해서 지금까지 해온거야

그뒤로 이 주변에 부대찌개 집이 그래서 여기가 한집 두 집 생겨나더라구.

물론, 서울 시청에서도 오뎅가게가 가장 오래된 것을 알고 있어.

여기 우리 집에는 4대가 다니고 있어.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그 아들과 그 아들이지.

서울시장님은 고생했다고 위로해주시면서

부대찌개 거리 아치도 세워주고 같이 사진도 찍었지.

요번에는 1박2일 촬영 팀이 왔었고,

드라마 식객도 하면서 허영만 씨가 몇 년 전부터 와서 만화도 걸어주시고 하면서 가게가 잘되게 됐지.

허영만 씨가 많이 널리 퍼뜨려 줘서 항상 고마워.


Q : 앞으로 계속 장사를 하실 생각이신가요? 
A : 손자가 할 거야, 대학교 졸업하면. 손자가 나이가 26살이야. 손자가 자기가 가게를 하고 싶다고 했어. 가게는 하는 대로 해봐야지. 

인터뷰에 응해주신 허기숙 할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참 가격은 부대찌개 1인분에 7천원으로 올랐어. 다른 사이트 보고 갔다가 가격이 달라 천원 없어서

울지 말고 미리 미리 지갑에 넣고 다니라구.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재밌는 역사도 알고 꿩도 따고 알도 먹고 도랑치고 가재 먹는

우리, 먹으러 갑니다!

역시!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개봉이 박두Yo~!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8.02 16:27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1)

우리, 먹으러 갑니다
전쟁의 혼돈 속 미군부대에서 피어난 '의정부 부대찌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복날이 찾아왔는데 무엇을 먹을까 고민해, 하지만 더위를 때울 때는 술 한잔이 최고라며 친구들은 나오라고 하지. 하지만 그게 능사가 아니야. 하지만 삼계탕을 먹기엔 지겹게 느껴진다면 무얼 먹으러 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다가 생각난 얼마전에 본 1박 2일. 요즘 한창 재밌잖아~ 그 곳에서 윷놀이 하며 먹었던 의정부 부대찌개. 얼큰한 국물에 김치와 햄과 라면의 화려한 조화! 아 생각만 해도 몸보신 되는걸? 언능 먹으러 GoGo씽~

사용자 삽입 이미지

1호선 의정부역오고 나서 부대찌개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해.

그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찾아야하지

저쪽으로 왼쪽으로 보이는 길이 동두천으로 가는 길이야. 저번에 갔던 화평동과 달리 술래잡기처럼 꼭꼭 숨은 의정부 부대찌개를 찾아야하는 미션이 추가 되었지.

길도 건너서 왼쪽으로 쭈욱 걸어가 나오는 첫번째 사거리에 도착해야해

발맞춰서 노래 부르며 걸어 보자구~'오른발~ 왼발~♬'

여기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또 들어가면 드디어 고지인거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둥! 드디어 나온 '명물 의정부 찌개 거리' 가리키는 것이지 삿대질이 아님을 이해해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많은 부대찌개집 중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괜찮은 조건에 맞물려 다른 가게랑 논다면 원조가 싫어할지도 몰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얏 여기다~! 찾느라 너무 배고파졌어.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가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리를 잡아야해. 처음 왔지만 처음 오지 않은듯,
연애도 그렇잖아. 처음 한 티가 너무 나면 손해보기 십상이거든.
한 일년 정도 단골인듯 행사해야해.
그래야 단골 어드벤티지를 얻잖아
"어머니~ 오래간만이예요! "
"뭐시여, 첨 보는디?"
"한 2년전에 와서 그런가? 잊으시니 섭섭해요!"
적절한 추임새를 넣으며 앉도록 해.
그럴 포스가 없다면 그냥 Sit down이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40년 이상의 세월만큼 오래 되었을 것 같은 넓적한 솥뚜껑 냄비, 그리고 가게안 가구, 식기들

기독교에서는 먹기전에 기도하듯, 역사적인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온 우린, 식객의 만화속에 감동 깊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아보았어. 저기 판넬 오른쪽 위의 글이야. 먹으려고 하는데 숙연해지던걸.


==========================================================================================

세계적인 퓨전음식 부대찌개

부대찌개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만들어낸 음식이다.

의정부의 부대찌개 상인 연합이 '의정부찌개'로 이름을 바꾼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백지위에 반듯한 선을 다시 긋듯 생채기를 지우고 새 살로 태어나려는 노력이겠다.

부대찌개를 생각하면 우리의 슬픈 현대사가 함께 떠오른다.
전쟁의 혼돈 속에서 모두가 춥고 배고팠던 시절,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햄으로 찌개를 끓여먹으며
허기를 달랬던 우리들의 서글픈 얼굴이,
그러나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부대찌개는 어느덧 가장 한국적인 음식 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그것이 한국의 힘이 아닐까.

전쟁의 폐허 위에 우리는 장미 한 송이를 가꾸었다.
그것은 절망속에 핀 꽃이었고 고통을 딛고 뻗어나는 푸른 줄기였다.
재건에의 의지는 굴하지 않는 희망이었고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다
.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묵념을 하다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는 부대찌개.

"어머니~ 말씀좀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허겁지겁 맨발로 뛰어가 맞이하려고 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찬은 딱 두가지야. 소금으로 간을 했다는 묵은 배추김치.

그리고 달달한 맛이 아주 일품인 무짠지.

무와 배추, 단 맛과 짠 맛.

남과 여, 아빠와 엄마,

오른손과 왼손.

-_-; 쓸데없는 비교체험 극과 극이었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훈남으로 변신한 남자친구 보는듯한 저 눈빛.

실제로 먹을 땐 한수저 한수저 정성스럽게 뜨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이었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살짝 뚜껑을 열어봤어.

얏 면이 황금색이야. 워낙 배고프다보니깐 신기루가 10cm앞에서 펼쳐지는 것이

빨리 '뱃가죽'님을 채워줘야 함을 강하게 느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뽀글뽀글뽀글,

드디어 영광의 한수저 뜨는 순간.

이럴때는 내가 한 살이라도 더 먹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해.

Lady first 따위는 약육강식 세계에 통하지 않는거다!!!

무조건 나이순이다!! ㅎ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8.01 20:14

독도는 우리땅, 그것이 알고 싶다.

미 국방부 산하 국립지리정보국(NGA)은 작년 8월

'주권 미(未)지정 지역(Undesignated Sovereignty)'이란 개념을 신설해

독도를 포함한 것이 알려져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각 지명이 속한 '국가(country)'분류 코드를 개정하면서,

'주권 미지정 지역'코드(UU)를 신설했는데 실제로

이 코드를 가진 지역은


 "주권의 상태가 확인될 수 없거나,

분쟁과 관련된 곳으로 미국이 입장을 취하지 않는 곳의 지형물" 을 의미합니다.


즉, 이 코드에 속하게 된 독도는 '분쟁지역'임을 의미하게 됩니다.



 

미 국립지리정보국 NGA

(National Geospatial-Intelligence Agency) 

 

지구상의 모든 지형물의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국방부 산하 미 정보기관. 연방정부 내의 각 부처 지리전문가들의 모임인 지명위원회(Board on Geographic Names·BGN)에서 논의된 사항을 최종 정리 결정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분쟁지역이라는 것은 대체 어디서 온 말인가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시한 20세기의 지도. 1953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때 영국측이 마련한 초안에 수록된 지도.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최초의 국제적 승인 ?


1943년의 카이로선언


 '폭력과 탐욕으로 강제 점거한 모든 영토로부터

                                                            일본을 추방한다'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SCAPIN) 제677 발표


지령 3조에서는 일본의 영토에서 '울릉도와 리앙쿠르암(독도), 제주도를 제외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것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최종 판결한 국제 문서입니다.







그런데 왜 일본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을까요 ?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로 인정됐다" _ 일본의 주장



 연합국이 일본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약을 체결할 당시

미국의 1차 초안에서 5차 초안까지는

모두 독도를 한국 영토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5차 초안을 입수한 일본은 당시 주일(駐日) 미국 정치 고문이었던

윌리엄 시볼드(Sebald)를 통해 '독도가 1905년 이래 일본령이었다'는

로비를 벌인 결과



 최종 조인된 평화조약에서는 독도 관련 내용이

                       아예 빠지게 되었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킨다'는

명문 규정은 없었기 때문에 이에 앞선 SCAPIN 677호는

계속 유효하게 됐던 것이며,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국방부는 왜 독도를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았을까?

국방부의 독도 방어

                    그 양날의 칼




 독도는 현재 경찰이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죠?

 실제로 많은 국민들은 왜 해군, 공군 혹은 해병대

독도에 적극적으로 주둔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침묵을 지켜왔던 군 당국이

올해 들어서는 이런 관행을 깨고 독도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군 당국이 침묵을 지켜온 이유,

         

           독도에 군병력을 적극적으로 주둔시키지 않았던 이유,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영토 수호독도 분쟁지역화


 현재 경찰이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독도에 군병력을 투입한다면

결과적으로 일본을 자극해 군대 차원으로까지 문제가 확대되면서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상을 각인시키게 된다는 해석입니다.


 즉,

 군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오히려

국제사회에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고 사태 해결을 복잡하게 할 수 있는 등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방부는 군병력 주둔이

"군사적인 긴장을 유발해 분쟁 수역화를 노리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군은 그간 독도방어훈련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로 붙여왔지만

이 훈련 일정을 외부에 공개하고

’2008 국방백서’에 독도를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표기를 강화하겠다고 공개했습니다.-


이상희(李相憙) 국방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의에서 독도방어훈련을

7월 하순과 11월 중으로 계획했다고 일정을 공개했습니다.

이 장관의 발언처럼 올해 첫 번째 훈련은 오는 31일 동해상에서 개최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훈련에 해군과 공군, 해양경찰 등이 합동 FTX(야외훈련 연습)
해군의 광개토왕함(3천900t)급 한국형 구축함(KDX-I)과 해경정,

KF-16 전투기 , 대구기지에 전개된 F-15K 전투기도 참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광복 이후로 계속 되어왔던 독도 영토분쟁이 이제는 깔끔하게 해결되서


더이상

일본이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27일 오후 독도의 동도와 서도 사이 앞바다에 뜬 대형 태극기 (30m × 세로 20m)

울릉도 주민과 독도 방문객 등 6천명이 직접 유성 아크릴 물감으로
최근 한달동안 울릉도 도동항 인근 소공원에서 핸드프린팅해 제작되었다.
 





  국민과 함께 Smile, 60년지기 국방부   

              공感, 의食주, 육해空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국방부가 함께합니다 :)

 


■ 자료 출처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7/30/2008073000523.html

'독도는 주권 미(未)지정 지역' 미(美) NGA, 작년 8월 결정 


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27//2008052701143.html

독도 앞바다에 태극기 띄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7/25/2008072500084.html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부 "독도는 일본 땅 아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7/28/2008072801124.html

軍, 독도문제에 목소리 높여 '눈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7/20/2008072000611.html

軍, '해병대 독도주둔' 신중대응 주문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8.01 02:42

여러분은 "건빵"을 즐겨드시나요??

여러분은 "건빵"을 즐겨드시나요??

 

군대에서 가장 즐겨먹는 간식은 무엇일까요? 군대하면 생각나는 간식은??

이런 질문에 당신을 무슨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군대 갔다온 사람이라면 아니,,누구나 한번쯤은 먹어봤을 "건빵!"

막상 먹어보면 아무런 맛도 안나는 심심한 "건빵"이지만 자꾸만 손이가는 "건빵!"

과연 "건빵"은 언제부터 시작한 것일까요??

먼저 "건빵"의 정의에 대해 알아볼까요??

 

건빵[hard tack]

밀가루, 이스트, 설탕, 소금, 쇼트닝(기름) 등을 원료로 하여, 수분이 6 % 이하가 되게 구운 빵을 말합니다. 또한 수분이 적으므로 저장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휴대하기 편리하여, 등산이나 항해를 할 때 비축식량 ·휴대식량으로 쓰이고, 군대의 비상식량이나 긴급 재해대책용으로도 많이 이용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과연 "건빵"은 어디서부터 생겨났을까요??

 

본디 중세 유럽에서 군인 및 선원들에게 비상식량으로 개발된 비스킷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바로 입으로 먹는것이 아닌 물과함께 죽으로 끓여 먹었다고 합니다. 크기는 정사각형의 크래커

모양으로 크기가 어른 손바닥 크기정도였다니 지금과 비교하면 크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북전쟁 사진>

 

본격적으로는

18세기경 남북전쟁 당시 군대용 비상식량으로 건빵(Hard Tack)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에서는 건빵제조기술을 극비로 하여, 우리나라에게 기술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해방후 건빵제조기술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지금의 건빵크기의 시초는 일본에서 만들어진것입니다.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건빵제조에 대한 시초는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역사적 사실로 2가지 큰 가설로 정리됩니다.

 

첫번째는..

"건빵 제조기술 습득 후, 구멍 2개가 뚫린 현대의 건빵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선 한국전쟁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고,

 

두번째로는..

  "애초부터 구멍이 뚫린 현대의 건빵이 한국전쟁 당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 왔다” 는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의 군용건빵>

 

 

건국후  대략 54년정도 군용식량 및 우리들의 오래된 간식거리가 되어온 "건빵"

퍽퍽하기만 하고 딱딱한 건빵도 이러한 역사가 있었네요..

지금부터라도 건빵의 역사.. 한번 생각해보고 먹어보아요!!

 

 



  국민과 함께 Smile, 60년지기 국방부   

        공感, 의食주, 육해空, Thanks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국방부가 함께합니다 :)


 

 

 

<자료출처>

건빵의 정의_네이버 백과사전 : http://100.naver.com/100.nhn?docid=7936

남북전쟁사진_네이버백과사전 : http://100.naver.com/100.nhn?docid=35536

건빵사진 :http://imag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detail&rev=4&query=%B0%C7%BB%A7&from=image&ac=- 

              1&sort=0&res_fr=0&res_to=0&merge=0&spq=0&start=147&a=pho_l&f=tab&r=27&u=http%3A%2F%2Fblog.naver.com%

              2Fmast2rjs%3FRedirect%3DLog%26logNo%3D120032647963

건빵 자료참고 : http://blog.naver.com/pjw3260?Redirect=Log&logNo=5003009222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7.25 01:50

집중 호우, 이럴 때 생각나는 건 누구 ?

태풍,  집중 호우, 장마




 해마다 7월 중순 쯤이면 우리 나라에 불현듯 찾아오는 이들

7월 25일 현재 중부지방에도 어김없이 집중 호우가 찾아와서 비를 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히나 집중 호우로 인해 발생하는 침수, 낙석, 토사 등에 의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는 매해 기록되어왔습니다

그 피해로 인해 수많은 농가들이 손실을 입었고

강이나 바다와 접한 많은 지역의 집들이 침수되었습니다.


 






 40여년 전인

 1966년 7월 22일에도 역시 중부지방에 집중 호우가 있었네요

 당시의 뉴스를 한 번 보실까요 ?






 



 큰 비가 와서

피해를 입었을 때

마치 슈퍼맨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건네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


 두들 알고 계시죠 ?

 




그 중에는 많은 민간 봉사자들과 공무원 분들

그리고 수많은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가까운 농가나 피해 지역으로

마치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 그들이 있었기에

다시 복구될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민, 관, 군이 하나가 되어

대민구호를 한 예는

집중호우 뿐만 아니라 폭설이나

2007년 12월 태안에서 있었던 기름 유출 사고와 같이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항상 있어왔었죠.







대민구호에 앞장 서준

많은 자원봉사자들,

공무원들,

 

그리고 군인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항상 당연하다고 여겨 왔던 일들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과 함께 Smile, 60년지기 국방부   

         공感, 의食주, 육해空, Thanks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국방부가 함께합니다 :)










 

■ 사진출처

SBS 9시 뉴스 2008년 7월 24일 방송 캡쳐

■ 대민구호 사진

네이버 뉴스 이미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206627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113731&sc=naver&kind=menu_code&keys=25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9210195

http://www.segye.com/Articles/News/Society/Article.asp?aid=20060803000782&ctg1=01&ctg2=00&subctg1=01&subctg2=00&cid=0101080100000&dataid=200608031314000063

 

■ 동영상 출처

대한뉴스 제 580호

http://photo.allim.go.kr/history/remember_sub.jsp?mmdd=0721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