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씽교통부'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08.08.05 행사취지와 관련된 댓글과 관련해서 공지드립니다. ^^
  2. 2008.08.01 서울 지하철 시리즈 : 3. 대우그룹이 지하철 3, 4호선을 건설하고 운영하려 했었다?
  3. 2008.07.31 한국건설60년! 전쟁폐허를 복국하고 희망을 개척하다!
  4. 2008.07.30 서울 지하철 시리즈 : 2. 2호선 처음 계획은 순환선이 아니었다?
  5. 2008.07.29 할아버지 살던 집, 내가 사는 집 - 주택양식의 변화
  6. 2008.07.29 비둘기호에서 KTX까지, 그리고 KTXⅡ,틸팅열차까지
  7. 2008.07.29 국민과 함께하는 건국 내각 EVENT!! - 교통부
  8. 2008.07.29 지금 대한민국과 하나되러 갑니다♬
  9. 2008.07.26 대한민국이 있어 외롭지 않은 섬, 독도! - 3
  10. 2008.07.26 교통부 - 박은정 사무관님과의 멘토링 시간♬
2008.08.05 14:52

행사취지와 관련된 댓글과 관련해서 공지드립니다. ^^

일단, 사이버 건국내각 교통부 블로그에

많은 관심과 응원 보내주신 것에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


저희 행사취지와 관련된 댓글에 대해 공지말씀드리려고 이렇게 글을 포스팅합니다.


저희 사이버 건국내각의 행사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즉 건국60년동안

국민들이 이루어 낸 기적의 역사들을 되찾아 인터넷상으로 되짚어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여기서 건국이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즉,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긴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중점을 두고 다루는 역사의 시점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지금까지 즉, 건국 60년에 맞추었을 뿐입니다.

 

1948년 이후, 우리 대한민국이 굉장한 성장발전을 했다는 것에 대해 다들 공감하실 것입니다.

저희는 그 성장발전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앞으로, 저희의 행사취지와 맞지않는 내용의 댓글에 대해서는 '삭제'처리할 것임을 공지해드리는 바입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60년동안 이루어 낸 기적의 역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저희행사의 취지도 기억해주세요!



- 사이버 건국내각 교통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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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1 09:29

서울 지하철 시리즈 : 3. 대우그룹이 지하철 3, 4호선을 건설하고 운영하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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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시리즈

 

3. 대우그룹이 지하철 3, 4호선을 건설하고 운영하려 했었다?



1978년 어느 봄날,

시민들은 신문 1면에 실린 기사 타이틀을 보고 적잖게 놀랐을 것이다.

"지하철 3, 4호선을 대우그룹이 맡아서 건설하고 운영까지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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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련 기사사진. 출처 : 조선일보 1978. 5. 4)



2호선을 순환선으로 계획하고 건설을 지시한 구자춘 시장은,

시청 안에 바둑의 적수가 없을 정도로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였다.

종합적인 판단력을 지닌 그는

순환선인 2호선 건설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방사선인 3, 4호선 건설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서울시의 재정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머지 노선은 민간 기업이 건설할 방도를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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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련기사. 출처 : 조선일보. 1978. 3. 3)



지하철 건설과 운영을 국가가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역시 사철(私鐵)이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지하철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을 확보하고자 일본의 경우에는

재벌이나 대기업의 부동산 투자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시공사가 지하철 역 주변의 땅을 미리 사 두었다가

대규모 주택건설로 막대한 돈을 벌어 비용을 충당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78년 8.8 조치 이후

대기업과 재벌들의 부동산 투자는 금지되어 있었다.

국민 감정 역시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지하철 요금만으로 전철을 건설하고 운용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당시 지하철 건설에 참여하길 원하는 민간기업은 상당수였다.

그리하여 정부는 당시 무섭게 성장하며

무역, 금융, 개발, 건설로 분야를 확장하는 대우기업

지하철 건설 시공사로 선정했다.

이후 대우를 비롯해 6개 건설업체가 협력해

'서울지하철건설주식회사' 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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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련기사. 출처 : 조선일보 1979. 10. 12)




하지만 2호선 건설비용이 8771억원에 이를 정도로 막대하였고,

각 기업에서 모으기로 했던 출자금 300억 중 92억밖에 모이지 않았다.

즉, '금전적 문제' 때문에 주식회사는 해체되고,

결국 서울지하철공사가 설립되어

지하철 3, 4호선을 건설하기로 결정되었다.



당시 서울지하철공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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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파발-불광-종로3가-고속터미널-교대-양재를 잇는 3호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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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창동-수유-동대문-서울역-사당을 잇는 4호선.

그리고 기존의 1, 2호선 운영까지 맡게 되었다.

서울지하철공사는 이후 서울메트로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



1985년 10월 18일,

서울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X자로 교차하는

총 길이 59.2km의 3, 4호선이 개통되었다.

이로 인해 서울은 지하철 대중교통 체계가 확립되어,

명실공히 세계의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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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서울 지하철 1-4호선 노선도.

이때는 중앙선의 명칭이 국철이었으며,

현재 외대앞역의 명칭이 휘경역이었다)



이후 3호선은,

1993년 양재-수서 구간이 개통되었고,

일산에 신도시가 세워지면서

1996년 1월, 지하철 3호선을 연장한 일산선(대화-구파발) 역시 개통되어,

현재의 대화-수서 노선 완전 개통으로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까지의 이동이 편리해졌다.



그리고 4호선 역시 위 상계-사당 구간에서 계속 연장되었는데...


잠시 살짝 1호선 이야기로 가보자.

1988년, 수원, 인천을 거쳐 안산까지도 1호선이 연장되었다.


1992년, 당고개-상계 노선이 개통되었는데,

1994년, 기존 사당까지 운행되던 노선이,

과천에 부분적으로 개통되어 있었던

금정-남태령-인덕원 노선과 연결되어 개통되었다.


그리고 과천과 안산이 가까운 점에 착안,

원래 1호선에 있던 안산선이

4호선으로 옮겨가게 되어

현재의 모습인 당고개-안산 노선 형태를 띄게 된다.


이후 2000년, 오이도-안산 노선이 연장되면서,

현재 볼 수 있는 당고개-오이도 구간이 개통되었다.


기존 과천에 존재하던 노선과

사당까지 연결된 서울 지하철 역시,

1호선처럼 전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4호선의 남태령-선바위 구간에서도

1호선과 마찬가지로 달리는 열차의 불이 잠시 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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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1 16:34

한국건설60년! 전쟁폐허를 복국하고 희망을 개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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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60년! 전쟁폐허를 복국하고 희망을 개척하다!

 

자료 출처 :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06/e2007061716365569550.htm

사진출처:
차례로 위->아래 좌->우
1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06/e2007061716365569550.htm
2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06/e2007061716365569550.htm
3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06/e2007061716365569550.htm

1호선개통기념식 : http://cafe.naver.com/gunjacha/148
소양강떔완공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319629
연대별주요공사: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06/e2007061716365569550.htm

와우아파트붕괴사고현장: http://blog.naver.com/joymkw?Redirect=Log&logNo=120006856521
삼풍백화점붕괴사고현장: http://nemo.naver.com/nemo/29008/10
성수대교붕괴사고현장:  http://blog.naver.com/tmdruadlek01?Redirect=Log&logNo=50030392914

88올림픽잠실주경기장: http://cafe.naver.com/breezeurlife/595
인천국제공항: http://cafe.naver.com/cafechogo/5071
상암월드컵경기장: http://blog.naver.com/jej04?Redirect=Log&logNo=120009684891

현대태국파타니건설현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196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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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17:33

서울 지하철 시리즈 : 2. 2호선 처음 계획은 순환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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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시리즈

 

2. 2호선 처음 계획은 순환선이 아니었다?



1974년 어느 날, 안국동의 한 한식집에서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구자춘

홍익대 도시계획과 교수 김형만이 만났다.

김 교수는 서울은 이제 4대문 중심의 단핵도시에서

도심, 영등포, 영동(강남)을 중심으로 하는

3핵도시로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구 시장은 그 의견을 깊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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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된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노선)


앞서 양택식 시장 때 1호선을 계획하면서

2-5호선의 노선 역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영등포-왕십리까지의 구간으로 확정되었던

2호선 노선을 구자춘 시장은,

3핵을 중심으로 서울이 발전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강북 도심-영등포-영동(강남)-잠실-왕십리를 오가는

순환 노선으로 변경해버린다.


"구로공단 앞은 통과해야겠지."

"서울대 앞도 지나야겠지."

"대학가 앞이니 신촌도 지나야지."

1975년 2월 초순, 대통령 연두순시를 앞둔 어느 날,

도시계획과장과 지하철건설본부장을 시장실로 부른 채,

구자춘 시장은 색연필을 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서울시 지도에 선을 그어 나가기 시작했다.

20분 후, 서울시 지도 위엔

둥그런 형태를 띈 노선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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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된 서울 지하철 2호선 노선)


단 20분만에 단일노선이 순환노선으로 바뀌어버렸다.



본래 열차 노선은 단일노선이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때쯤,

순환노선이 만들어지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당시는 겨우 막 1호선이 건설된 시점.

이러한 상황에서도,

구 시장이 강하게 주장하는 '순환노선 기획안' 이라는

이 엄청난 프로젝트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고,

1978년 3월 9일, 이 계획대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착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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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건설 사진.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영상에서 캡쳐)


그리고, 순환 계획에 따라 차례로 노선이 건설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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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성수-신설동-종합운동장-교대-서울대입구-시청의 순환선.



도심을 통과하는 을지로선까지 건설하자,

1984년 5월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시공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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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 시공식 때 시청역을 달리는 2호선. 右: 2호선 시공식 때 참석해서 축하하는 대통령.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순환선인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전 구간 48km가 순환선으로 완전히 개통되어,

시민들의 교통이 한결 편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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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로터리 앞과 서울시청에 걸린 2호선 전 구간 개통 축하를 알리는 표지판.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지하철 노선 선정과 계획은 많은 전문가의 동의를 구하며

신중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찌 보면 너무 대충 계획된 노선이겠지만,

현재 2호선의 역들은 서울의 주요 지역모두 통과하고 있고,

한강 이남 지역 인구가, 특히 영등포-구로-관악-강남에서만

1266000명이 늘어난 사실로 보아,

3핵도시론과 지하철 2호선이 서울에 끼친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실제로 2호선 건설로 인해,

서울의 4대문 내에만 집중되었던 도시 기능인구

점차 다른 지역으로 분산되었기 때문이었다.



지하철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면서,

지하철뿐만이 아니라 지하도 역시 같이 건설되었다.

이곳은 지금도 서울의 중요 상업지역으로 이용되는데,

을지로 지하에 있는 대략 3km가 넘는 지하 쇼핑센터

그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본인은 그곳에서 길 잃어버린 적이 정말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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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건설 때 같이 건설된 을지로 지하보도.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이렇게 건설되기 시작한 지하도가... 현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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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차례로 을지로, 영등포,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사진.

출처 을지로 : http://wow.seoul.go.kr/wow/photo/photo_thum_view.jsp?num=214024

영등포 : http://wow.seoul.go.kr/wow/photo/photo_thum_view.jsp?num=4426

고속터미널 : http://wow.seoul.go.kr/wow/photo/photo_thum_view.jsp?num=4698)


이러한 모습으로 변해, 상업지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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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9 07:24

할아버지 살던 집, 내가 사는 집 - 주택양식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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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을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의 60년, 일상사를 들추어본다!


그 첫번째 이야기,

할아버지 살던 집, 내가 사는 집

(1)  할아버지 어릴 적

 

 

60년 전 1948년을 살았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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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를 소개할게요!

우리 할아버지는 일제시대가 끝날 무렵에 태어나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연세가 많으시고 대한민국 60년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우리 할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

지금같이 후덥지근한 날씨에는

저에게 무릎베개를 해주시고 살랑 살랑 부채를 부쳐주시면서

옛날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답니다.


할아버지가 어릴 때는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대요

그래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의 할머니하고 할아버지의 큰아버지

할아버지의 큰 어머니, 할아버지의 아빠,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의 사촌형하고 할아버지 이렇게 일곱명이서

한 집에 살았대요


와~이렇게나 많은 가족들이 한집에 살았으면 얼마나 집이 컸을까요?

그런데 집이 크지 않았대요 .

할아버지네는 조금 그래도 형편이 나아서 기와집에서 사셨는데

다른 집들은 초가집이나 오두막에서 사는 경우도 많았대요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해서

할아버지하고 가족들과 마을 이웃들은

감출 수 없을 정도로 기뻤대요


그런데 얼마 안가서 1950년 6월 25일

무서운 3년간의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모두들

부산으로 내려갔대요


할아버지 가족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 집도 할아버지와 놀던 친구의 집도

없어져 있었대요

할아버지 가족들 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구 해요


요즘 저희가 쓰는 말로 OTL

그 당시 상황은...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대요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보내주는 원조에

의지할수 밖에 없어서

전세계 최빈국 "대한민국"

상황이었다니 ....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

2008년을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의 60년, 일상사를 들추어본다!


그 두번째 이야기,

할아버지 살던 집, 내가 사는 집

(2)  할아버지와 아빠

 

전세계 최빈국 "대한민국"

전쟁으로 할아버지와 이웃집들이 많이 없어졌대요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남쪽으로 내려갔던 피난민들이 서울로 돌아오면서

사람들이 '살곳' 이 많이 부족했대요

 

그래서 1955년 나라에서는

대한주택영단이라는 곳을 통해

"국민주택"을 지어서 집이 부족한 것을 해결하려고 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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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떄 '국민주택'을 지을 때, 서구적인 생활을

추구해서 생활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해서

국민주택을 문화주택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이런 주택들이 모여있는 곳을 문화촌이라고 불렀대요

 

우리 할아버지도 국민주택의 혜택을 받아

불광동에 있는 문화촌에

자리를 잡았었대요 ㅎ

여기서 우리 아빠도 태어났고요

우리 아빠가 어린 시절을 보냈대요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함께 서울에 일자리가 많아지다 보니까

서울로 농촌의 인구들이 많이 몰렸대요

그것에 비해 주택의 공급은 적었고요

그래서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산이나 도심근처에

무허가 판자촌을

 이루며 살았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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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친구 분도 여기에 살았대요

이곳을 사람들은 "달동네" 라고 부른대요

 

아! 저도 읽은 기억이 있는 것 같아요!

조세희 씨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나오는 곳이 달동네?! 맞죠? 아빠?

 

아빠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시네요!


이런 달동네들은

생활환경이 매우 안좋대요 그래서 나라에서는

1957~1970년 사이에

이런 달동네 주민들을 국공유지로 이주시켰대요

 

아빠 친구분도 그래서

그 유명한 " 미아리" 에 만들어진 집단정착지로

이사를 가셨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판자촌에서 서울 외곽으로

이사를 가셨대요 그런데

 

이사간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라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없었대요

그래서 결국 서울 외곽 까지 판자촌이 넓어지는

결과를 낳았대요

 

아, 여러분, 혹시 고속국도를 타고 가다가

산과 들 사이로  

같은 색깔의 지붕으로만 이루어진 마을 보신적

없으세요? 전 본적있어요!

 

왜 한 색깔로만 되어 있지?

궁금해서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니까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벌여진 지역사회 개발운동인

새마을 운결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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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개량 사업으로 (당시에는) 보기 좋게

말끔히 바뀌었대요

낙후되었던 마을들이 새단장을 하게 된 계기라고 해요

 

초가집으로 이루어져있던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피폐해졌던 우리나라가

 

판자촌이라는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문화주택도 들어서고 많이 달라졌죠?

우리 가족은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불광동의 문화주택에서 쭉 살다가

제가 태어날 때 즈음인 1980년대에

과천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대요


 

우리나라에도 '아파트'라는게 60년대 초반에

생겼대요

그런데 이런 아파트들은 한 채로만 이루어져 있어왔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파트 단지는 아니었대요


 

우리나라에 최초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것이 1962년

대한주택공사에서 지은 마포아파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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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마포아파트는 미분양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점차 사람들 사이에서 서구식 주거양식의 대표로

통했대요


 

마포아파트가 지어짐과 함께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이 열렸다고 할 정도로

마포아파트가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대요


 

그러다가 나라에서는 중산층 위주로 공급하던 아파트를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사람에게 까지 공급하는

정책을 마련해서

공급하게 되었대요

그 대표적인 예가  

"와우아파트" 래요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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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라에서 어려운 사람에게까지 공급 할 정도의

충분한 재정을 확보하고 있지 않아

아파트 건설의 계획수립과 건설이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대요!


 

그래서 부실공사로 사회적인 문제가 대두되었고

1970년 4월

와우아파트가 붕괴되는 비극을 겪을 수 밖에 없었대요


 

이런 비극을 뒤로 하고

아파트는 점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고 해요

그리고 서울이 점점 커지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1980년대 접어들면서 대규모 단지가 서울 교외에 들어서게 되었대요

그 예가 우리 집이 있는 과천과 목동, 상계동이 대표적이에요

또 이때를 지나면서 20층넘는 높은 아파트들도

올림픽 선수촌을 비롯해 서울 근교 신도시에

지어졌어요

그만큼 우리나라 건설기술이 발전했다는거겠죠?!


 

그렇지만 그만큼 높은 아파트들이 몰려있다보니

점점 고밀화, 고층화가 심화되어왔어요


 

그래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이름도 가지게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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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아파트는 이제 범국민적인 주거형태로

자리를 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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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시면 아시겠죠?

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30년 동안 50배나 늘어났어요

지금은 전체 인구의 반

아파트에 살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네요


 

지금 우리집에는 아빠, 엄마, 저 ,동생이 삽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금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계세요~

예전에 할아버지 어릴때는 한집에 일곱명이나 살았다는데..

당시에는 많은 것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 우리집에는 네 식구가 살고 있답니다.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당당히

세계에서 통하는

"Made in KOREA "


 

내가 커서 나중에 살게 될 집은 어떨까요?


 

2008년 오늘을 살고 있는 지금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요?

 

요즘 대도시를 중심으로

아파트에서 한 단계 더나아간 형태인

주상복합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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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높이가 일반 아파트보다

높아 사무용도의

빌딩과 비슷한 인상을 받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주상복합형태의 아파트에

살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고

도시에서 교외나 시골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많을 거에요

 

그래도 도시와 교외, 시골이

물리적으로는 멀리 있더라도

그 물리적 거리를 넘어서는

시대가 올거에요

 

바로 유비쿼터스  세상이죠!

 

유비쿼터스

"언제 어디서나" 라는 뜻의 라틴어래요

이 말이 컴퓨터분야에서는

사용자가 네트워크나 컴퓨터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어요


미래에는 이런 유비쿼터스가 우리 생활과 함께하면서

지금보다  상상하지 못할 좋은 세상이 올거에요



우리의 대한민국은 IT강국이니까

그만큼 이 시대가 빨리 오겠죠?


위대한 국민! 기적의 역사! 대한민국 건국 60년!

앞으로 올 미래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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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대한민국 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 자료와

논문 "주거변화의 일상사적 담론과 한국주거의 근대화과정(전남일 교수 외3인)"

의 자료 일부를 참고했습니다. 

이 포스트는 기존 컨텐츠를 다시 보기 좋게 하나의 컨텐츠로 재 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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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9 06:45

비둘기호에서 KTX까지, 그리고 KTXⅡ,틸팅열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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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둘기호에서 KTX까지, 그리고 KTXⅡ,틸팅열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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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이 땅에 처음으로 '철도' 라는 것이 등장해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이 놓였다.

이때 철도의 주 목적은 화물 운송이었을뿐...


이후 대략 50년 정도가 지나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우리나라의 철도는 점점 체계를 갖추어 나가게 되는데...



그 변천사와 발전과정을 소개하기 위해!
대한민국 사이버 건국내각 교통부 부원들은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철도박물관을 다녀왔다.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철도박물관
교통부의 정책보좌관들과 대변인은 교통부의 장관을 모시고
앞뒤로 경호원들이 경호하는 차를 타고 철도박물관까지 이동...
...하지는 않고 그냥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갔다.
초라해 보인다고? ㄴㄴ
모름지기 진정한 교통부 부원이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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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박물관에 가는 교통부, 철도박물관에 도착한 교통부!


의왕역에 내려 1-1 버스로 환승해 철도대학 앞에서 내려서 조금 걷다 보면

짜잔! 철도박물관이 나타난다.


↑ 철도박물관 위치 - 의왕역 광장에서 버스 1-1 혹은 1-2를 타시면 가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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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형 기차들을 보고 신기해하는 교통부 대변인과 정책보좌관


철도박물관에는 모형 기차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기차,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요즘 다니는 기차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 짐작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것이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열차, 비둘기호.

하지만 처음부터 비둘기호란 이름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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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비둘기호, 실제 운행되었던 비둘기호를 옮겨놓음

 <상단 우측 이미지는 Naver rail4425님 이미지 사용>

 

1967년에 처음 등장한 서울과 부산을 운행하던 특급 열차에

철도청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호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잠시 명칭이 중단되고,

이후 1984년 철도청은 특급열차를 통일호로,

완행열차를 비둘기호로, 전면 명칭을 변경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느린 비둘기호가

바로 이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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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둘기호 사진

<Naver rail4425님 이미지 사용>


서울에서 부산까지 12시간 이나 걸렸으며,
노선에 위치한 모든 역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정차했던,
바로 그 전설의 비둘기호.
비둘기호를 타고 가다보면,
이보다 빠른 속도의 열차가 역을 다 지나갈때까지는

그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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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비둘기호, 실제 운행되었던 비둘기호를 옮겨놓음

 

1967년 당시에는 이미 통일호, 무궁화호 등 여러 열차가 개통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청에서 완행열차인 비둘기호를 개통한 이유는 바로

'저렴한 이용요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격도 서비스!! 라는 개념 때문이 아니라...

당시 다른 열차에 비해 비둘기호는 상대적으로 요금이 저렴했다.

급행열차의 1/5밖에 되지 않았던 요금 덕분에

가난한 사람들은 비교적 덜 부담되는 가격으로 열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기본요금이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서울 지하철 1구간 요금보다도 저렴했다고 한다.

덕분에 학생, 상인, 노동자들이 비둘기호를 주로 이용했다.

그들이 얼마나 근성가이였는지... 다음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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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비둘기호의 내부 좌석모습 


그때는 전설의 '입석' 표가 있었다.

입석이란 좌석표가 아닌 단순한 '열차 이용권' 이라 보면 된다.

그리하여 그 당시에는 통로, 선반 등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곳이면

그 어디든지 그곳이 바로 좌석이 되고 침대가 되었다.

앉아서 가도 허리가 끊어질 정도의 시간인 12시간을

서서 가거나 바닥에 주저앉아서 가던 사람들...


힘을 세게 주고 위아래로 여닫아야 했으며,

가끔 달리다보면 저절로 쾅! 하고 닫혔던

낡은 쇠창틀 창문을 달고 달리던,

우리 옛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있었던 비둘기호는

2000년을 기점으로 폐지되어

이제는 전시관에서나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비둘기호라는 이름을 들었다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을 것이다.
만만치 않게 느리고, 역시 노선에 위치한 웬만한 역은 모두 다 정차하는
바로 그 열차, 통일호.

하지만 통일호란 이름 역시 원래는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증기기관차가 사용하고 있었다.


이후 1955년에 특급열차가 통일호로 개명되어 점차 발전되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8시간 ,
평균 속도 80km/h...
요즘 자동차 평균 속도보다도 느리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왜 통일호가 특급열차냐고?

그때는 속도 80km/h만 되어도 초특급열차였다...

하지만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의 등장으로 인해

곧 통일호는 초특급열차라는 명칭을 내어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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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운행되던 통일호의 사진들

 

<왼쪽 위, 아래 이미지는 Naver yangpa105님 이미지 사용,

오른족 위 이미지는 Naver rail4425님 이미지 사용>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과 비교적 괜찮은 속도에

많은 사람들이 통일호를 사랑했다.

1995년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어른 요금이 7000원 정도였으니,

그 정도 가격이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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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통일호의 외관


통일호 역시
2000년을 기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동대구와 포항을 이어주던 통근행 통일호마저

2008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운행이 중단되어

이젠 정말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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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통일호의 내부 좌석모습 


저 의자, 저래뵈도 3인승이다.
2인승 그런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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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부터 우리나라 객차의 변천과정을 나타내는 사진

                                                                                     

 

그 다음 단계인 무궁화호는 처음에는 1956년에 개통되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9시간, 평균 50km/h의 속도운행되었다.

이후 발전을 거듭해 1960년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6시간 40분,

평균 67km/h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단축되는 시간,

점점 빨라지는 속도.

우리나라의 철도는 이렇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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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호 뒷모습

<위 이미지는 Naver rail4425님 이미지 사용>



무궁화호는 현재까지도 계속 이용되어,
지금은 여행용뿐만 아니라 통근용으로도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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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 무궁화호 사진

<위 이미지는 Naver poulro님 이미지 사용>



비둘기호와 통일호에 비하면 무궁화호는 시트부터가

무궁화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 한 켠에 남아있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무궁화호를 타고 갈 때, 새마을호를 보내기 위해

역에 잠시 정차하고 있을 때면

그 짧은 시간이라도 바깥 공기가 그리워서 플랫폼으로 뛰쳐나와

'열차 출발합니다' 라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플랫폼을 서성이던 기억이 났다.

다른 사람들은 무궁화호를 보면서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그 다음, 1974년에, 드디어!

평균 속도 92km/h를 자랑하며

그 당시에는 가장 빠른 열차였던

새마을호가 개통되었다.

개통이 막 되었을 당시 이름은 관광호였고,

1984년, 새마을호로 명칭이 변경되며 속도도 107km/h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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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앞 굴다리 위를 달리는 새마을호...

(아래에 보이는 472번 버스를 보아하니 버스 개편 이후에 찍은 듯 하다. )

<위 이미지는 Naver changeup2002님 이미지 사용>

 

 

새마을호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이는 그야말로 세간의 화제였으며

획기적인 빅뉴스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5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지금 보면 뭐가 대단하냐 싶겠지만

당시에는 서울-부산까지 12시간이나 걸리는 비둘기호도 존재했다 -_-
이런 시절에 새마을호의 등장이란 그저 기적일뿐.

당시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회사 부장님(62년생) : 기차가 그렇게 빠른 건지 처음 알았지.

회사 대리님(77년생) : 시설 보고 혹했다... 의자가 엄청 좋았어.

친구(86년생) : 엄마가 새마을호 아니면 안 타겠다고 그러더라...


믿거나 말거나.




이후 2004년!

프랑스 TGV의 기술을 빌려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고속철도가 등장하는데... 그 이름하야 바로  K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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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달리고 있는 KTX 사진

<위 이미지는 Naver trainktx님 이미지 사용>



평균 속도 130km/h ~ 160km/h, (정차역 사이 간격에 따라 달라짐)

최고 속도 300km/h,

 서울 - 부산 2시간 50분!! ,

철도 발전과정의 최정점에 다다른 KTX.

속도와 시간뿐만이 아니라

쾌적한 서비스 역시 최고!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2010년, KTX II가 개통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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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부터 상용화 될 KTX Ⅱ 실제크기 모형


일단 외관부터가 굉장히 삐까뻔쩍^^ 굿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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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부터 상용화 될 KTX Ⅱ 실제크기 모형의 일반석 좌석


내부가 지금 현재의 KTX에 비해서 굉장히 많이 넓어진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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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부터 상용화 될 KTX Ⅱ 실제크기 모형의 식당칸


지금 KTX보다 조금 더 간지가 나는 것 같기도...



전시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철도(객차; Passenger Cars) 변천과정은

이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앞으로 발전할 모습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발전의 모태는 상상력.

발전의 동력은 끝없는 연구와 기술!


그런고로 새로운 형태의 기차가 공개되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틸팅열차(T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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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한국경제신문사의 이미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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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하철 철도 사진첩 카페 SARA : http://cafe.naver.com/hgcgsubway>


틸팅열차? 그게 뭐임? 먹는 거임?

...그런 게 아니라,

곡선 구간 선로에서 운행될 때에는,

열차가 저 알아서 기울어져서

원심력 때문에 튕겨나가는 현상을 보완할 수 있는

무지무지 똑똑한 열차를 바로

틸팅열차(TTX)라고 한다.

안전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더 빨리 달릴 수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이 역시 2010년에 운행될 예정!

나날이 진화하는 우리나라 철도   


앞으로는 속도도 조금 더 빨라지고

시간도 조금 더 단축되며 (서울 - 부산 2시간은 무리일까? )

더 편안한 여행을 제공해줄 기차가 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근데 있잖아요,

새로 등장할 기차는

제일 앞에 크게 달린 굴뚝으로 연기가 올라오는

이런 고전적인 디자인으로 제작되면 안 되나요?

 (현재속에서 과거의 역사를 느끼고 싶은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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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는 기존 컨텐츠를 다시 보기 좋게 하나의 컨텐츠로 재 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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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9 06:25

국민과 함께하는 건국 내각 EVENT!! - 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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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응원메세지 남겨주시고 ^^ 자주자주 놀러와주세요~

그리고, 8월 13일 이벤트 발표! 잊지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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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9 01:31

지금 대한민국과 하나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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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부의 첫 오프라인 활동 - "대한민국이 하나되어 외칩니다"의 시작을 알리다!

   지금 대한민국과 하나되러 갑니다♬ ^ ^  


이 행사는 대중교통(기차,버스,지하철,택시 등)을 이용해 우리나라국토 '서울 - 대전 - 대구 - 부산'을 돌며,

국민들에게 건국 60년을 널리 알리고 "건국 60년,대한민국 화이팅!" 이라는 응원메세지를 받기 위해 기획되었다.


교통부의 특색에 맞추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며 대중교통의 편리함을 몸소 느끼고 홍보하였으며,

또한, 온 국토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대표 국토를 직접 방문하여, 건국 60년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왜냐하면, 건국 이래, 60년 동안의 교통 / 건설/ 국토 / 해양 분야의 기적의 역사를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올해가 건국 60년째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건국 60년"을 알리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잡았다.


(그럼 건국 60년 동안의 교통부에 맞는 기적의 역사는 언제알리냐고요? ^^ 궁금하시죠??!! Coming Soon!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2008년 8월 3일 일요일, 기적의 역사를 알릴, 기대하셔도 좋을만한 두번째 오프라인 활동이 펼쳐진답니다 ^ㅡ^ 곧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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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건국 60년을 홍보하고, 응원메세지를 받으러 가기로 계획한 도시 - 서울 / 대전 / 대구 / 부산

< 사진 출처 - 코레일 / 내일로 철도 노선도, http://www.korail.com/2008/railro/railline.pdf >


(참고로, 위의 네 도시의 공통점이 무엇인줄 알고 계신가요? ^^ 맞아요! 모두 지하철을 가지고 있는 도시랍니다!)

(서울/대전/대구/부산 위의 4도시 외에도, 광주에도 지하철이 있어요^^ 전국 지하철의 개통에 대해서도 조만간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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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도시의 역에서 찍은 사진들 /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역 - 대전역 - 대구역 - 부산역


■ 위의 네 도시를 방문하기로 계획한 이유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일뿐만 아니라, 지하철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교통부에 맞게 직접 각 지역의 지하철을 체험해보고, 그 속에서 "지하철 개통"의 기적의 역사를 느끼기 위해

또한 오늘날의 국토해양부의 이름에 맞게, 우리나라의 전국토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대표국토를 직접 방문해보기 위해


우리나라의 인구수가 밀집된 대도시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보다 더 많은 국민들에게 "건국 60년"을 홍보하고, 힘찬 응원메세지를 받아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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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단 최하단 사진 - '서울 →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 / 중간 사진 - 부산 지하철 1일 패스권


■ 위의 네 도시를 오갈 때와, 각 도시 내에서 이동할 때, 우리들의 발이 되어준 대중교통

교통부의 특색에 맞게, 시민들의 발이라 할 수 있는 대중교통을 이용 (기차, 지하철, 버스, 택시)

   대중교통이 활성화가 된 것이 교통분야의 기적의 역사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기적의 역사를 몸소 체험!



자 이제, 대한민국과 하나되러 출발한 저희 고고씽 교통부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 - 대전 - 대구 - 부산에 "건국60년" 홍보하러 갈 준비 되셨나요? ^ㅡ^

함께 떠나요♪ "건국60년"홍보하고, 대한민국이 하나되기 위해 힘차게 고고씽♬



↑ 대한민국이 하나되어 외칩니다! 『예고편』

<사용된 음악 - 캐리비안의 해적 OST / "He's a pirate">



"건국 60년 대한민국 화이팅!"

 

대한민국이 하나되어 외칩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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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6 13:33

대한민국이 있어 외롭지 않은 섬, 독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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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도의 이름은?



잠시 쉬어가는 차원에서 퀴즈 하나.


독도의 이름은?


뭥미?! 하면서 어렵게 생각한 분들도 있겠지만, 독도의 이름은 다름아닌 독도이다.



그런데 요즘, 여기저기서 독도의 이름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심상찮게 들려오고 있다.


독도의 이름은 독도일진저, 그 이름을 왜,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가?



지금부터, 독도의 명칭과 그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1900년 10월 25일, 독도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독도" 로 확정되었다.


이전까지 독도는 우산도, 석도, 죽도, 독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다.


하지만 고종 37년(1900년 10월 25일),


정부는 울릉전도와 죽도 및 석도의 관할 군청을 강원도로 지정한다.


이때 울릉도에서 48해리 떨어진 섬의 이름이 석도(石島)로 규정되었다.


여기서 석(石)의 원래 의미인 '돌' 이란 발음이 '독'으로 굳어지면서,


독도(獨島)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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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독' 은 홀로 독(獨)에서 유래되었으며, 돌(石)에서 유래되기도 했다)


(독도 사진. 사진출처 : 독도바다 지킴이 홈페이지 http://dokdo.kcg.go.kr)



물론, 이전부터 독도는 계속 조선의 영토였다.


하지만 1849년, 프랑스의 "리앙쿠르" 호가 동해를 통과하면서


북위 37도에서 섬을 하나 발견했다.


프랑스인들은 그 섬을 발견한 배의 이름을 따


그 섬을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이라 명명했다.


그 섬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도이다.



그리고 2008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독도와 관련된 도서분류에서 주제어로 사용되던 '독도(Tok Island)' 라는 명칭을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 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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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권위있는 지도책 'Comprehensive Atlas of the World' 에서

리앙쿠르 암 Liancourt Rocks으로 표기된 독도.

울릉도 아래에는 한국 영토임이 표시되었지만, 독도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다.

더불어, 동해 역시 일본해 Sea of Japan로 표기되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http://img.yonhapnews.co.kr/photo/yna/YH/2008/07/16/PYH2008071607120001300_P2.jpg)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인 미국의 의회에서 명칭이 변경될 수도 있다는 의미는,


독도의 공식 표기가

 

독도(Dokdo)에서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으로

 

변경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정말 큰 문제이다.


왜? 이름이 변경되는 데 그게 무슨 문제이지?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명칭 변경이 큰 문제인 첫번째 이유는 바로...


한국의 독도 영유권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즉, 독도의 공식 표기가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으로 결정되면,


독도한국의 섬이라는 사실을 한 번에 쉽게 알아차릴 수 없게 된다.


한국어 표기인 독도(Dokdo)와, 프랑스어 표기인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


두 표기 중 어느 표기가 한국이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가?


독도가 한국 소유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


한국어로 된 독도의 명칭이야말로 정말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도의 공식 표기가 한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면,


이는 독도가 한국 정부의 영토가 아니라,


무주지(無主地)로 오인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바로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알려지지 않길 원하는 일본의 의도와도 상충한다.  


독도가 한국 영토가 아닌 무주지(無主地)로 존재해야만,


일본은 독도를 더 쉽게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칭 변경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명칭 변경이 큰 문제임을 보여주는 그 두번째 이유는 바로,


UN 기준상 암석(Rocks)은 영토의 개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준상 독도(獨)는 섬(島)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독도의 영문 표기도 Dokdo, 혹은 Dok(Tok) Island(島)이다.


하지만 독도의 영문 표기가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으로 바뀌면,


우리나라의 섬(Island)이 한순간에 암석(Rocks)으로 변해버린다.


독도의 명칭이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으로 변경된 이후,


한국과 일본의 분쟁이 불거져 그 문제가 UN에까지 넘어간다면,


UN에서는 독도를 한국의 '영토' 로 규정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 이유 때문에도, 명칭 변경은 있어서는 안 된다!





프랑스 정부가 독도를 발견하고 리앙쿠르 암이라 명명하기 이전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  로 규정하고,


한국어로 된 독도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국제 사회에서 종종


독도와 같이 사용되고 있는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이란 명칭을,


아예 독도(Dokdo)란 명칭으로 변경한다면 좋겠다.


물론 상당히 힘든 작업이지만,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이를 추진하고,


국제 사회에서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대신


독도(Dokdo)란 이름을 사용하길 권고한다면,


세계인에게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  임이,


다시 한 번 강하게 인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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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6 02:24

교통부 - 박은정 사무관님과의 멘토링 시간♬

박은정 사무관님과의 멘토링 시간! ^^

 

 

요즘 박은정 사무관님과 각 부처들의 멘토링 시간이 진행되고 있어요. 이미  함께 한 부처도 있지만 아직 사무관님을 괴롭히지 않으신 팀도 많아요. (얼른 괴롭혀주세요) 오늘은 교통부가 광화문에서 박은정 사무관님과 함께 했답니다.


11:40 AM


발대식에서 헤어지고 너무 아쉬웠는데 예상치 못하게 또 볼 수 있다고 하니 들뜨더라고요^^광화문의 점심시간은 늘 정신이 없어요. 사무관님이랑 뛰어서 도착을 했는데도 빈 좌석이 없어서 자리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어요. 자리를 마련하고 나자 사무관님 핸드폰이 드르륵 울렸습니다. 교통부분들이 도착하셨대요. 얼른 뛰어서 마중 나갔지요.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는데 어찌나 반갑던지요.


맛있는 점심식사, 오가는 숟갈에 정이 듬뿍듬뿍


교통부원들과 사무관님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답니다. 효선 씨는 홍보대행사에서 신문 클리핑을 하고 오시는 길이었고요, 지민 씨는 마사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대요. 경마에서 돈을 잃고 화난 아저씨들이 난동을 부리는 얘기도 들으면서 모두들 한참을 웃었지요. 사무관님은 교통부의 블로그와 온오프라인 미션에 관한 조언을 해주셨고요. 사이버 건국 내각 활동을 하면서 느낀 고충들도 함께 이야기 하며 나눠봤어요. 교통부의 오프라인 행사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부러워서 저도 따라 출장가고 싶어졌을 정도예요.! (사무관님! 어떻게 안 될까요?) 많이 노력하시는 모습에 사무관님과 저는 또 한 번 감동했더랍니다. 교통부분들은 합격자 발표가 난 순간부터 오프라인 회의는 물론이고 온라인 회의를 매일 밤 하고 계시대요. 거기에다 박아람 장관님은 매번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어르고 달래며 팀원들의 사기를 드높인다네요. 늘 느끼는 거지만 교통부를 비롯하여 11개 부처 모든 분들이 어쩜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지, 사무관님이 매일 칭찬하고 계세요.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사무실에서 매일 같이 있는 저는 잘 알고 있답니다 .흐흐흐흐 돈가스도 한 숟갈씩 덜어주고요, 서로 물도 따라주고 반찬도 챙겨주고 사진도 찍고 많이 친해진 것 같아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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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씨 센스만점.찰칵 셔터소리만 들려도 포즈를 취해주시는데.

타고나셨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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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초집중! 사무관님의 코멘트 나갑니다~

사무관님 손이 신나셨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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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다들 집중하는데 태희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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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 바로 이게 박장관님의 부드러운 리더십의 증거입니다.

매일 밤 저렇게 하트와 별 등 특수문자를 남발하시며 팀원들에게 애정을 표하신대요.

열심히 하자며 화이팅은 기본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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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배부르고 재밌고 편해하고 있어요. 지민씨는 너무 편하게 기대어 계시네요.


 

중국이요? 당연히 가야죠!


교통부분들의 마음은 이미 중국에 가 계시더라고요. 팀 장기자랑 시간에 받은 캐리비언베이 티켓은 중국 다녀온 다음 날 가는 것으로 스케줄을 잡아 놓으셨어요. 그 뿐인가요? 상금은 재세 공과금을 얼마 떼고 받게 될 지까지 벌써 계산하시고 계셨어요.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는 ‘효선’씨의 주장입니다. 흐흐흐 발대식 식사가 훌륭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공식 일정인 보고대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는데요. 다음 보고 대회는 훨씬 더 럭셔리 콘셉트라고 얘기해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어요. 레드 카펫과 시상식에 어울리는 차림을 준비하신 다네요. 메이크업과 마사지는 효선 씨가 담당하신대요. 보고대회 때 교통부원들을 기대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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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도 안좋고 사람들도 지나가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급히 찍느라 사진이 만족스럽지가 않네요ㅠㅠ

다음 번에 더 예쁘게 찍어드릴게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무관님이랑 저는 정말 즐거웠는데 교통부분들 즐거우셨어요? 다른 분들은 교통부 부럽지 않으신가요? 바쁘신 사무관님이시지만 여러분들이 연락하신다면 여러분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모든 약속을 캔슬하실 겁니다. 팀 사진도 찍고 싶으시면 사무관님께 저. 도 꼭 끼워달라고 얘기해주세요. (비굴... 비굴...) 다른 분들도 만나보고 싶어요. 사무관님이랑 저와 맛있는 식사를 함께하며, 보람찬 이야기를 나누실 분들 더 안 계신가요? 모두 광화문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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