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2 16:45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감동이야... ㅜ.ㅜ

2002 월드컵에서 느꼈던 그 환희가 내 뱃속에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을 외치고 있어
먹는 방법은 두 가지야.
어느정도 부대찌개를 먹은 후에 밥을 같이 비벼먹든가,
그냥 밥 위에다가 얹혀먹으면서 조물조물 먹는 법.
 
난 달라. 그래서 반은 얹히고 반은 조물조물 먹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애들이 정말 배고프지 않았다면 나를 문밖으로 패대기 쳤겠지만,

다행이 먹느라 정신 없는 탓에 그대로 놔두더라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건빵국방 팀원끼리는 콩 한조각이라도 나눠 먹는 끈끈한 정이 있었지만,

.

.

.

.

.

.

.

.

.

.

.

.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같은 경우는 아래위도 없고 콩 한쪽은 혼자 먹는 거라고 서로 외치고 있었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그 흔적이야. 양이 많아 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다 먹은 걸 보니 전설의 맛집은 역시 맛집이더라구.

여기서 10자 평으로 음식 맛을 이야기 해보자면

'부대찌개 먹어봐야 안다'

30자 평을 하면

'달달한 햄, 야들야들 고기, 깊고 진한 국물 맛 이 적절히 어울리는 면발, 킹왕짱!!!'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가 낼 것인가 신발끈 묶고, 화장실을 다녀오며, 안오던 전화를 받기전에

이렇게 깊은 맛과 역사를 지닌 가게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직접 여쭤보기로 했어.


점심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이 이른 3시였지만 가게 안이 거의 찬

바쁜 시간에 겨우겨우 터줏대감 주인이신 허기숙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Q : 가게하신 지 몇 년 되셨나요?

A : 여기에서는 40년이 넘었는데, 내가 가게를  한지가 52년됐지.

Q : 그럼 52년이 되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뜻 깊었던 사건이나
가게에 대한 기억 등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A : 옛날에 내가 이 장사를 할 적에는 참 수많은 고생이 많았지.

참 수 많은 고비를 넘어갔지.

왜 그랬냐면, 그때 당시에는 부대 고기라는 거는 사회에서 쓰지를 못하게끔 되어 있었거든.

그런데 의정부, 이 동네가 양식음식점도 많고, 자체가 부대였어.

이제 그러니까 의정부가 쪼그마면도 여기가 다 미군들 촌이었지.

그러니까 먹고 살 것도 없고 하니까 맨 처음에는 오뎅으로 한 5달 정도 장사를 하고,

왜냐면 여기가 이쁜 색시들이, 양색시들이 나오니까 미군들이 밤이면 나와서 홀에서 춤을 추거든.

그래서 거기서 미군들 만나서 춤추고 들어오다가 오뎅하고 우동하고 그런 거를 주로 많이 먹고, 속 풀으려구.

그렇게 먹고 댕겼는데, 옛날 부대 아저씨들이 미군 부대 다니면서, 이쁜 색시들이 들어오니까 우리 집에 따라 들어왔단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고기를 내가 가져나 끌어올 테니 장사 할 수 있겠느냐" 해서, 나는 그냥 별 생각 없이 그럼 하겠다고,

지금 오뎅 장사 나으면 그거를 내가 하지요.

아저씨들이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러고서는 부대에 교대로 들어가면, 15명이야. 15명에 반반씩 들어가는 거야.

오늘은 이 조가 들어가면 내일은 저 조가 들어가고.

이렇게 들어가면 미군 장교들 음식을 차려주려고 하면, 여러 가지 수많은 고기가 있어.

모두 몇 종류냐 하면 12가지야.

그거를 그 아저씨들이 버리기 아까워서, 그때 당시에 우리는 어디 가서 고기를 먹어보지를 못하고.

내가 그때 150원씩, 그때 냉장고도 없어서 은박지에다가 말아서 배에다 차고 옷을 입고 나왔단 말이야.

그럼 뜨끈뜨끈한 걸 여기에 가지고 와서 우리 집에 와서 이만한 광우리에 쏟아놓고 했지.

아주 칠면조, 소고기, 양갈비 같은 고기들이 있었지.

그렇게 해서 이제 그걸 해가지고, 그때는 연탄이 있어서 그거를 볶음을 해서 파는 거야. 막걸리도 팔고.

서울 사람들은 여기를 시골이라 그랬지.

그때 당시에는. 시골이니까

그때는 도로도 잘 안 되어있고 하니까, 서울 사람들은 잘 내려오지 않았고

의정부 지역사람들이 와서 한 근에 얼마해서 볶아서 먹는 거야.

그렇게 해서 팔다가 한 1년 정도 했는데, 그게 소문이 자꾸자꾸 퍼지니까

당시에 나를 막 잡아가는 거지.

"누가 이걸 이렇게 갖다 줘서 팔았느냐." 고 취조했지

가게에 들어와서 구석구석 고기 같은 거 있나 막 뒤졌어.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대느냐고.

그래서 그냥 일주일에 한번 씩 계속 붙잡혀 갔지. 그렇게 하기를 13년을 붙잡혀 갔어.

1년 동안은 잘 넘어갔는데, 세관에서 날 잡으러 온 거야.

아침 9시에 들어가면, 저녁 9시에 나오고, 쇠고랑도 찼었어. 집도 짓지도 못해.

어디 온갖 안 뒤지는 데가 없었어.

두 자루씩 새 거도 아닌 고기를 다 뺏겼어. 뺏기고 나면 아저씨들이

"내가 무슨 소시지를 막 가져다 준 것도 아니고, 무슨 양주 같은 거 가져다 준 것도 아닌데,

일단 팔지를 말고 그때 당시에는 오다가다 샀다고 말하세요 할머니" 그랬지

우리를 불쌍하다 해서 애들 공부를 시켜야 하니까 뺏긴 만큼은 돈을 안 받겠다 하고 그냥 해라 했어.

뺏기고 나면 벌금 물고, 갔다 또 나오지.

그래서 시장에서 세 집 중에 두 집은 못하고,

나만 홀로 남았어. 그렇게 먹고 살았어.

이 동네 사람들이 나보고 붙잡혀 가면서 왜 하냐고 나보고 바보라고 했어.

그러다가 88 올림픽 때 즈음부터 마음놓고 식당을 하게 됐지

시에서도 허가를 내줬지

미국 회사에서 와서 미군 통역관하고 미군하고 한 10명 정도가 와서 고맙다고 하면서 고생 많이 했다고 했어.

걱정 없이 하라고 했어. 그래서  해서 지금까지 해온거야

그뒤로 이 주변에 부대찌개 집이 그래서 여기가 한집 두 집 생겨나더라구.

물론, 서울 시청에서도 오뎅가게가 가장 오래된 것을 알고 있어.

여기 우리 집에는 4대가 다니고 있어.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그 아들과 그 아들이지.

서울시장님은 고생했다고 위로해주시면서

부대찌개 거리 아치도 세워주고 같이 사진도 찍었지.

요번에는 1박2일 촬영 팀이 왔었고,

드라마 식객도 하면서 허영만 씨가 몇 년 전부터 와서 만화도 걸어주시고 하면서 가게가 잘되게 됐지.

허영만 씨가 많이 널리 퍼뜨려 줘서 항상 고마워.


Q : 앞으로 계속 장사를 하실 생각이신가요? 
A : 손자가 할 거야, 대학교 졸업하면. 손자가 나이가 26살이야. 손자가 자기가 가게를 하고 싶다고 했어. 가게는 하는 대로 해봐야지. 

인터뷰에 응해주신 허기숙 할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참 가격은 부대찌개 1인분에 7천원으로 올랐어. 다른 사이트 보고 갔다가 가격이 달라 천원 없어서

울지 말고 미리 미리 지갑에 넣고 다니라구.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재밌는 역사도 알고 꿩도 따고 알도 먹고 도랑치고 가재 먹는

우리, 먹으러 갑니다!

역시!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개봉이 박두Yo~!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