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31 18:43

대한민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과학자 - 이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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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李輝昭)
1935년 1월 1일 - 1977년 6월 16일


한국의 이론물리학자
입자물리학 발전에 획기적 공헌을 하였으며,
특히 네번째 쿼크인 참쿼크의 존재가 예견되었을 때 이와 관련된 이론적 연구업적은 잘 알려져 있다.

이휘소는 세계 정상급의 물리학자 로 과학사에 큰 획을 그었고,
한국인의 우수성 을 세계에 과시했으며,

한국 물리학계의 발전 에 도움을 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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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 박사 에 대한 평가 를 들어보자.

 

내 밑에 아인슈타인도 있었고 이휘소도 있었지만 아인슈타인보다 이휘소가 더 뛰어났다
-오펜하이머(전 프린스턴 연구소장)


이휘소에게는 60년대 중반에 이미 노벨상을 주었어야 했다.
-양진녕(1997년 노벨상 수상자)


그와 같이 6개월간 생활하면서, 나는 도리어 이휘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겔만(1999년 노벨상 수상자)


이휘소는 현대물리학을 10여년 앞당간 천재이다. 이휘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
-살람(1999년 노벨상 수상소감중에서)


이 과학자의 삶이야말로 학문적인 약소국이라는 열등감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가슴 벅차게 자랑스러운 생애의 기록이다.
-윤호미(조선일보)


이휘소는 현대사에서 한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세계적인 과학자이다.
-월간조선 9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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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 박사는 1935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서울대학교 화공과에 재학 중 1954년 도미, 미국 마이애미대학교(Miami)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196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입자물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1~1962년 프린스턴고급과학연구소 (Princeton, Institute of Advanced Study)연구 후,
1963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교수가 되고,
1966년부터 미국 스토니브룩(Stony Brook) 의 뉴욕주립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1972년부터 페르미가속기연구소(Fermi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의

이론물리학 연구부장이 되고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 교수를 겸하였다.


1960년대부터 입자의 복합모형이 제창되어 수학의 리군이론이 많이 사용될 때 그 발전에 기여하였다.
1967년 이후에 와인버그와 A.살람이 입자물리학의 네 힘 중에서 특히 전자기력과 약한 상호작용을 통일하여
만든 전기약작용을 재규격화할 수 있다는 이론적 증명을 함으로써 입자물리학 발전에 획기적 공헌을 하였다.
특히 1970년대에는 네번째 쿼크인 참쿼크의 존재가 예견되었을 때 이와 관련된 이론적 연구업적은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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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휘소 박사 친필 연구노트 )


이휘소 선생은 그의 학문적 업적 이외에도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 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큰 기여를 하였다.
1974년에는 서울대학교에 대한 국제개발처(AID) 교육차관 타당성 조사단 의 일원으로

일시 귀국하여 한국 물리학계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AID 차관자금에 의한 서울대학교의 이공계 교육 증진 계획을 적극 지원 하였고,
이같은 외국 차관에 의한 국내 대학교육 기자재 구입, 확충은 1980년대 한국의 대학원 수준 향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실험물리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한국이 고에너지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하였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이휘소 박사를 천재라고 아낌없이 칭송했지만 자신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끝없는 노력 인내 가 성과를 이루게 했다고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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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 박사는 그를 소재로 한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많은 한국인들에게 알려졌는데,
소설에서 묘사된 것과는 정반대로 핵무기 개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순수 이론물리학자 였다.

또한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하는 것이 이휘소 박사의 지론이었다.


1977년 6월 16일 콜로라도주(州) 국립과학연구소의 초청강사로 가는 자동차 사고로
42세 의 아까운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14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셨는데 1974년부터 전산화된 SPIRES 데이터베이스에는
비록 60여편 정도 수록 되어 있으나 인용회수는 모두 10,000회 에 이르고 있다.

 

이휘소 박사는 2006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2005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되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한국이 배출한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 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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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휘소 평전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의 삶과 죽음)  강주상| 럭스미디어| 2006.08.15 | 275p 

             2) 이휘소 (못다 핀 천재 물리학자)  이용포| 작은씨앗| 2006.08.16 | 215p  
             3) 하늘도 탐낸 아름다운 별 이휘소  이용포| 작은씨앗| 2007.06.09 | 159p


 


<사진 출처>

사진1. 쿠키뉴스- 이휘소 박사 등 등 3명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2006-02-23)

사진2. 이휘소 캐리커쳐 - 한겨레 - 팬티가 썩은 과학자, 이휘소 (2006-11-15)
사진3. 한겨레 - 이휘소 박사는 핵무기 개발과 무관합니다 (2007-06-13)

사진4. 연구노트 -NEWSIS- 故 이휘소 박사 친필 연구노트 (2007-06-14)

사진5.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3)  김진명| 해냄출판사| 2003.01.10 | 2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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