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부'에 해당되는 글 53건

  1. 2008.09.01 응원 이벤트 당첨자 발표 #이벤트및당첨확인
  2. 2008.09.01 [60년 그 후,] 유엔사무총장은 60년이 준 과제. ♬ 60년 그 후. [출처] [60년 그 후,] 유엔사무총장은 60년이 준 과제. |작성자 외무부
  3. 2008.09.01 우리 생에 최고의 견학, 외교통상부에 가다! - 오프라인 행사
  4. 2008.09.01 세계를 지키는 대한민국 외교관! -반기문유엔사무총장 ♭ 외교관 이야기
  5. 2008.09.01 나는 외교관이다. - 최규하 전 대통령 ♭ 외교관 이야기
  6. 2008.09.01 영사관 없어도 무역관 있었다. ♭ 외교관 이야기
  7. 2008.09.01 호돌이도 몰랐던 올림픽 외교 ♪ 외교로 그린 60
  8. 2008.09.01 청년에게 묻는 대한민국2 - 대한민국, 몇점을 주시겠습니까? ♬ 60년 그 후.
  9. 2008.09.01 코이카 - 기적의 서사시(한국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 에티오피아인 이야기) ♪ 외교로 그린 60
  10. 2008.09.01 대한민국 희망나무 !! 외무부 그 2 번째 오프라인 행사 현장 !! - 오프라인 행사
2008.09.01 17:24

응원 이벤트 당첨자 발표 #이벤트및당첨확인


안녕하세요 대학생 사이버 건국내각 운영 사무국입니다.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9일까지 진행된 '응원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대학생 사이버 건국내각 44명과 운영 사무국은 여러분의 많은 응원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참여해주시고 감동적인 장문의 응원 댓글을 남겨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당첨자 명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8월 20일 (수) 저녁 6시까지 대학생 사이버 건국내각 운영 사무국으로

인적사항을 적어 메일로 보내주세요.

 


<외무부,  000(닉네임), 000(실명),  연락처,  주소>  형식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건국내각 운영 사무국 이메일은  1stcabinet@naver.com 입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02-3210-9643 으로 전화주세요.


mp3 열정패기
외무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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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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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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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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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7:23

[60년 그 후,] 유엔사무총장은 60년이 준 과제. ♬ 60년 그 후. [출처] [60년 그 후,] 유엔사무총장은 60년이 준 과제. |작성자 외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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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반기문 제 8대 세계연합 (UN) 총장


UN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이며

모든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증진하는 역할을 한다.


두 번의 끔찍한 학살의 전쟁이 끝난 후 세계인은 평화를 원했고

그래서 만든 곳이 UN 이다.


평화를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UN을 애뜻하게 생각할 것이고

그 곳의 수장인 UN 사무총장은 외교관 중 외교관, 평화의 수호자이며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60여 년 전 세계의 문제거리로 국제 무대에 진출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갓 독립하여 국가로 인정 받으려던 찰나에 전쟁이 일어나 모든것을 잃은 나라.


해외 원조만으로 국가를 지어야 했던 나라.



이 나라의 사람인 반기문UN 사무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물론, 국력에 따라서 사무총장을 뽑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 총장의 경우는 훌륭한 외교관으로 인정을 받아 사무총장으로 추천을 받았는데


그는 '대한민국이 배출한' 외교관이다.

반 총장 덕택에 한국 외교와 외교관들의 위상이 높아졌다.




누구보다도 기뻐했던 것은 국민들이었다.


        

네이버 북


                        




반총장이 당선 되자 마자 한국 외교력을 칭찬하는 사설들과 그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여러권이 베스트 셀러가 될 정도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 외교 60년의 성과일까요?



한국은 60년의 빠른 성장을 거쳐 오면서

세계 경제 규모 13위라는 어마어마한 나라로 성장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해외 원조를 받아 훌륭하게 성장 했으나 세계에는 아직도 그렇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로이터 통신 - 지금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루지야, 러시아 군 폭격 후 >



<로이터  - 오랫동안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다르푸르의 난민들>



<주의사랑으로사는삶 - 아프리카의 심각한 기아 문제>



외교 (外交) 의 뜻이 무엇일까요?


한자만 보자면 바깥 외자에 사귈 교자입니다.

어려운 단어가 아닙니다 - 바깥 세상과 사귀자는 것이죠.


대한민국 출범 후 나라로서 인정받기 위한 외교, 경제력을 위한 외교, 수출을 위한 외교, 한반도 내의 평화를 위한 외교.


우리는 이러한 거창한 외교 과제들을 60년 만에 대부분 해결했고

더욱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깥 세상과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고 사귀는

그런 기본적인 외교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아있는 듯 합니다.


<초라한 한국의 해외 원조 규모 - 매일경제>


'

<외국인 노동자 차별 철폐 운동 - 동아일보>


<조선족출신으로 귀화한 하만순씨가 거리에 드러누운 채 조선족

차별대우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외국인을 차별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외교의 발전을 꾀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오래전 만주 지역으로 넘어간 우리 민족인 재외동포 분들 까지도 차별하고 있습니다.


해외원조, 이제는 돌려줘야 할 때 입니다.

한국의 기적은 수 많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앞에는 해결해야 할 외교과제들이 있습니다.




매일경제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대국이지만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는 선진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해외개발원조나 평화유지군 활동 등에서 위상에 맞게 기여해줄 것을 차기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바란다."

- 반기문 총장 한국 방문 당시.




UN 사무총장이 한국인이 된 것은 성과가 아닌 과제 입니다.



 UN 사무총장을 선두로 하여


이제는 우리들도


세계 곳곳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차별을 없에고 약자를 보호합시다!




 

대한민국 60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자랑이었다면

   앞으로의 역사는 전세계의 자랑이었으면 합니다. 

 





Written by 사이버건국내각 외무부 최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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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7:20

우리 생에 최고의 견학, 외교통상부에 가다! - 오프라인 행사

대학생사이버건국내각 외무부


세종로 37번지의 외교통상부를 방문하다 - !!



<MOFA visits MOF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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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 청사 내부에 있는 청사 모형을 찍은 사진>



그렇습니다!

여기는 세종문화회관 옆에 자리잡고 있는

외교통상부 청사입니다.


처음 딱 봤을때 너무 이쁘다고 생각한 유리창의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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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은 창규장관님, 승은이는 사진 찍는 중...일까요?>



현재 외교통상부 건물의 3층 부터 6층까지는 통일부로 쓰이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에 빨리 들어 가고 싶었으나 정부청사 답게 철저한 신분증 검사가 필요했다는-


전화를 하자 서기관님께서 친히 아래로 내려와서 우리의 방문을 환영해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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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들고 다녀야 하는 방문카드!>


X-ray 검색대도 통과하고 멋진 방문증도 받았는데 ㅇ_ㅇ;


서기관님분들과 과장님이 내려오시더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밥을 사주시겠다고 따라오라고 하셨다는!


외무부 일원 모두 감동의 식사 장소로 향했습니다! (청사 견학이 분명 목표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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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식사 시간!!   창규 장관님은 음식 사냥하러 가셨음!>


현재 우리나라의 외교를 담당하시는 외교관 분들과의 즐거웠던 식사시간!!!

처음에는 심히 긴장을 하였으나 유 과장님의 유머감각에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경민언니는 자신이 제작한 컨텐츠인 외교관과 와인을 생각하며

식사예절등 별 생각을 다했지만


정작 외교관 분들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편하게 드셨다......


생각해 보니 여기는 국제회의장도 아니고 리셉션 현장도 아니었다;;


사회에 진출하려는 후배들을 위해 준비한 편안한 식사자리였던 것이다.


너무나 유쾌한 식사였다! (게다가 뷔페...)


기억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외교관이 특수직 공무원이라는 것.

소방관, 경찰관과 함께 특수직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직업이 외교관이라고 한다.


외국에서 떠돌다 보니 결혼, 자식교육 등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시는 외교관 분들.


그래도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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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상황실 >


밥을 다 먹고 다시 청사 견학을 시작했다!!!


제일 처음 본 곳은 종합상황실.


세계에 나가있는 재외공관들과 연결되어 있어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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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상황실 내부 >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점차 세계로 나아가면서 안전에 관련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는데,


작년에도 누가 피랍됬고 납치됬다는 사건들이 온 국민을 깜짝 놀라게하는 일이 많이 있었다.


이 종합 상황실은 김선일씨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되어 사망한 이후


재외공관 외교관들과 신속하게 회의하고 의논해야할 필요성을 느껴 설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민들을 지키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진행됬을 회의를 생각해 보니 괜히 마음이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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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은 2층에 있었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판이라고 한다.

판위에 수많은 깃발들은 유엔 가입국의 깃발들이다!


이번에 반총장께서 국빈자격으로 외교부 청사에 방문했을때


외교관 분들이 반총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장소도 이 판 앞이었다.


우리도 그냥 지나 칠 수 없어서 촬영 한컷!


판 근처에는 브리핑룸이 있었다!



조규선 대변인이 기쁜마음에 가장 먼저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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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이버 건국내각 외무부 대변인 조규선입니다! >


뉴스나 티비 프로그램에서 외교부가 기자회견을 하는 장소가 이 브리핑 룸이다.

일주일에 정기적으로 두번의 브리핑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중요한 사안일 경우에는 기자들이 발 딛을 틈 없이 꽉 차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경우에는 몇몇 고정 출석 기자분들만 오신다고 한다.


브리핑 시간이 끝나자 마자 들어갔는데 그날의 주제는 유엔 만국 어쩌고에 관련된 것이었다.


자세히 보려 했으나 국가기밀인줄 알고 몰래 힐끔 쳐다봐서 자세히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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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정책보좌관이 현안에 대해 말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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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촬영 중인 관광객>



브리핑룸을 나오자 중요한 외교 서류 몇장이 로비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 몇개를 찍어 놨는데,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이 휴전협정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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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휴전협정서 >



블로그 운영을 하면서도 외교라는 단어가 멀게 느껴진 적이 많았는데,


실제 외교부 청사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외교관 분들을 뵈니


'외교'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청사 견학 중에 조윤수 외교통상부 부대변님이 우리를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바로 사무실로 찾아 뵙기도 하였다!!!!!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칭찬을 여러 외교관분들께 받았고


식사를 같이한 서기관님과 과장님은 우리 컨텐츠의 내용까지 모두 기억하고 계셨다.


컨텐츠는 어떻게 만들었느냐, 왜 그 주제를 잡게 되었느냐 등의


관심어린 질문을 받다보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너무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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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한미FTA 수석대표가 타고 다니신다는 오토바이>


나오면서는 김종훈 대표의 오토바이를 발견 바로 한컷 찍어 왔다.


아침에 어떤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모두 지켜봤는데 헬멧을 벗자 김종훈 대표셨다고 한다.





훌륭한 견학 가능하게 해주신 외교부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외무부 일동

 

 

 

Written by 사이버건국내각 외무부 정책보좌관 최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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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7:13

세계를 지키는 대한민국 외교관! -반기문유엔사무총장 ♭ 외교관 이야기

대한민국의 외교관 반기문


한국일보                                                       한국일보


1970년 외무고시 3회

2004년 외교부 장관

2007년 세계연합 사무총장



세계의 수호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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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사무총장 생가


UN의 사무총장이 되어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드높이고 온 국민의 자랑이 된 반기문 전 외교부 장관님!!

지금은 세계인을 위해 일하기고 계시지만 그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외교관이었다. >_<



어린시절

외교관이라는 그의 꿈은 적십자에서 주관한 VISTA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미국에 가면서 시작했다.


전국에서 4명을 뽑는데 그 중 한명이 바로 반총장. 충주시 전체가 떠들석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미국인들에게 줄 복주머니를 충주여고 학생들이 손수 만들어

기문에게 전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복 주머니를 건네준 충주여고 학생회장의 이름이 류순택이었다.

.......두 사람은 1970년 반총장이 외시에 붙은 이후 결혼하게 된다.

(가온누리가 소개한 외교관들 중에서 유일하게 러브스토리가 있는 분이시네요ㅋ)


미국에 도착한 기문은 평소 존경하던 케네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동아일보


기문을 본 케네디 대통령이 "네 꿈은 무엇이니?" 라고 묻자 자신의 꿈은 외교관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일화는 유명하다.

그 고등학생이 지금은 유엔의 수장이 되었으니..케네디도 놀랄 일이다.



어린 시절 반기문 총장은 공부벌래였다고 한다.


"4남 2녀중 장남인 오빠는 초등학생때 부터 공부로 날렸다. 동생들은 학창시절 내내 반기문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 막내동생 반경희




외교관이 되다.

외교관이 된 반 총장이 부임한 첫번째 지역은 인도의 뉴델리.

점수로는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할 수 있었지만 그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인도를 골랐다고 한다.


"미국은 저축하기가 힘든데 후진국에 가면 돈을 아껴 집안에 보탤수 있을것 같아서 형님이 인도에 자원했다."

- 동생 반기상


첫 부임 이후 36년간 반총장은 한국의 성실한 외교관으로 일한다.


반총장의 근면함, 부드러운 리더쉽은 후배 외교관들에게 계속해서 귀감이 되오고 있다고 한다.

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환경과장은 외교관은 국가대표 멀티플레이어라는 자신의 책에서 반총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반 총장님은 1년 365일 나와 일하기로 유명하신 분이다."


"당신은 주말이나 연휴여도 당연히 사무실에 나오면서

정작 아랫사람들에게는 항상 '피곤하고 고생 많았는데 이번에는 푹 쉬고 사무실에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기로 유명하다. 그러고는 '나도 사무실에 절대 나오지 않을 테니 부담갖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정작 당신은 나오면서도 말이다."





그 밖에도 반총장님과 얽힌 일화들을 살펴보자!:


 

EPISODE 1

겸손한 외교관

 

 인도대사관에 근무할 시절 반총장의 성실함과 우수성에 반한 노신영 전 총리가

그를 이사관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시키려 했다.

그러자 반총장은 아직 차례를 기다리는 선배들도 계시는데...”라며 한사코 사양했지만

결국 승진하게 되자 외교부 선.후배와 동기 100여 명에게 친필로미안하다

편지를 보낸 일화 또한 외교부 내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이야기다.

 



 

 

EPISODE 2

불어와 독어도 수준급

 

처음 유엔 본부에 입성한 반총장이 점심 시간을 이용해 불어를 익힌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사무총장 선거 캠페인 중 프랑스와 북서 아프리카의 불어권 국가 정상 및 외교장관들과 만나면

불어로 대화하고 연설도 불어로 해 유엔 회원국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의 불어 실력은 유엔대표부 1등 서기관 시절 탄탄한 기반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총장은 불어뿐만 아니라 독어 또한 연설문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트리아 대사 시절  짬이 날 때마다 독어를 공부해 얻은 실력이라고 한다.

 

 

 

 

EPISODE 3

유엔도 인정한 부지런함

 

2001한승수 당시 외무부 장관이 한국의 유엔 가입 역사 상 처음으로

총회 의장으로 선출됐을 때 최측근에서 그를 보좌한 것도 반총장이었다.

그는 한 의장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유엔 사무국이 평가한가장 활동적인 비서실장으로서의 평판을 쌓았다.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이 때 유엔에서 사귄친구들이 반 임명자가 당선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그의 지인들은 평가했다.

 

 

그렇게 유엔에서 한국에서 쉴 새 없이 열심히 일하시던 반장관님이 2006년 유엔 차기 총장으로 출마하셨다.

 

유엔사무총장은 세계의 풀기 힘든 난제들인 가난, 전쟁 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 평화의 전도사이다.

지명도로는 미국 대통령보다도 높다고 한다.

온 세계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이고 또 그런 사람만이 맡아야 한다.

 

국제 무대에 한국인이 한명만 더 진출해도 자랑스러울 마당에

 

한국인 사무총장이라니...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반기문 장관을 만장일치로 유엔 사무총장 후보에 추천했고  

총회에서 찬반투표를 통해 제8대 유엔 총장으로 반기문의 선출이 확정된다.

 

                            

 


 

 

 

 

 

 

 

 

 

 

 

 

 

 

 

 

 

 

 

 

 

 

 

 

< 블로그 인곡정사  - 역사의 주요 인물이었던 UN사무총장들>

 


전임 이었던 코피 아난 유엔총장은

"반기문 장관이야말로 세계의 난제들을 가장 훌륭하게 풀어낼 능력의 소유자라면서

당신은 지구상에서 가장 풀기 힘든 일을 떠맡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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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아난 전 사무총장과 반기문 현 사무총장 -  블로그 인곡정사 >


 반기문 사무총장이 얼마전 한국을 국빈자격으로 방문했을때

그가 모든 공식 일정 내내 쓴 언어는 영어였다.


오랜만의 고향 방문인데 어찌 모국어를 쓰기 싫었으랴...


이는 반 총장은 한국인이 아닌 세계인임을 뜻한다.


UN사무총장이 된 순간부터 국적을 넘어서 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유엔사무총장의 직인 / 고구려의 표식인 삼족오 인장이다 - 연합뉴스>


그래도 그의 조국은 대한민국이다.

반 총장의 당선은 대한민국의 위상과 외교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화이팅!!




글도움: 반기문 고교시절 케네디만나 꿈 키워 - 동아일보

            한국외교의경사, 반기문 장관 8대 유엔사무총장 당선 - 인곡정사의 블로그

 

 

 

 

Written by 사이버건국내각 외무부 정책보좌관 최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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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7:06

나는 외교관이다. - 최규하 전 대통령 ♭ 외교관 이야기

이 포스트를 보낸곳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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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일보


최규하 (1919 - 2006)



최 총리는 어디서 공부했느냐? 영어를 쓰는 우리보다 더 고급영어를 구사한다.

- 총리시절 호주방문 시 만난 호주의원들



재무부에서 송인상, 외교부에서 최규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지런하기로 정평이 났다.

- 당시 외무부 출입기자 이재원



고인께서는 한·미방위조약 등 중요한 외교문서는 자구 하나하나까지 다 외웠다.

- 추규호 전 외교부 대변인



최 전 대통령은 공직에 몸담은 이후 대통령 하야 때까지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멀었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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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욕심과 좁은 시야에 갇혀 민주화를 지연시켰다.

- 김영삼 전 대통령


전두환 정권 탄생에 일조한 단역배우.




<제 10대 대통령 취임식 - 한겨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평이 엇갈리는 최규하 전 대통령.


그는 성공한 외교관이였으나, 비운의 대통령이었다.


아직도 '최규하' 하면 군부에 굴복한 사람, 겁쟁이로 알려져있으나,



그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은 그의 온 인생을 통틀어 단 8개월이었다.


그는 한 평생 대한민국의 국익을 수호하는 외교관이었다.




191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그는

1932년 원주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41년에는 도쿄대 보다 들어가기 힘들다는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훗날 빛나게 되는 그의 고급스럽고 유창한 영어는 이때 완성된 것이었다.


해방 후 건국된 대한민국에서 그가 처음 맡은 직책은 농림부 양정과장.

그러나 그의 영어 구사능력은 곧 당시 변영태 외무부 장관의 눈에 띄게 되고 변장관은 그를 외무부 통상국장에 임명했다.


외교관이라는 화려한 길의 시작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아래서 4년간 외무부 장관으로 일한다 - 연합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를 무척 신임해, 67년 외무부 장관에 임명하였고

그는 71년까지 4년 동안 외무부 장관을 지낸다.



외교부 장관으로서의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EPISODE - ①


사이러스 밴스 특사와 회담

1968년 23일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난 후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자 한국은 크게 반발하며 독자적으로

북한에 대한 보복 공격을 추진했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미국은

혹시나 한반도에서전면전이 날 것을 우려 한국을 달래기 위해

국방력을 지원하겠다며 사이랜스·밴스 전 육군장관을 특사로 파견했다.
 

타워호텔에서 자리한 최규하-밴스 특사간의 철야회담은

지금도 외교부의 모범협상의 전례로 전해져 오고 있다.

 

기자들이 회담장 밖 복도 바닥에 앉아 밤을 새우고 있는 동안 최 장관은

20여잔의 커피를 들고 6차례나 재떨이를 교체시키면서 뚝심과 끈기로 버티어 

당시로선 파격적인 1억달러 규모의 군사원조,

즉 전력증강과 무기를 현대화 시킬 수 있는 성공을 거두었다.

 

훗날 미대사관 요원들로부터 밴스 일행이 귀국하면서

 "최장관의 애국심과 쇠고집, 인내력 그리고 그가 계속 뿜어대는 담배연기에 손을 들었다"고

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북한에서 미국을 이긴 기념물로 여겨지는 푸에블로호 - 연합뉴스>



 

 

EPISODE - ②


최규하 vs 윌리엄 포터 

1968년 6월28일 최규하 당시 외무장관은 포터 주한 미국대사를 면담했다.

당시 정부는 핵공격 등에 대한 대한 안보공약을 재확인하는
각서를 미국에 요구했고,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충분한 것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한국 쪽에서 (핵확산금지조약 가입을) 질질 끌다가

‘불쾌한 그룹’(Unpleasant Group)에 끼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포터 주한 미국대사)

vs


“가장 맹방인 한국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으면서

귀하가 무슨 대한 외교를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최규하 외무장관)

승자는 최규하 장관이었다. 다음날 새로운 공약을 가지고 최장관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재원 전 차관은 “두 사람이 협상테이블에 앉으면 현기증인 난다는 얘기가 있다”면서

"두 마리의 뱀이 상대의 꼬리를 물기 위해 계속 두뇌회전을 해서 생긴 어지러움증”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MC)의 기초가 된 한·미 국방각료연례회의를 성사시킨 것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예우를 다룬 ‘브라운 이행각서’를 한국측에 유리하게 개정한 것도 그의 업적으로 꼽힌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1973년부터 75년까지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내며 남북대화와 오일쇼크 대처를 주도했다.

당시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석유를 확보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는 “우리 국민이 밤세워 횃불공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본국에는 석유가 없어서 난리가 났다”고 설득,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비교적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석유를 확보했다.



고인이 1978년 강원도 사북탄광의 석탄채굴 현장을 방문했을 때

“고생하는 광부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프다”면서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에서 나부터 에너지를 아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전직 대통령이 흔하디 흔한 에어컨 한 번 켜지 않고 살아온 이유이다.


50년 전 첫 딸이 태어났을 때 구입한 선풍기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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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방 모습 - 사주역학뚜벅이의 블로그>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열정적인 외교관이 1979년 갑자기 대통령이 된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 한겨례>


한계례 신문에서는 최규하 대통령과 어울리는 단어 중 하나로 '편승'을 뽑았다.

군부에 굴복하고 광주시민들을 사지로 몰아 넣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타협과 수용을 중시하는 외교관이었다.


훌륭한 외교관의 자질이 대통령직을 수행 할때는 방해가 되었나 보다.


< "최규하 대통령 생전에 모든 것 기록했을 것" - 전두환 전 대통령 / 뉴시스>






글도움: 동아일보 칼럼 - 푸에블로호와 뉴욕필

            turtleneck님의 지식 IN 답변

            경향신문 - 성공한 외교관, 실패한 대통령

            이성춘 전 고려대 석좌교수의 특별기고 - 최규하 재평가 받아야

            네이버 뉴스 - 부정부패와 거리가 먼 공무원






Written by 대학생사이버건국내각 최승은

http://blog.naver.com/mofa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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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7:01

영사관 없어도 무역관 있었다. ♭ 외교관 이야기

아시아 경제 , 2008-08-07


 


서울 중구 저동에 첫 문을 연 코트라(KOTRA)
사진출처 :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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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siaeconomy.co.kr/uhtml/read.jsp?idxno=377086&section=S1N5&section2=S2N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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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6:59

호돌이도 몰랐던 올림픽 외교 ♪ 외교로 그린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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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8일 오늘 중국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 우리나라는 총 28개 종목 중 소프트볼과 여자축구, 트라이애슬론을 제외한 25개 종목에서 출전권을 획득하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박태환,장미란등의 올림픽선수단의 선전을 기원하는 국민의 염원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마스코트는 푸와(복덩이)로, 베이베이(물고기), 징징(판다), 환환(성화),잉잉(영양), 니니(제비)이다.)




올림픽하면 지금으로부터 딱 20년전에 개최되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이 맞물려 생각되어진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대외적으로 세계13위의 경제대국이며, 2002년 월드컵까지 성대하게 치룬

경제적, 문화적 선진국가이지만..



 과거 20년전에는 어땠을까?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은 6.25전쟁을 치룬 분단국가의 이미지가 강했다.

 아직도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전쟁과 분단 그리고 폐허로 얼룩진, 원조를 받는 아시아의 한 빈민국으로 기억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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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후의 대한민국은 참혹했던 시절을 벗어나 꾸준한 경제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이미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그러나 압축발전을 통한 그늘도 존재했다.  

 

그러한 그늘들은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는데 큰 방해가 되었다.

외교가 아무리 좋아도 서울이 준비된 이미지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 모든것은 물거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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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기업들이 용수를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강이 혼탁해 져서 서울시, 건설부, 환경청 등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여 한강 지류인 탄천을 개선하기 위해 1987년 하수종말처리장을 건설했다.

 

  환경미화 분야에서는 서울시에 수많은 나무가 심어졌으며 조경에 쓰인 나무만 2700만 그루를 넘었다. 도로 양쪽의 가로수도 130만 그루 가까이 심어다. 이밖에 서울시는 올림픽공원을 새로 만들었다. 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서울은 숲과 정원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올림픽공원>

 

 

 

 

올림픽은 한국 경제발전과 도시 건설을 촉진했으며 이와 함께 국제공항을 확장하고, 수많은 도로를 정비하며, 통신시설을 완비함으로써 이후 경제 발전에 좋은 기초로 자리잡도록 했다. 이밖에 올림픽 개최는 한국의 여행, 전자, 통신, 스포츠용품 등 사업의 발전을 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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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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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개최 확정 후 정주영 서울올림픽 추진위원장과 김택수 IOC위원의 축배 >

 

 이렇게 올림픽개최의 계기로 인해, 우리나라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와 발전의 디딤돌을

함께 마련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잠깐 ~~~~~~~~~~

세계인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개막식 2위로 뽑힌 88년 서울올림픽,

손의 손잡고를 부르며 우리의 마스코트 호돌이를 다시 보면서 그때의 감동의 순간을

다시 한번 느껴 볼까요 ?

 

 

 

 

 

 

 

올림픽이 진행되면서 왜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유치하느냐의 의문보다는 전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일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올림픽 내내 매체를 통해  선진화된 대한민국의 모습이 비춰지면서 전세계인의 인식이 재고되었고, 국가의 이미지가 상승되는 큰 효과를 낳았다.

즉, 대한민국은 더이상 전쟁으로 얼룩진 국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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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서울올림픽은 당시로서는 최대규모인 160개국 13,304명의 선수가 동과 서,남과 북의 모든 장벽을
허물고 참가함으로써 12년만에 온전한 올림픽이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또 대한민국은 종합 순위 4위를 기록하여 스포츠강국의 모습을 보여주였다.

 

 

 그 이후에도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로 기록되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홍보효과를 가져왔고, 외교적인 면에도 올림픽이후, 헝가리와의 수교를 비롯해 소련.중국 등 동유럽권 국가들과의 경제교류와 문화교류를 이루는 성과를 올렸다.

 

 

 

이렇게 올림픽개최는 개최지로서의 의미도 상당하지만, 개최당시의 파급효과와 그 이후에 한 나라의 경제,정치,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사회주의 국가 (인민공화제)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있는 중국 !

앞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

 

 

 

 

 

Written by 정책보좌관  이경민

http://blog.naver.com/mofa60

 

 

 

 

 

 

베이징 올림픽 마스코트 : http://cafe.naver.com/bailaoshi/69 

6.25 관련사진 :  http://blog.naver.com/81954292/20021878554

88서울올림픽영상 : http://blog.naver.com/bombaycat/30005443442

올림픽대로 : http://cafe.naver.com/kjijon/10268
올림픽공원 :네이버백과사전

축배사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686655
올림픽사진 : http://cafe.naver.com/firstcabinet/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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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6:53

청년에게 묻는 대한민국2 - 대한민국, 몇점을 주시겠습니까? ♬ 60년 그 후.

이 포스트를 보낸곳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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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점수라...


저는 85점을 주고 싶네요.


지금까지 모든 분야에서 이 정도의 초고속성장을 이룬 나라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일단 85점입니다.


나머지 15점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더 발전할, 그런 가능성을 위해 남겨 두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은


120점, 150점까지도 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저만 그런건 아니겠죠? (웃음)





-인터뷰어 中 부산의 손찬경씨,


대한민국은 몇점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 포스트는



청년에게 묻는 대한민국1 - 어떤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에 이은 두번째 연재물입니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사회진출을 앞두고 있거나, 이제 사회에 갓 발을 디딘


20대 중,후반의 청년을 대상(인터뷰어는 동일합니다.)으로 시행했으며


인터뷰어가 허락한 경우에 한해서만


이름과 사진을 공개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질문은


대한민국 몇점을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입니다.





그럼


청년실업과 학벌사회를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동시에


2002년 월드컵 당시 누구보다 뜨겁게 대한민국을 외쳤던


20대 중,후반의 청년들.





그들은 대한민국에게 몇점을 주었을까요?







인터뷰어 #2 - 임찬미



성별 : 여


사는 곳 : 부산


직업 : 여행사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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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점이요.


경제가 많이 발전했고(조선,아이티,자동차등,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예를


자세히 들어 주셨지만, 매우 전문적인 내용이라 인터뷰에서는 그 내용을 담지 않는 점


양해해 주시길.) 또 국민의식수준도 많이 발전했잖아요.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 있었다는 것 아시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경제에 기여한 외국에 나가있는 한인상인들이 활약을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 분들, 정말 고생하셨거든요.






인터뷰어 #3 - 강은영


성별 : 여

사는 곳 : 서울

직업 : 대학원생


85점이요.

대한민국은 충분히 훨씬 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대외관계에서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알고,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줄 아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어요.

미국 소고기 수입 문제가 최근 가장 문제가 컸지요.

아, 이런 이야기는 하면 안되나요? 혹시 문제가 된다면 빼도 상과없어요.

(괜찮습니다. 강은영씨.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주의 국가거든요. :) 솔직한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인터뷰어 #4 - 변상훈


성별 : 남

사는 곳 : 경기도

직업 :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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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점입니다.


죄송하지만 전 한번도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고 생각을 해본적이 없어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음...


그냥 그렇다고 해두죠.


(그런데 왜 60점을 주셨나요?)


하지만 누가 뭐래도 제 조국은 대한민국이지요.


그래서 기본 50점에 가능성을 염두해서 플러스 10점을 했습니다.







인터뷰어 #5 - 김소영


성별 : 여

사는 곳 : 서울

직업 : 회사원



70점입니다.


 전쟁 후, 세계가 놀랄만한 경제적 성장을 거두긴 했지만,


그에 비해 국민의 의식 수준은 그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고 봐요.


국민 의식 수준만이 아니라 정치 수준 또한 경제 성장률에


     비하면 후진국 수준이 아닐까요? (지금은 경제 성장률도 정체 또는 후퇴 수준이지만)
 
     또한


글로벌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한가지 이유로 들고 싶네요.


제가 너무 냉정한가요?(웃음)





인터뷰어 #6 - 김강훈


성별 : 남

사는 곳 : 부산

직업 :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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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점입니다.


첫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물가상승.


둘째는 주변국들간의 마찰에 무능한건지 도량이넓은건지 알수가 없는


정부의 국가운영능력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문제점들을 냉철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50점씩이나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자)


그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나라가 사라지지 않고


아직까지 존재하는 것에 50점을 주었고


그외에 남은 오십점을 줄수있는 득점 포인트는 도무지 찾지 못하겠네요.




 



인터뷰어 #7 - 이규태


성별 : 남

사는 곳 : 안성

직업 : 대학생



50점입니다.


그러데 이 50점의 대부분은 경제적인 측면의 점수라서


더 안타깝습니다.


과거 정부가 지나치게 성장위주의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에 비해


교육, 문화, 사회 전반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속속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인터뷰어 #8 - 석원우


성별 : 남

사는 곳 : 부산

직업 :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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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점입니다.


(계속해서 굉장히 낮은 점수가 나온다고 한탄조로 말하자)


하하. 오해하지 마세요.


제 50점은 가능성의 50점입니다.


저는 미래에 100점을 받게될 대한민국이라는


목표를 꽤 크게 잡았어요.


미래의 완벽한 대한민국에게 덜 미안하기 위해서


지금은 50점 정도로 참자 이렇게 생각했는 걸요.





인터뷰어 #9 - 조영준


성별 : 남

사는 곳 : 경기도

직업 :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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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점입니다.

(드디어 최하 점수가 나왔습니다.)

저번 질문에도 말씀드렸지만

과거 문제 미해결은 결코 우습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정체성이자 뿌리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친일파들의 손에 휘둘려


과거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결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을 겁니다.


독일이 세계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아직까지 나치인사를 철저히 처벌하고


세계에 진심으로 반성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프랑스는 나치가 국내에 들어왔을 때


신문을 펴낸 것만으로도(나치에 동조한다는 이유)아직까지 사형을 시키는 나라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지는 썩으면 잘라내면 되지만


뿌리가 썪으면 그 나무는 버려야 하기 때문이지요.






인터뷰어 #10 - 손찬경



성별 : 남


사는 곳 : 부산


직업 :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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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점이요


1년에 1점씩이라고 할까요?(웃음)


농담이구요.


아직 해야할 일이 많은 나라지만


이만큼 차근차근 제 몫을 하면서 한 계단 한계단 씩 성장하는 나라는 드물지 않을까요?


전 이렇게 생각했어요.


우리 나라니까 일단 100점에


정치판 -20, 교육제도 -20이라고.





인터뷰어 #LAST - 조규선



성별 : 남


사는 곳 : 안양


직업 :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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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점을 주고 싶네요.


 '식코' 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세계초일류 강대국이라 평가받는 미국의 허술하고 악랄한 의료보험제도를 고발한 영화인데요.


그거아세요?


우리가 영화에서 터무니없다하는 미국의 의료보장제도보다


우리나라는 20위도 더 쳐져있다는 사실을요...


(점수로 나라의 모든것을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선의 여지가 충분한 곳에 있어서는


나쁜 점수를 주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48점을 준 이유는 우리나라의 보건복지에 관한 순위가 48위이기 때문이지요.


1위가 프랑스, 이웃나라 일본은 10위 인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어느정도의 수준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수 있을거예요.


무엇보다, 모든사람들이 걱정없게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고


크게는 인생설계에 큰 뒷받침이


되어줄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세네갈과 같은 점수를 받아선 안되잖아요.(웃음)



(인터뷰 후 세네갈을 무시하는 발언이 아니라 경제적인 수준에 비추어


하신 말씀이라며 오해하지 않게끔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청년에게 묻는 대한민국 시리즈를 마칩니다.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생각, 다양한 시야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이런한 생각들 하나하나가 모여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며

이번 시리즈를 마칠까 합니다.

















http://blog.naver.com/mofa60.do



written by 대학생 사이버 건국내각 외무부 장관 김창규


*. 포스트의 길이가 너무 길어지는 듯하여 인터뷰를 하고도


싣지 못한 분들이 많아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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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6:47

코이카 - 기적의 서사시(한국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 에티오피아인 이야기) ♪ 외교로 그린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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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일보>




한국 전쟁 직후 서울을 방문한


더글라스 맥아더





"이 나라를 복구하는 데는 최소 100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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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한국전쟁으로 인해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던 사람.



400만여명

 




2008년 현재


강원도, 충청북도, 제주도 사람을 모두 합치고도 50만명이 남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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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죽은 줄 모르고 붙어 있는 아이 /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다시는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아내


20만명




네이팜탄에 찢겨나간 어머니의 얼굴,


삼일째 흔들어도 깨지 않는 아버지를 둔 아이,


10만명




공업시설 : 43% 파괴


발전시설 : 41% 파괴


탄광시설 : 50%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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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부산항 부두 / 출처 : 최민식 작가>




세계언론 특파원들이



자국으로 보내는 기사에 결코 빠트리지 않았던 두 문장.









이 나라엔 희망이 없다.



이 나라엔 내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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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서울 용산역 부두 / 출처 : 최민식 작가>







아이들은 구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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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수원. 네이팜탄에 맞은 어머니들 /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어른들은 병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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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학살된 사람들 / 출처 : 연합뉴스>






아니,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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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미국  독일  아랍제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델란드  호주  덴마크  벨기에  영국  캐나다 


스웨덴  이태리  노르웨이  스위스  뉴질랜드 


핀란드  스페인  룩셈부르크  그리스  포르투갈 폴란드



그 외



기타 무수한 국가



유엔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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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메릴랜드 국립문서기록 보관청> 





우리는


한국에 유,무상 원조를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향후 100년이내에 원조액을 돌려 받지 못할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정확히 37년 8개월 5일 후


세계 곳곳에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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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파르완주 재건사업 / 출처 : 코이카>






 

아프가니스탄의 한 아이가 태극마크가 달린


가방을 들고 학교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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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아 / 출처 : 코이카>






오른쪽 어깨에 태극마크를 단 동양인들이


방글라데시아에 나타났다.


그리고


죽어가던 우리 언니를 살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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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 출처 : 코이카>





에티오피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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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 출처 : 코이카>





스리랑카에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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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지진해일 긴급구호 봉사단 / 출처 : 코이카>






태국에 해일이 몰아 닥쳤다.


어머니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몇일을 울고만 지냈는데


어느날


태극마크를 단 남자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돌아왔다.


그날 밤,


신에게 평생 그 나라의 축복을 빌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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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봉사단 / 출처 : 코이카>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한다.


엊그저께는 들판으로 나가 무등을 태워주며


'사랑한다'


는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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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농기계 지원 / 출처 : 코이카>





힘든 농사일과 겹친 가뭄으로


항상 한숨만 쉬던 아버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농기계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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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네오 칠드런 센터 급식사업 / 출처 : 코이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한 아이가


놀랍게도 태극기를 그려 교실에 붙였다.


아직은 복잡해서 잘 외울 수도 없고


서툰 그린 솜씨지만


이 나라 때문에 점심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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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네오 칠드런 센터 급식사업 / 출처 : 코이카>






58년전.


에티오피아는 흑인국가로는 유일하게 한국전에 군대를 파견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조그만 나라의 자유를 위해


무려 3518명이라는 군인을 파견했고


그들의 소중한 아버지이자 아들


657명이 이 땅에 뼈를 묻었다.





참전 이후 에티오피아에는 공산정권이 들어섰고


참전용사들은 단지 공산국가와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연금이 끊기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전쟁 때 팔 다리,


아버지, 아들을 잃은 고통도 모자라


아직도 그들은 죄인처럼 살고 있다.





그런데


일전에 방송에 나온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인터뷰에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비록 온 몸에 총탄이 박히고 팔, 다리를 잃었지만


자유를 위해 싸운 자부심으로 한 평생 살아왔습니다.


가난과 고통, 멸시가 대물림 되어


자식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고 있지만


한국이 발전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흐뭇합니다."










그는 아직도 참전당시의 태극기를 고이 보관하며


날마다 태극기를 게양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잘 살게 되었지만


우리를 도운 그들은 아직도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도울 때다.


대한민국의 기적은 그들과 함께 잘 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 배경음악 : 태극기 휘날리며 프롤로그




http://blog.naver.com/mofa60.do



written by 대학생 사이버 건국내각 외무부 장관 김창규


*.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는


'함께 잘 사는 인류사회 건설'이라는 모토 아래 1991년 4월에 설립되었다.


주요활동으로 전문가, 의사, 태권도, 사범등의 전문인력 및 해외봉사단 파견,


국제협력요원을 포함한 연수생 초청사업, 아프가니스탄 지원사업등이 있다.


코이카 설립은


대한민국이 더 이상 다른 나라의 도움만을 받는 나라가 아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현재 코이카는


27개국 28개 사무소에서 어려운 환경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 에티오피아 참전인원, 사상자등의 수치상 통계는


국방부 자료를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필자가 쓴 또 다른 인기포스트를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



반크 -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이어령 선생님께 듣는 대한민국


우토로 - 또 하나의 대한민국이 울고 있습니다 


코이카 - 한국을 위해 목숨을 버렸던 에티오피아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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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6:35

대한민국 희망나무 !! 외무부 그 2 번째 오프라인 행사 현장 !! - 오프라인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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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건국내각 외무부 대변인 조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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