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에 해당되는 글 41건

  1. 2008.08.11 [인터뷰] 월남 참전용사에게 묻다
  2. 2008.08.10 그리고 60년, 꿈꾸는 대한민국
  3. 2008.08.07 6.25 전쟁의 숨은 주역들 - 기억해야..
  4. 2008.08.06 60일, 한 여름밤의 이야기의 향연 !!!
  5. 2008.08.04 "님은 먼곳에" 그 속에감춰진 비하인드 스토리...
  6. 2008.08.03 60번째 생일을 맞은 대한민국에게
  7. 2008.08.03 나라를 지키는 그녀들! 그녀들은 우리 군의 어머니! (2)
  8. 2008.08.03 나라를 지키는 그녀들! 그녀들은 우리 군의 어머니! (1)
  9. 2008.08.02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2)
  10. 2008.08.02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1)
2008.08.11 18:01

[인터뷰] 월남 참전용사에게 묻다

그들을 기억하십니까??

월남참전용사..

   베트남전쟁(월남전쟁)

   북베트남의 주도로 남·북 베트남이 통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남베트남과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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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에 파병된 청룡부대원들>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의 요청 등에 따라 1964년에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하여 많은 경제적 이익과 전투 경험을 얻은 반면 그 대가로 수많은 전사상자와 고엽제 피해를 낳았습니다. 의무중대 파견 시작으로 1965년 부터는 맹호,청룡부대 그리고 1966년에는 백마부대 파견으로 연인원 30만 명, 최대 5만 명이 파병되었으며,이중 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참전 군인 중 이후 2만여 명이 고엽제 등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참전용사가 많이있습니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평화를 위해..대한민국을 위해..

용감하게 월남에 참전용사분들을 알기위해서

당시 월남참전하신 신기훈예비군연대장님으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Q. 간단히 신기훈 예비군 연대장님!!

                                  소개좀 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광운대학교 예비군연대장직책을 수행중인 신기훈이라고합니다.

1970. 5. 31일 3사관학교 2기로 소위로 임관.

26사단 대대 인사장교 재직시절 월남파병에 지원하여

71년 11월경 맹호 7-22지대로 파월하여 임무를 수행

이후 특전사, 39사단, 17사단, 수도군단등에서 근무를 하고

전역후 91.11.11일부로 광운대학교 예비군연대장으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광운대학교 예비군 및 민방위작전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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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훈예비군연대장님께서 근무하시는 광운대학교 예비군연대

Q. 연대장님께서는

     건국60주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앞으로 나가야할 방향은 무엇인지..말씀해주세요!

 

대한민국이 건국 60주년이 되기까지에는 국민 한명한명의 피와 땀으로 맺어진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국방을 지키는 군인으로 지금은 예비군 업무를 하면서 느낀거지만 더 노력해야합니다.

 

국가가 유지되려면 국민, 주권, 영토가 있어야 되듯이,

국방의 힘이 없다면 이는 국가가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국방의 힘을 기르는것도 중요하지만

가장시급한 문제점은 바로 국민들의 안보의식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를 보면 스위스가 중립국인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중립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확률은 극히 적습니다. 하지만, 스위스는 개인가정마다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민병대가 구성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보면 어떻습니까?

북한이라는 나라를 감성적으로만 볼 것인것인가?

 

군자체 뿐만아니라 국민들도 안보태세 의식강화를 해야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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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근무중이신 신기훈 예비군연대장님>



Q. 연대장님께서 월남참전 당시 대한민국의 상황과,, 월남이야기들려주세요!

 

 월남당시에 밖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 도미노이론처럼 공산화가 되어가고 있었고

 대한민국의 사정을 보면 아시다시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이 힘들었을때입니다..

 그래서 많은 장병들이..처음에는 부대별로 차출되어 월남에 갔지만, 나중에는

 파병하여  전투수당을 받으면 돈도 많이 벌 수있고,,

 혹시라도 전사시 보상금으로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우스겟소리로 외국구경해본다는 말로 위안삼아,,

 대한의 청년들이 많이들 지원하였으며, 경쟁률도 쌨습니다.


 저 또한 보병장교로써 제 자신에게 발전도 되고,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지원을 하여

 맹호 1연대 7중대 1소대장으로 베트남 퀴논지역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지금부터 기억에 남은 몇가지 월남파병이야기를 몇마디 하겠습니다.




 -Episode #1

 제가 맡은 부대의 임무는 3개 대대가 푸킷산을 포위하고 낮에는 기지주변 수색정찰 및 보급로확보수색작전 밤에는 마을 길목 감시하여 베트콩들을 섬멸하는 임무였습니다. 어려운점은 베트남 민간인과 베트콩을 피아식별이 어렵다는점이 있었으며, 다른 하나는 지능화된 지뢰매설입니다. 본디 지뢰제거작업을 하면 지뢰가 철로 둘러쌓여있어서 지뢰탐지기가 철을 발견하여 지뢰를 제거할 수 있는데 베트콩들은 비닐에다가 화약을 넣어 지뢰를 만들어 매설하여, 보급로 이동하는 보급차 및 한국군을 위협하였습니다. 어느 하루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대대병기하사관이 다른부대 정비를 해야된다고 지뢰제거 및 도로확보 작전이 끝나기도 전에 출발하였습니다 이미 저를 비롯한 소대원들이 지뢰작업을 하고 있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앞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트럭이 터지는것입니다.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유능한 하사관이었는데.. 너무나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Episode #2

 한번은 매복작전중이었습니다.. 사람이 희미하게 보일정도의 동이 틀 무렵이었는데, 앞쪽의 1분대에서 적이 나타났다는 견인줄신호가 왔습니다. 소대원들을 지시하여 사격준비를 내렸고, 접근중이었는데 제가 본 모습은 사람의 형체가 땅을 열심히 파고 있는 모습이었고, 특히 바람이 불어 화약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지뢰를 매설하는 베트콩이 아닌지..의심되었지만, 정확한 것이 아니기에 생포작전을 지시하여, 지시받은 소대원이 접근하여 생포하였는데, 월남 농민이었던거 입니다.

그 농민은 옆쪽에 물이 흘러서 반대편 자기논 쪽으로 물을 대려고 땅을 판거였고, 가운데 물길을 사용한 미사일탄을 이용하여 물길을 만들어서 남아있는 화약냄새가 난것이었습니다.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양민을 구하자"

 당시 모토를 생각하여 생포작전을 지시하여 무고한 양민을 죽이는것을 막았는데,, 얼마전에 발생한 금강산사건이 아쉬움이 남네요..

 




 -Episode #3

 대대 작전중이었습니다. 옆중대인 8중대가 작전에 투입되고 제가 속한 7중대는 잔류부대였는데 갑자기 작전전날 변경이 된 것입니다. 소대장들 및 소대원들은 당황하였지만, 작전전날이라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하여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첩보에 의하면 적의 부대가 매복해있다는 거였는데 막상 가보니 적들의 흔적이 처음에는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산위쪽에서 아래쪽으로 탐색작전을 하면서 내려가다가 바위틈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육감적으로 이곳에 베트콩이 있을꺼같은 예감이 들어, 소대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해 제가 직접 대검만 들고 작은 동굴에 들어가서 솥단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작전상 소대원들을 지휘하는 소대장이 직접 동굴에 들어가는 경우는 드문 경우였지만, 소대원들에게 소대장의 용감함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들어갔으며, 그 이후 소대원들을 지휘하여 베트콩들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씀 간단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전에서도 말했지만, 건국60주년이 된 지금,,

  국민 의식 이대로 좋은가???

         국방의 모습 이대로 좋은가???

 

무엇인가를 잘 금방 잊어먹는우리나라의 민족의 특징,, 전쟁의 아픔도 빨리 싶어해서인가?

이제 곧 저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생각해보면

저의 인생에 가장 보람되었던 일은

군에 입대하여 국방을 지키고,.,평화의 십자군의 역할을 한 월남파병,,전역후 예비군업무까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게 보탬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제 젊은이들의 시대입니다!

대한의 젊은이들이여!! 강한 호국신념!! 도전정신!!을 갖고 대한민국을 지켜나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분들을 잊지말고 기억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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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업무 하면서 받으신 많은 표창창들 및 신기훈예비군연대장님>

## 더운날씨속에 바쁜 시간에도 시간을 내어 좋은 말씀해주신 광운대학교 신기훈 예비군 연대장님 감사합니다##



  국민과 함께 Smile, 60년지기 국방부   

              공感, 의食주, 육해空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국방부가 함께합니다 :)



베트남전쟁 다음사전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09b2431a

청룡부대 사진자료 : http://blog.naver.com/ojh7071?Redirect=Log&logNo=200179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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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02:44

그리고 60년, 꿈꾸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하얀 도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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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였고, 념 간의 차이로 무정부상태였던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광복과 건국의 기쁨을 다 누리기도 전에 6.25전쟁이 일어나 민족이 둘로 나뉘고, 사회경제적 기반이 모두 파괴되는 큰 상실을 겪게 됩니다. 고이 지켜왔던 삶의 터전과 먹고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눈물로 얼룩진 절망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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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사진-                                                       -6.25사변 직후 대한민국 모습-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 자식들에게 만큼은 배고픔을 대물림 하지 않게 하고, 보다 나은 꿈을 꾸며 살 수 있도록 폐허가 된 땅에 논밭을 일구고, 산업현장에 나가 힘겹게 일했으며, 낯설은 머나먼 이국땅에 가서 피와 땀이 서린 눈물의 세월을 강하게 견뎌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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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로 외화를 벌러간 간호사들과 광부들-

    

1963년부터 1975년까지 12년동안 한국은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국민 소득은 87달러, 인구는 2400만 명에 실업자는 250만 명이 넘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간호사와 광부의 독일 파견은 외화를 획득하는 돌파구였습니다.

 

독일로 파견된 광부들은 지하 수천미터 막장안에서 섭씨 30도의 지열이 뿜어져 나오는 환경 속에서 하루 8시간의 중노동을 했습니다. 3년 뒤 이들이 귀국했을 때는 대부분 1회 이상이 골절상 병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만 300여 명의 간호사들이 서독으로 건너 갔고, 노인 환자들에 대한 극진한 간호와 민첩한 업무처리로 현지에서 찬사를 받았습니다.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하며 한국은 서독정부로부터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차관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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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남 파병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1965년 10월 박정희 정부는 전투병력 2만여 명을 베트남전쟁에 파병하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파병의 이유는 주한미군을 베트남으로 이동하려는 미국 정부의 논의를 차단함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을 확실히 하는 군사적 효과도 있었습니다.


또한 베트남에 한국 군인을 파병하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한국군이 사용하는 물자와 용역은 될 수 있는 대로 한국에서 구입하고, 베트남에서 시행하는 건설과 구호사업에 소요되는 물자와 용역도 한국에서 구매한다는 다짐을 받아 한국 경제에 적지 않은 이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군인과 노동자가 받은 봉급과 현지 한국 기업의 사업수익까지 합하면 베트남 전쟁 파병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총 한국군 31만 2853명 중 4624명이 전사하였고, 많은 한국군이 고엽제에 의한 후유증을 겪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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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부고속도로 완공 사진-

        






위와 같이 우리 국민이 피와 땀으로 벌어들인 외화로 한국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게 됩니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에 착공하여 1970년 7월, 약 2년 만에 빠른 속도로 완공하였고, 우리나라의 산업 발달과 한국 경제가 도약하도록 하는 데 큰 발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1988년 세계를 놀라게 했던 88올림픽,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한국은 40억의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주게 되었습니다.


88올림픽은 당시로서는 최대규모인 160개 국 13,304명의 선수가 이념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참가하여 12년 만에 온전한 올림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로서, 88올림픽에서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종합 4위를 차지하여 한국의 위상을 널리 알렸습니다.


이러한 88올림픽을 통해 한국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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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올림픽 개막식-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신화의 한국은 기적을 이루어내었습니다. 어떤 나라도 한국이 지금 이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예측하지 못했으며, 과거 한국보다 높은 경제 생활을 누렸던 많은 나라들은 지금은 한국보다 낮은 경제 생활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얀 도화지라고 밖에 볼 수 없었던 우리 국토에는 이제 탄탄한 사회 간접 자본들과 여유를 찾은 사람들의 모습이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은 하나하나가 더해져 도화지를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밑그림을 그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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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열린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의 신화를 이루어내었습니다. 월드컵 사상 한국의 4강 신화는 아시아 최초와 최고라는 타이틀을 거머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붉은 악마가 열띤 응원을 펼치면서, 한국의 하나된 저력과 경기 응원을 축제로 승화시켜 서울 거리를 가득 매웠던 모습을 통해 세계의 사람들에게 한국을 널리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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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한일월드컵의 모습과 붉은 악마의 모습-

     


또한 한국은 현재 세계 10대 강국임과 동시에 경제대국으로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에게는 한국이 신화적 존재로 비춰질 정도로 한국의 국제적 위치는 매우 높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과거 아무 것도 없었던 시절에서 부터 발전되어 나가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임에 더욱 의미가 깊다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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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IMF조사 경제력도표-                                   -2006. 중국 사회과학원이 발표한 세계 10대 강국-




그리고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 골든이글, 선진국들의 자주포보다사정거리가 10km나 긴 K-9 자주포, 아시아에서 가장 큰 상륙함인 우리 해군의 대형상륙함 독도함, 우리나라의 함정에선 처음으로 구역별 대공방어가 가능해진 한국형 구축함 등 한국의 국방을 수호하는 무기들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아래 동영상을 통해 더 다양하고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동영상: 한국의 명품 무기들-



이렇듯이 한국의 모습은 강한 단결심과 국민들의 하나된 마음에서 보여주는 저력, 한국의 국제적 위상, 대한민국 이 땅과 국민을 수호하는 튼튼한 국방력 등 다양한 모습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도화지에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질 것입니다.




완성된 대한민국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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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러분은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남녀노소 모두 각자가 원하는 다양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겠지만,  저희가 바라는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1. 대화와 소통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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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국민 단합력이 강하여 국민들이 원하는 것에 하나된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강하게 요구하곤 합니다.

이런 모습은 국민들이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대한민국의 바람직한 모습을 사회에 실현시키도록 하고자 하는 것임에 매우 긍정적이게 생각하지만, 이런 모습을 일어나게 하는 데에는 아직까지 대한민국에는 정부와 국민간의 소통이 적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어떤 정책 등을 시행하기에 앞서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서로가 원하는 바를 적절히 융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사람과 사람 간에, 또한 집단과 집단 간에, 그리고 정부와 국민 간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에는 서로 간에 대화와 소통이 단절되어 있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더욱 발전되어 나가고, 선진 사회로 나아가는 데는 대화와 소통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할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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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에는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가 많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사는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되곤 합니다.


과거사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에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큰 힘이 들게 마련이지만, 우리 대한민국을 올곧게 만드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과거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 당시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희생을 겪게 만든 정부의 탄압 등 우리 정부가 그 당시에 일으켰던 일들에 대해서도 반성과 사과가 필요함은 당연합니다. 아픈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 없으면 사회가 보다 진보되는 것도 더뎌지게 됩니다. 그 당시 미흡하게 끝났던 반성과 사과가, 이제는 사회가 아픈 역사를 딛고 더욱 발돋움 하는 데 다시 한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3. 국방 부분 로봇의 개발과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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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분단 국가이기 때문에 국방에 쏟아 붇는 국민 세금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무척 큽니다. 그 금액을 다른 부분에 투자하면 우리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국민들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따라서 국방력은 유지 또는 더 크게 만들지만, 우리 국방비를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는 데에는 국방 부분에 로봇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군대에 가야하는 청년들도 우리 국방에 무인 전차와 많은 군인들을 대신하는 로봇 등이 만들어 진다면, 국방을 지켜야한다는 부담이 조금은 적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민국도 첨단 무기들을 만들어 국방력이 무척 강한 편이지만, 앞으로의 세계 국방력은 로봇이 좌지우지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 국방도 탄탄히 지키고, 우리 20대의 청년들의 부담도 줄이고, 국방비에 쏟아붓는 많은 금액을 다른 부분에 투자할 수 있도록 로봇에 대한 개발과 활용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며, 미래 대한민국의 국방이 보다 강해지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았으며, 미래의 대한민국에 바라는 점도 몇 가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신이 상상하는 미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슬로건이었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우리가 상상하고, 바라는 꿈은 미래 대한민국에 꼭 실현될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의 생각과 상상과 꿈이 미래 대한민국을 만듭니다.   

 

 



 

  국민과 함께 Smile, 60년지기 국방부   

              공感, 의食주, 육해空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국방부가 함께합니다 :)

하얀도화지 사진 : http://blog.naver.com/snp2002/30001379944

6.25 전쟁 사진 : http://cafe.daum.net/war-625/3WLK/16

6.25사변후 모습 사진 :http://blog.naver.com/maeilcom/10014977690

월남 파병 사진 : http://blog.naver.com/leekorean/60005408073

월남전 사진 : http://blog.naver.com/ojh7071/20019282441

독일로 간 광부/간호사 사진 :  http://blog.naver.com/onlyul/70015111228

경부고속도로 사진 : http://www.fotoya.net/Common/PhotoViewR.aspx?photoID=173186

88올림픽 사진 : http://blog.naver.com/cshplus/100042132132

태극문양 사진 : http://blog.naver.com/lya0234/10009532948 

꿈은 이루어진다 사진 : http://imagebingo.naver.com/album/image_view.htm?uid=meikun4&bno=20007&nid=3153 

한일월드컵 사진 : http://blog.naver.com/chil137/80024356605

경제력 도표 : http://blog.naver.com/urexcellency/40046944929

한국의 명품 무기들 동영상 : http://blog.daum.net/jinwoosarang/4075077

서울 야경 사진 : http://imagebingo.naver.com/album/image_view.htm?uid=seojuhun&bno=18051&nid=11695 

대화와 소통 : http://cafe.daum.net/eeahn/6zq5/68

과거사 반성: http://zine.media.daum.net/h21/view.html?cateid=3000&newsid=20050805180912533&cp=hani21

국방 로봇 사진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60608144215254&cp=newsis

참고 기사 출처: http://blog.daum.net/phil228/1613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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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03:11

6.25 전쟁의 숨은 주역들 - 기억해야..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인 6.25 전쟁.
한국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6.25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한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10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러 휴전협정을 하여, 현재까지 휴전상태는 이어져오게 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여러분들,
6.25 전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6.25 전쟁의 아픔을 마음 속에 지워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아픈 과거는 마음 속에서 꺼내볼 때마다 마음을 아리게 하지만,
우리가 지금 있기까지, 이렇게 대한민국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기까지는
6.25 전쟁 당시 우리를 위해 한 목숨 바쳐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픈 과거를 항상 마음 속에서 꺼내볼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점은 우리 마음 속에 6.25 전쟁의 아픔을 지워버려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진 전쟁과 전쟁으로 인해 희생하신 분들을 우리는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이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6.25 전쟁은 단지 북한과 남한에게만 기억되는 희생의 역사일까요?



 
아닙니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이 땅엔 수많은 나라의 참전용사들이 왔습니다.
 
 

<6.25 전쟁 유엔참전국>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한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 10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러 휴전협정을 하여, 현재까지 휴전상태는 이어져오게 됩니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민국(남한)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국무성에 사태의 긴급성을 알렸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열어 한국 문제를 건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조선군의 즉각적인 전투 행위 중지와 38도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청하는 미국의 제안을 9대 0으로 가결합니다.(유고슬라비아는 기권)


  이러한 결의를 북한 측에 통고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아 다시 안전 보장 이사회를 열어 "회원국들에게 군사 공격을 격퇴하고, 그 지역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남한에 제공할 것"을 7대 1(기권2)로 결의했으며, 이 날 해리 S. 트루먼은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남한에 대한 해,공군의 지원을 즉각 개시하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결국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콜롬비아, 터키 등 16개국의 회원국이 유엔군을 조직하여 한국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그럼 6.25 전쟁이 시작했을 떄의 상황을 살펴볼까요?

6.25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으며 한달여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어붙이는 등 신속하게 전세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서울과 원산, 평양까지 탈환하여 곧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게 됩니다.  

  그리고 38도선을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엔을 시작으로 휴전문제가 언급되었고,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서명되면서 3년 10개월에 걸친 승리 없는 전쟁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6.25 전쟁에 있어 한국은 유엔군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휴전협정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되었을 정도로 당시 한국은 큰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유엔군이 한국에 와서 전쟁의 상황을 변화시켰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표-1 6·25 전쟁 당시 남북 군사력 비교>

구 분

부 대 / 병 력

주 요 장 비

남 한

북 한

남 한

북 한

지 상 군

*보병:8개 사단*해병:1개 부대*기타 지원부대등9만 6,140명

*보병:10개 사단*전차:1개 여단*기타 기계화부대,경비대,특수부대등19만 1,680명

*곡사포:91문*대전차포:140문*박격포:960문*장갑차:27대

*곡사포:552문*대전차포:550문*박격포:1,728문*장갑차:54대*전차:242대

해 군

6,956명

4,700명

*경비함:28척*기타함정: 5척

*경비함:30척*보조함:80척

공 군

1,897명

2,000명

*연습/연락기:22대

*전투기/전폭기/ 기타 : 211대

10만 5,752명

19만 8,380명

 

 


       출처: 군사편찬연구소 (http://www.imhc.mil.kr/imhcroot/data/korea_view.jsp?seq=4&page=1)



우리는 당시 유엔군으로서 한국에 오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모국이 아닌 나라, 한국이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평화를 위해 전쟁 통에 피를 흘리셨던 많은 분들을 우리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표-2 유엔군 피해 현황>


구분

전사/사망

부상

실종

포로

총계

178,569

555,022

28,611

14,158

776,360

한국

137,899

450,742

24,495

8,343

621,479

미국

36,940

92,134

3,737

4,439

137,250

영국

1,078

2,674

179

977

4,908

오스트레일리아

339

1,216

3

26

1,584

네덜란드

120

645

-

3

768

캐나다

312

1,212

1

32

1,557

뉴질랜드

23

79

1

-

103

프랑스

262

1,008

7

12

1,289

필리핀

112

229

16

41

398

터키

741

2,068

163

244

3,216

태국

129

1,139

5

-

1,273

그리스

192

543

-

3

738

남아프리카 공화국

34

-

-

9

43

벨기에

99

336

4

1

440

룩셈부르크

2

13

-

-

15

콜롬비아

163

448

-

28

639

에티오피아

121

536

-

-

657

노르웨이

3

-

-

-

3


 출처: 라이프인코리아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



그런데 우리나라 곳곳에 그 분들을 기리는 참전비는 찾는 사람도 없이,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참전비에 대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관리 주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관리에 필요한 별도의 지원금이 책정돼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우리 역사에 큰 힘이 되어주셨던 분들을 기리는 참전비에 좀 더 자주 찾아가 그들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참전비를 방문하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도 한국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해 알게하는 현장 체험 학습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전비는 6.25 전쟁 당시 유엔참전국이었던 나라별로 한국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 참전비, 영국 참전비, 캐나다 참전비, 태국 참전비, 프랑스 참전비, 호주 참전비, 터키 참전비, 그리스 참전비,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비, 네덜란드 참전비, 뉴질랜드 참전비, 에디오피아 참전비, 콜롬비아 참전비, 필리핀 참전비,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인도․ 스웨덴 의료지원단 참전비 등이 있습니다.


나라별 참전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lifeinkorea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 곳: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Subject=UN2#txt01)




<UN묘지의 모습>


그리고 부산 남구 대연동에 위치해 있는 UN묘지는 1955년 11월 15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에서 오직 하나 뿐인 유엔 관리의 묘지로서,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16개국의 전투지원국과 5개국의 의료지원국의 유엔군 장병의 전사한 영령을 안치한 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인 유엔군과 그들을 기리는 참전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삶을 한국에 바치셨던 그 분들께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자녀로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당신을 마음 속 깊이 기억하겠습니다. 한국을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참전비에 대한 좋은 동영상을 발견해서 여기에 링크하여 올려봅니다. ^^





참고 기사 출처:

1) 다음 카페

(http://cafe212.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1VE8&mgrpid=null&fldid=HOgg&contentval=000FI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948&fenc=L7rwq15N-910&srchid=IIMim84n00)

2) 라이프인코리아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

3) 다음 백과사전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X7629)


사진 출처:  

1)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sapjt/26br/16?docid=1ET7a|26br|16|20080618210054&q=6.25%20%C0%FC%C0%EF%20%BB%E7%C1%F8&srchid=CCB1ET7a|26br|16|20080618210054)

2) 동아누리

(http://www.donga.com/e-county/sssboard/board.php?tcode=01012&s_work=view&no=256862)

3) 다음 카페

(http://cafe212.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1VE8&mgrpid=null&fldid=HOgg&contentval=000FI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948&fenc=L7rwq15N-910&srchid=IIMim84n00)

4) 라이프인코리아 (http://www.lifeinkorea.com/culture/Korean-War/war625k.cfm)
 
동영상 출처: 다음 TV팟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8539191&q=%C2%FC%C0%FC%BA%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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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00:54

60일, 한 여름밤의 이야기의 향연 !!!

특별한 하루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큰 감동을 한껏 느끼고 싶으신가요?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 또 다른 생각을 해보고 싶진 않으신가요?

   

우리 모두의 과거, 현재, 미래를 어우르는 특별한 경험이 하루하루 펼쳐지고 있습니다!

 

7월 14일부터 9월 11일까지 매일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정원에서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강연을 합니다! 건국 60주년을 맞이하여, 60일 연속 강연을 하는 것인데요.

 

무더운 날씨에 지친 몸을 시원한 밤바람을 쐬면서 몸과 정신을 맑게 깨워보세요!

휴가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도심에서 맞볼 수 있는 색다른 2시간!

 

<역사, 미래와 만나다>라는 전체 주제 하에, 요일 마다 세부 주제로 나뉘면서 강연은 진행됩니다. 7월 14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님의 강연으로 시작해서 9월 11일 박진영님의 강연을 끝으로 건국 60년, 60일 강연은 막을 내립니다.

 

벌써 많은 분들이 다녀가셔서 강연의 활기찬 열기를 느끼고 가셨습니다. 요일마다 색다른 느낌의 강연내용과 강사님들 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주시면서 한 여름 밤의 이야기의 향연을 한 몸 가득히 느끼실 수 있습니다.

 

저도 듣고 싶은 강연은 미리 다이어리에 체크해 놓았는데요.

뮤지컬이나 연극도 좋지만, ‘나’와 ‘우리’의 역사,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특별한 강사님들과의 소통으로 하루를 더욱 경쾌하게 보내보세요~

 

자세한 사항은 http://www.kunkook60.org/ 이곳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

 

위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지만, 미리 확인해보시도록 요일별 컨셉과 요일별 강연 일정을 첨부해놓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http://www.kunkook60.org/)


08월 01일

차석용 사장

LG생활건강

소프트 파워로 무장하라

08월 02일

홍사종 소장

미래상상연구소

이야기 혁명시대,

이야기가 부를 창조한다

08월 03일

김덕수

사물놀이

즐거움으로 승부하라

08월 04일

 

 

추후 공지

08월 05일

함인희 교수

이화여대

양성평등과 다양한 가족제도

08월 06일

조지형 교수

이화여대

역사학과 지구 밖에서 세계사 보기

08월 07일

박원순 변호사

희망제작소

공존의 열쇠를 찾아라

08월 08일

조 순 前총리

 

한국 경제여, 비상하라

08월 09일

탁석산 철학자

 

인문학의 씨앗을 뿌려라

08월 10일

유순신 대표

유앤파트너스

기업은 이런 인재를 원한다

08월 11일

정옥자 위원장

국사편찬위원장

건국 60년, 우리역사를 보는 눈

08월 12일

윤인진 교수

고려대

다문화 사회를 어떻게 살 것인가

08월 13일

이덕일 박사

한가람 역사연구소

한국사 속의 소통과 화해

08월 14일

조동성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

착한 기업의 시대가 온다.

08월 15일

 

 

추후 공지

08월 16일

 

 

추후 공지

08월 17일

정운찬 교수

서울대

인재 엑소더스를 막아라

08월 18일

강석훈 교수

성신여대

한국인에게 시장은 무엇인가?

08월 19일

배 영 교수

숭실대

정보 사회의 명암

08월 20일

정진홍 교수

이화여대 석좌교수

인문학적 상상력과 종교 문화

08월 21일

윤창현 교수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달러의 위기, 글로벌 임밸런스

08월 22일

성창모 원장

효성기술원

기술강국의 지도를 그려라

08월 23일

지 박

음악가

클래식과 대중의 접점은 어디인가

08월 24일

김용아 파트너

맥킨지컨설팅

우먼 코리아로 가는 길

08월 25일

 

 

추후 공지

08월 26일

홍성욱 교수

서울대

학문의 융합과 미래의 대학

08월 27일

오준호 교수

KAIST 기계공학부

로보 사피엔스 : 휴보의 진화

08월 28일

 

 

추후 공지

08월 29일

서정선 대표

마크로젠

한국 산업의 블루오션, 생명공학

08월 30일

김주환 교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하는 뇌 - 뇌과학과 인문사회학의 만남

08월 31일

천호균 사장

쌈 지

크리에이티브형 인재를 육성하라

09월 01일

 

 

추후 공지

09월 02일

전상인 교수

서울대

도시화와 아파트 문화

09월 03일

장대익 교수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유전자와 더불어 살기 : 자연과 인문의 공생

09월 04일

김순권 교수

경북대

식량위기와 세계의 책임과 연대

09월 05일

구자영 사장

SK에너지 P&T

상상이 힘이다

09월 06일

김영세 대표

이노디자인

디자인 코리아로 가는 길

09월 07일

공병호 박사

 

미래의 인재조건

09월 08일

박세일 교수

서울대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하나?

09월 09일

이재열 교수

서울대

한국 사회의 안전과 위험

09월 10일

이소연 박사

한국최초의 우주인

우주와의 조우 :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09월 11일

박진영

JYP 대표

폐막강연 - 한류를 넘어 세계로




지난 강연은 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내용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visionkorea60.go.kr/event/y60.asp 아쉽게 놓친 강연들은 이곳에서 살펴보세요!

 

모두 가보고 싶은 강연 체크해놓으셨나요? ^^

한여름 밤의 이야기의 향연 속으로 풍덩 빠져보시는 것,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건국 60주년을 기념하여, 꼭 한번 강연의 열기를 담뿍 느껴보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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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4 19:55

"님은 먼곳에" 그 속에감춰진 비하인드 스토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제 '님은 먼곳에'에서

순이(수애 역)의 남편이 근무했던 곳인

호이안 지대는

영화 속 내용과는 달리

실제로는 '청룡 부대'의 작전지역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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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처럼 서로 다른 지역과

서로 다른 특수한 작전을 부여받은

각 부대원들은

전투 작전 중에 서로 만나

백마부대와 맹호부대의 '오작교 작전'처럼

함께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베트콩' VC.

무력 침공을 목적으로 한 그들과의 전투에

참가한 '님들'의 실제 모습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월남에 참전했던 그들은

공산 세력으로 강제 통일하려한 북부 월맹에 대항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싸웠을 뿐만 아니라 ,



당시 베트남 국민들을 위한

대민지원 사업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하는데요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왼쪽 위 부터


30포 의무대 위생병/ 경로 잔치 / 대민 지원 /   대민 진료 /도깨비 부대장 고아원 선물 /백마 도깨비 부대 / 백마부대가 건설한 백마로 /  백무부대가 건립한 귀순 용사촌 / 백마부대 대민 진료 / 백마부대가 건립한 백마 유치원 / 비둘기 부대 어린이 금연 운동 비둘기 부대가 준공한 난민 가옥 /  식수 공급 /진료소 /청룡부대 직업보도소 수련모습 / 투이호아 , 한국군 계속 주둔 요구 시위 모습 /

  

자~~그러면

'님은 먼곳에'

 영화 속 그 먼곳으로 갔던

 실제 '님들'의 이야기는 어떠한가?


'님은 먼곳에' 이야기처럼

우리나라가 해외로 파병을 보낸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1950년 6.25 전쟁에 의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미국 등의 강대국들에게

원조를 받았던 우리나라가


15년 밖에 지나지 않은 그 당시

다른 나라에 군사와

군수 물자를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1964~1973년,

그리고 그들의 역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에 있는 베트남은

그 북단을 중국과 접해있는 까닭에

고대로부터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것 처럼

베트남 또한

그런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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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3 22:31

60번째 생일을 맞은 대한민국에게

오는 15일이면 정부가 수립된지 60주년입니다

60번째 생일을 맞은 '대한민국'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담아보았습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60번째 생일을 맞은 대한민국에게 한마디 하는 것을

쑥쓰러워하셨습니다.

항상 곁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고마움을 표현한다는 건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는 듯이




"에이 무슨 할 말이 있겠어 ~ "

하시면서 웃으시는 모습에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60번째 생일을 맞은 대한민국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

 
   
 축하한다

힘내라 대한민국

대한민국 화이팅


축하의 메세지도 다르고

써준 사람들의 나이도 서로 달랐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그 마음만은 하나임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겠죠


 


수천년동안 지켜온 우리의 땅을

단지 몇 십년이라는 식민 시절 때문에 빼앗긴 설움을

아직도 깨끗하게 해결하지 못해준

독도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담아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보낼 예정인

아들,

동생,

친구 혹은 애인에게도

전할 말을 써주셨습니다.



대한민국과 함께 한 60년

그 60년이 항상 기뻤다거나 행복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숨겨두고 싶을만큼 좋지 않은 추억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마를 날 없었던 우리의 슬픈 이야기들을

지금의 우리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고 발전한 것만으로도



 

대한민국 60년을 ㅡ

위대한 국민과 이루어낸 기적의 역사라 부를만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6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대한민국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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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3 04:19

나라를 지키는 그녀들! 그녀들은 우리 군의 어머니! (2)

 그렇다면 북한의 경우엔 여군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북한 여군의 모습들

  북한에서는 여군의 경우 남성과 똑같이 16~17세에 입대하게 됩니다. 북한 여군은 매년 9~10월 정도에 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사전에 지명하여 선발합니다. 물론 지원입대도 가능합니다. 여군의 의무복무 기간은 병사 7년, 군관(장교)은 10년 정도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행정·통신·방공·간호·전투요원 등 모든 병과에 배치되며 소수의 여군은 특수부대에서 활동하기도 합니다.

 

북한군은 여군 비율이 높은데 이것은 남성들의 군입대 감소보다 여성의 군입대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군단급에는 군단 무전결속소(중계소: 대대 약 450명)를 비롯해 군단 보위부(기무사 예하) 여군소대(약 40명)까지 대략 700여 명의 여군이 보직돼 있습니다.

 

또한 북한에서 여군은 각 군단 및 사단 이하 부대에 소속된 통신부대·군의소(군병원)·군단예술선전대와 사단별로 배치돼 있는 대공(對空) 고사총(14.5㎜ 구경) 부대에 주로 복무합니다.

 

한 탈북 여군은 "북한에서 여군도 출신성분과 '빽', 미모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군들이 가장 희망하는 부대는 군의소고, 뒤를 이어 통신부대와 예술선전대로 지원자가 몰리지만, 반면에 고사총 부대는 모든 여군이 기피합니다.

그 이유는 여성 고사총 부대 출신들이 5~6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면 몸이 성한 곳이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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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한 여군의 모습

 

 

북한의 여군은 1936년 4월 중국의 만강 부근 수림에서 조직된 여군중대가 시초이며, 이후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꾸준히 성장해 창설된 지 56년 만인 92년에 첫 여성 장령(장군)을 배출했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북한군은 군 복무 중에는 남녀가 공식적으로 사귈 수 없으며 규정을 어기고 몰래 사귀다 보위부·정치부에 알려지게 되면 바로 생활제대(불명예 제대)를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장기복무로 끊임없이 이성교제가 문제시되고 있다고 하는데,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니 만큼 연애 감정만큼은 통제할 수가 없나 봅니다.

 

북한이 현재 여군들을 위해 특별히 배려하는 것은 복무 중 일부 부대이기는 하지만 북한산보다 질이 좋은 중국제 분(파운데이션)과 크림을 배급하는 것, 그리고 제대하면 북한 사회에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군 경력을 인정해 초급 간부를 선발할 때 유리하도록 고려해 주는 정도라고 하네요.

 

 

우리 한국 여군과 비교해보면 북한에서는 여군으로 들어가는 것이 매우 보편화 되어 있고, 남녀 간의 구별이 확실함으로 미루어 보아 군 생활에 있어 여군은 불평등한 사항이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이제는 여군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마음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다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여군들은 그녀들의 마음 속에 큰 애국심과 함께 어머니의 마음으로, 한국이 보다 안전하여 한국의 자식들인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가슴 깊이 여군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임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녀들을 잊지 말고, 나라를 위하는 그녀들을 응원해야할 것입니다.

 

 

그 이름도 찬란한 한국의 여군! 앞으로도 파이팅입니다!!!

 

 

사진 출처:

 

(1) 네로의 조그 블로그 http://www.i-nero.com/iblog/?no=24
(2)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CultureTypeView.jsp?writeDate=20070510&writeDateChk=20070510&menuCd=2004&menuSeq=36&kindSeq=1&menuCnt=30935

 

기사 출처:

 

조선일보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2008072600029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CultureTypeView.jsp?
writeDate=20070510&writeDateChk=20070510&menuCd=2004&menuSeq=36&kindSeq=1&menuCnt=3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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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3 03:22

나라를 지키는 그녀들! 그녀들은 우리 군의 어머니! (1)

 우리가 생각하는 군인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요?


보통 남성적이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그런 모습을 생각하기 마련일 것입니다.


물론 군인의 대다수가 남자로 구성되기 때문일 테지만, 분명 우리 군인들에게도 남성적 모습뿐만 아니라 대범한 용기와 따뜻한 포용력을 가지고 있는 군인들의 어머니의 모습도 오랜 역사를 갖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미지를, 그리고 그 분들을 가끔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부터 우리는 국군엔 이 분들도 있음을 좀 더 확고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군에 빼놓을 수 없는 분들!

그 분들은 바로! 우리의 여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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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종, 방공포, 헌병, 군악등 거의 전 분야에서 맹활약중인 공군의 여전사들.


 그럼 우리 여군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볼까요?  


우리나라 여군은 건군 당시, 육군항공부대(공군의 전신)에 편성된 여자항공대와, 체육교사를 임관시켜 예비역으로 전환한 여자배속장교, 그리고 육․해군에서 운용한 간호대에서부터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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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번째 사진) 1948년 8월26일 간호장교 1기생 사진

△(3) 두번째 사진) 1949년 여자항공교육대 1기생 사진


그 전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행주대첩 당시 긴 치마를 짧게 잘라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 승리로 이끌어 냈다는 저고리 ‘여군’의 역사가 전해져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여군이 탄생한 것은 6.25 전쟁 당시였습니다. 광복 직후 우리나라는 중등교 이상의 학교에 학도호국단을 조직하여, 그들을 훈련시킬 장교로 일부 여자 배속장교를 양성했으며,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족한 전투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여군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자 배속장교 몇몇이 정부의 재가를 얻어 모병을 시작하게 되었고, 3000여 명이라는 수많은 분들이 여군에 지원하게 됩니다.


 

 주목할 점은 목숨이 오가는 냉혹한 전쟁 통에 그녀들이 왜 군을 선택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1950년대에는 여성은 집에서 살림을 도맡아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었을 때였기 때문에. 군을 선택하신 여성분들에 대해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그 때 여군으로서 정보 분야에서 일하셨다는 윤정순(76)씨의 말씀을 통해 들어보면, 당시 많은 여성들이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해 못할 거예요.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도의용군 2기 모집 때 자격 미달인 17세였는데도 조르고 졸라 겨우 입대했지요.”

그리고 3000여 명의 여군 지원자 중에서 시험을 거쳐-

정예 멤버 500여 명이 제1기 여자의용군교육대로서 1950년 9월 6일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들이 한국의 역사상 최초로 탄생된 여군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따로 창설 행사를 가질 틈도 없이 남자 군복을 입고 전장에 나갔다고 하는데요.

 

당시 여군들의 군 생활에 대해 제1기 여자의용군으로 있으셨던 이춘자(78세)씨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쟁 중이긴 했지만 참 열악했지요. 속옷부터 군화·군복까지 남군용을 사용해서 보기 싫은 건 둘째 치고 너무 불편했습니다. 군사훈련 중에도 총기가 부족해 돌려가며 사격연습을 했고 맨바닥에 앉아 군사교육을 받았죠. 야전에서는 잠자리가 없어 민가에서 자거나 부대 텐트에서 거적을 펴놓고 자기도 했습니다.”

 

혹시 그 당시에 전쟁 통이라고 해도 여군이라고 안전한 후방에서 행정업무나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군들은 지원업무, 행정보조, 예술단 활동 외에도 통역장교, 포로 심문관, 귀순공작, 첩보 수집, 선무공작활동, 은거지 마련 등의 다양한 임무를 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적 지역에 침투해 첩보를 수집하다가 포로가 되기도 하고, 적의 코앞에서 선무공작활동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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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초 여자의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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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자의용군 사격훈련



현재 여군협의회장이신 김범녀(81)씨는 간호장교로 일했지만 수차례 총․포탄 세례를 받아 지금도 몸 속에 파편이 박혀 있다고 합니다.

 

전쟁 속에선 누구도 안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의 연속이자 고통의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전쟁이 점차 소강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1951년 11월에 여자의용군교육대는 해체됨과 동시에, 11월 15일에 육군본부 고급부관실 여군부로 편입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 1954년 2월 11일에 여군부로 승격되었고, 1955년에 여군만의 독자적인 교육 기관인 여군 훈련소가 서울 서빙고에 재창설되어 여군 교육의 초석을 다지게 됩니다. 1959년 1월 1일에는 육군본부 여군처로 개편되었고, 1970년 12월 1일 부로 여군단으로 승격됩니다.

 

이러한 여군은 1974년 1월에 여군계급제도가 개편되어 장교․하사관만으로 편성되게 되었으며, 의무복무연한은 장교는 2년, 하사관은 3년으로 되어 있고, 복무기간을 마치게 되면 본인의 희망 여하에 따라 복무연장 또는 전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88년까지만 해도 임신을 하면 제대를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중도에 여군의 길을 포기해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1988년부터는 중사 이상 전 장병에게 결혼에 따르는 출산을 허용토록 하여, 지금 남아 있는 여군의 경우에 고참 소령급 이상에는 ‘올드 미스’, 신참 소령 이하에는 ‘주부’가 많다고 하네요.

 

 또 하나의 궁금한 점은 첨단장비와 전투기를 운영하는 공군의 경우 역시 여군들이 활약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우리의 예상을 깨고 오히려 육․해군이 간호장교를 시작으로 여군이 태동한 것과 달리 공군은 실제 조종간을 붙잡는 비행 전투병과가 공군 여군의 시초라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 여군의 평등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진 출처:

(1) 네로의 조그 블로그 http://www.i-nero.com/iblog/?no=24

(2)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CultureTypeView.jsp

writeDate=20080801&writeDateChk=20080416&menuCd=2004&menuSeq=41&kindSeq=1&menuCnt=30935

(3) 네로의 조그 블로그 http://www.i-nero.com/iblog/?no=24

(4)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ColumnTypeView.jsp?writeDate=20070601&writeDateChk=20070601&menuCd=2001&menuSeq=10&kindSeq=1&menuCnt=30938

(5)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ColumnTypeView.jsp?writeDate=20070420&writeDateChk=20070420&menuCd=2001&menuSeq=10&kindSeq=1&menuCnt=30938

 

참고 기사 출처: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HearTypeView.jsp?writeDate=20070906&writeDateChk=20070906&menuCd=3004&menuSeq=1&kindSeq=4&menuCnt=30911

여군교육원 http://www.examinfo-bank.com/wac_01.htm

다음 백과사전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5a2872a

네로의 조그 블로그 http://www.i-nero.com/iblog/?no=24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CultureTypeView.jsp?writeDate=20080801&writeDateChk=20080416&menuCd=2004&menuSeq=41&kindSeq=1&menuCnt=30935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kdd/HearTypeView.jsp?writeDate=20070625&writeDateChk=20070625&menuCd=3004&menuSeq=1&kindSeq=13&menuCnt=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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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2 16:45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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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동이야... ㅜ.ㅜ

2002 월드컵에서 느꼈던 그 환희가 내 뱃속에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을 외치고 있어
먹는 방법은 두 가지야.
어느정도 부대찌개를 먹은 후에 밥을 같이 비벼먹든가,
그냥 밥 위에다가 얹혀먹으면서 조물조물 먹는 법.
 
난 달라. 그래서 반은 얹히고 반은 조물조물 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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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정말 배고프지 않았다면 나를 문밖으로 패대기 쳤겠지만,

다행이 먹느라 정신 없는 탓에 그대로 놔두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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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건빵국방 팀원끼리는 콩 한조각이라도 나눠 먹는 끈끈한 정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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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경우는 아래위도 없고 콩 한쪽은 혼자 먹는 거라고 서로 외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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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 흔적이야. 양이 많아 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다 먹은 걸 보니 전설의 맛집은 역시 맛집이더라구.

여기서 10자 평으로 음식 맛을 이야기 해보자면

'부대찌개 먹어봐야 안다'

30자 평을 하면

'달달한 햄, 야들야들 고기, 깊고 진한 국물 맛 이 적절히 어울리는 면발, 킹왕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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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낼 것인가 신발끈 묶고, 화장실을 다녀오며, 안오던 전화를 받기전에

이렇게 깊은 맛과 역사를 지닌 가게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직접 여쭤보기로 했어.


점심시간이 지나고, 저녁시간이 이른 3시였지만 가게 안이 거의 찬

바쁜 시간에 겨우겨우 터줏대감 주인이신 허기숙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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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가게하신 지 몇 년 되셨나요?

A : 여기에서는 40년이 넘었는데, 내가 가게를  한지가 52년됐지.

Q : 그럼 52년이 되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뜻 깊었던 사건이나
가게에 대한 기억 등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A : 옛날에 내가 이 장사를 할 적에는 참 수많은 고생이 많았지.

참 수 많은 고비를 넘어갔지.

왜 그랬냐면, 그때 당시에는 부대 고기라는 거는 사회에서 쓰지를 못하게끔 되어 있었거든.

그런데 의정부, 이 동네가 양식음식점도 많고, 자체가 부대였어.

이제 그러니까 의정부가 쪼그마면도 여기가 다 미군들 촌이었지.

그러니까 먹고 살 것도 없고 하니까 맨 처음에는 오뎅으로 한 5달 정도 장사를 하고,

왜냐면 여기가 이쁜 색시들이, 양색시들이 나오니까 미군들이 밤이면 나와서 홀에서 춤을 추거든.

그래서 거기서 미군들 만나서 춤추고 들어오다가 오뎅하고 우동하고 그런 거를 주로 많이 먹고, 속 풀으려구.

그렇게 먹고 댕겼는데, 옛날 부대 아저씨들이 미군 부대 다니면서, 이쁜 색시들이 들어오니까 우리 집에 따라 들어왔단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고기를 내가 가져나 끌어올 테니 장사 할 수 있겠느냐" 해서, 나는 그냥 별 생각 없이 그럼 하겠다고,

지금 오뎅 장사 나으면 그거를 내가 하지요.

아저씨들이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러고서는 부대에 교대로 들어가면, 15명이야. 15명에 반반씩 들어가는 거야.

오늘은 이 조가 들어가면 내일은 저 조가 들어가고.

이렇게 들어가면 미군 장교들 음식을 차려주려고 하면, 여러 가지 수많은 고기가 있어.

모두 몇 종류냐 하면 12가지야.

그거를 그 아저씨들이 버리기 아까워서, 그때 당시에 우리는 어디 가서 고기를 먹어보지를 못하고.

내가 그때 150원씩, 그때 냉장고도 없어서 은박지에다가 말아서 배에다 차고 옷을 입고 나왔단 말이야.

그럼 뜨끈뜨끈한 걸 여기에 가지고 와서 우리 집에 와서 이만한 광우리에 쏟아놓고 했지.

아주 칠면조, 소고기, 양갈비 같은 고기들이 있었지.

그렇게 해서 이제 그걸 해가지고, 그때는 연탄이 있어서 그거를 볶음을 해서 파는 거야. 막걸리도 팔고.

서울 사람들은 여기를 시골이라 그랬지.

그때 당시에는. 시골이니까

그때는 도로도 잘 안 되어있고 하니까, 서울 사람들은 잘 내려오지 않았고

의정부 지역사람들이 와서 한 근에 얼마해서 볶아서 먹는 거야.

그렇게 해서 팔다가 한 1년 정도 했는데, 그게 소문이 자꾸자꾸 퍼지니까

당시에 나를 막 잡아가는 거지.

"누가 이걸 이렇게 갖다 줘서 팔았느냐." 고 취조했지

가게에 들어와서 구석구석 고기 같은 거 있나 막 뒤졌어.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대느냐고.

그래서 그냥 일주일에 한번 씩 계속 붙잡혀 갔지. 그렇게 하기를 13년을 붙잡혀 갔어.

1년 동안은 잘 넘어갔는데, 세관에서 날 잡으러 온 거야.

아침 9시에 들어가면, 저녁 9시에 나오고, 쇠고랑도 찼었어. 집도 짓지도 못해.

어디 온갖 안 뒤지는 데가 없었어.

두 자루씩 새 거도 아닌 고기를 다 뺏겼어. 뺏기고 나면 아저씨들이

"내가 무슨 소시지를 막 가져다 준 것도 아니고, 무슨 양주 같은 거 가져다 준 것도 아닌데,

일단 팔지를 말고 그때 당시에는 오다가다 샀다고 말하세요 할머니" 그랬지

우리를 불쌍하다 해서 애들 공부를 시켜야 하니까 뺏긴 만큼은 돈을 안 받겠다 하고 그냥 해라 했어.

뺏기고 나면 벌금 물고, 갔다 또 나오지.

그래서 시장에서 세 집 중에 두 집은 못하고,

나만 홀로 남았어. 그렇게 먹고 살았어.

이 동네 사람들이 나보고 붙잡혀 가면서 왜 하냐고 나보고 바보라고 했어.

그러다가 88 올림픽 때 즈음부터 마음놓고 식당을 하게 됐지

시에서도 허가를 내줬지

미국 회사에서 와서 미군 통역관하고 미군하고 한 10명 정도가 와서 고맙다고 하면서 고생 많이 했다고 했어.

걱정 없이 하라고 했어. 그래서  해서 지금까지 해온거야

그뒤로 이 주변에 부대찌개 집이 그래서 여기가 한집 두 집 생겨나더라구.

물론, 서울 시청에서도 오뎅가게가 가장 오래된 것을 알고 있어.

여기 우리 집에는 4대가 다니고 있어.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그 아들과 그 아들이지.

서울시장님은 고생했다고 위로해주시면서

부대찌개 거리 아치도 세워주고 같이 사진도 찍었지.

요번에는 1박2일 촬영 팀이 왔었고,

드라마 식객도 하면서 허영만 씨가 몇 년 전부터 와서 만화도 걸어주시고 하면서 가게가 잘되게 됐지.

허영만 씨가 많이 널리 퍼뜨려 줘서 항상 고마워.


Q : 앞으로 계속 장사를 하실 생각이신가요? 
A : 손자가 할 거야, 대학교 졸업하면. 손자가 나이가 26살이야. 손자가 자기가 가게를 하고 싶다고 했어. 가게는 하는 대로 해봐야지. 

인터뷰에 응해주신 허기숙 할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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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가격은 부대찌개 1인분에 7천원으로 올랐어. 다른 사이트 보고 갔다가 가격이 달라 천원 없어서

울지 말고 미리 미리 지갑에 넣고 다니라구.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재밌는 역사도 알고 꿩도 따고 알도 먹고 도랑치고 가재 먹는

우리, 먹으러 갑니다!

역시!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개봉이 박두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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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2 16:27

60년, 전쟁으로 이뤄진 먹거리 역사 - 의정부 부대찌개 (1)

우리, 먹으러 갑니다
전쟁의 혼돈 속 미군부대에서 피어난 '의정부 부대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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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이 찾아왔는데 무엇을 먹을까 고민해, 하지만 더위를 때울 때는 술 한잔이 최고라며 친구들은 나오라고 하지. 하지만 그게 능사가 아니야. 하지만 삼계탕을 먹기엔 지겹게 느껴진다면 무얼 먹으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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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생각난 얼마전에 본 1박 2일. 요즘 한창 재밌잖아~ 그 곳에서 윷놀이 하며 먹었던 의정부 부대찌개. 얼큰한 국물에 김치와 햄과 라면의 화려한 조화! 아 생각만 해도 몸보신 되는걸? 언능 먹으러 GoGo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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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의정부역오고 나서 부대찌개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해.

그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찾아야하지

저쪽으로 왼쪽으로 보이는 길이 동두천으로 가는 길이야. 저번에 갔던 화평동과 달리 술래잡기처럼 꼭꼭 숨은 의정부 부대찌개를 찾아야하는 미션이 추가 되었지.

길도 건너서 왼쪽으로 쭈욱 걸어가 나오는 첫번째 사거리에 도착해야해

발맞춰서 노래 부르며 걸어 보자구~'오른발~ 왼발~♬'

여기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또 들어가면 드디어 고지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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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드디어 나온 '명물 의정부 찌개 거리' 가리키는 것이지 삿대질이 아님을 이해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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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부대찌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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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조건에 맞물려 다른 가게랑 논다면 원조가 싫어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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얏 여기다~! 찾느라 너무 배고파졌어.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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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잡아야해. 처음 왔지만 처음 오지 않은듯,
연애도 그렇잖아. 처음 한 티가 너무 나면 손해보기 십상이거든.
한 일년 정도 단골인듯 행사해야해.
그래야 단골 어드벤티지를 얻잖아
"어머니~ 오래간만이예요! "
"뭐시여, 첨 보는디?"
"한 2년전에 와서 그런가? 잊으시니 섭섭해요!"
적절한 추임새를 넣으며 앉도록 해.
그럴 포스가 없다면 그냥 Sit down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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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이상의 세월만큼 오래 되었을 것 같은 넓적한 솥뚜껑 냄비, 그리고 가게안 가구, 식기들

기독교에서는 먹기전에 기도하듯, 역사적인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온 우린, 식객의 만화속에 감동 깊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아보았어. 저기 판넬 오른쪽 위의 글이야. 먹으려고 하는데 숙연해지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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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퓨전음식 부대찌개

부대찌개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만들어낸 음식이다.

의정부의 부대찌개 상인 연합이 '의정부찌개'로 이름을 바꾼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백지위에 반듯한 선을 다시 긋듯 생채기를 지우고 새 살로 태어나려는 노력이겠다.

부대찌개를 생각하면 우리의 슬픈 현대사가 함께 떠오른다.
전쟁의 혼돈 속에서 모두가 춥고 배고팠던 시절,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햄으로 찌개를 끓여먹으며
허기를 달랬던 우리들의 서글픈 얼굴이,
그러나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부대찌개는 어느덧 가장 한국적인 음식 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그것이 한국의 힘이 아닐까.

전쟁의 폐허 위에 우리는 장미 한 송이를 가꾸었다.
그것은 절망속에 핀 꽃이었고 고통을 딛고 뻗어나는 푸른 줄기였다.
재건에의 의지는 굴하지 않는 희망이었고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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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을 하다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는 부대찌개.

"어머니~ 말씀좀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허겁지겁 맨발로 뛰어가 맞이하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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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은 딱 두가지야. 소금으로 간을 했다는 묵은 배추김치.

그리고 달달한 맛이 아주 일품인 무짠지.

무와 배추, 단 맛과 짠 맛.

남과 여, 아빠와 엄마,

오른손과 왼손.

-_-; 쓸데없는 비교체험 극과 극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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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남으로 변신한 남자친구 보는듯한 저 눈빛.

실제로 먹을 땐 한수저 한수저 정성스럽게 뜨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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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살짝 뚜껑을 열어봤어.

얏 면이 황금색이야. 워낙 배고프다보니깐 신기루가 10cm앞에서 펼쳐지는 것이

빨리 '뱃가죽'님을 채워줘야 함을 강하게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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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뽀글뽀글,

드디어 영광의 한수저 뜨는 순간.

이럴때는 내가 한 살이라도 더 먹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해.

Lady first 따위는 약육강식 세계에 통하지 않는거다!!!

무조건 나이순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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