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에 해당되는 글 157건

  1. 2008.07.31 한국건설! 왜이리 잘나가는 걸까~♬
  2. 2008.07.31 제 2차 오일쇼크, 열쇠는 여기에
  3. 2008.07.31 [2008.07.31] 문교부 오프활동 일기 - 2
  4. 2008.07.31 [2008.07.31] 문교부 오프활동 일기 - 1
  5. 2008.07.31 한국건설60년! 전쟁폐허를 복국하고 희망을 개척하다!
  6. 2008.07.30 MP3,11개와 문화상품권 110개가 여러분 손에~! 외무부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7. 2008.07.30 서울 지하철 시리즈 : 2. 2호선 처음 계획은 순환선이 아니었다?
  8. 2008.07.30 농림부 컨텐츠 투표 이벤트!
  9. 2008.07.30 서울 지하철 시리즈 : 1. 1호선 건설 과정의 Behind Story♬
  10. 2008.07.30 서울 지하철 시리즈 : Prologue.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
2008.07.31 23:22

한국건설! 왜이리 잘나가는 걸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서 잠깐!! - "우리 기술 세계 최고층 빌딩 세웠다!"

관련 뉴스 기사 보러가기 (YTN 뉴스 링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7.31 23:13

제 2차 오일쇼크, 열쇠는 여기에






  유가는 이렇게 두 배나 올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통령은 암살, 농산물은 흉작.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7%에 이르렀고 경상수지는 대규모 적자,

우리 나라는 60년대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 기록했습니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바닥을 기던

 1980년대 초반 한국 경제





 

정부는 대책을 세웁니다!!!

 


두 가지 목표 아래


규제 철폐, 시장개방, 물가안정 등을 강력히 추진하는데요,

(그 외 재정 긴축, 금융 긴축, 수출지원 축소, 중화학 투자조정 등)


  인기 없고 반대가 심한 정책들을 밀고 나가는 등 기본적인 경제의 틀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실제로 80년대의 개혁이라고 불릴만큼 굉장한 변화

습니다!! 이 때 시작된 변화들(시장경제, 부가가치세, 금리자율화, 개방화, 특혜

금융 철폐)은 현재 한국 경제 현실에서 굳건히 자리 잡아가고 있어요.





 

  82년부터 한 자릿수대(3.5%)의 물가안정에 성공하고

국제 신용도 악화도 회복했는데요~~






10% 이상의 경제성장

3% 미만의 물가안정

 

연 100억불을 웃도는 국제수지 흑자

 






 요렇게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답니다

(그리고 3저 호황 시대를 맞이하는 발판이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똑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7.31 17:44

[2008.07.31] 문교부 오프활동 일기 -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스티커는 연령대별로 다른 색깔이 지급되었습니다~ 어린이친구에게 스티커를 나눠주는 중! >

태극기는 선착순 100분에게 나눠드렸습니다~

태극기 뒷면에는 대학생사이버건국내각 문교부의 블로그 주소가 찍힌 라벨지를 부착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탈인형을 쓴 문교부장관님이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ㅎ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투표판을 들고서 사람들과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는 최웅석장관님의 모습..ㅎ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역시 인형을 쓰니까 멀리서도 눈에 띄어서 홍보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네요~ ㅎ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모두 재밌게 투표해요~~ 건국60주년 기념으로 우리만화인기케릭터 투표를 하고 있습니다 >

남녀노소 정말 다양한 분들이 투표에 참여해주셨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여우와 함께 귀여운 친구들~ ^^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가 중간에 내리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호응이 매우 좋았고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오프활동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모두 여러분 덕분이에요~~~


오늘 문교부 활동에 도움을 주신 이지현님과 최웅석님께 감사드리구요~ 우리 문교부 모두 정말 수고했어요!^^

특히 더운 여름날 탈속에서 땀흘린 장관님께도 박수를ㅎㅎ





..


그리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한 뒤에 찾아오는 음식의 행복!! >_< 늦은 점심도 맛있게 먹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페에서 오늘 투표한 결과 집계를 냈답니다~

서로 색깔을 분담해가며 세고 검토하고~ 여러가지 집계를 내 보면서

회의의 시간을 가졌습니다ㅎ_ㅎ




이렇게 문교부 오프활동은 많은 분들의 참여로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오프라인활동이 큰 행사였는데 잘 마치게 되어서 우리부원들도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헤어질 수 있었답니다.


이번 오프활동 투표 결과는 블로그 만화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구요~

 

이걸로 오프활동 일기를 마치겠습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7.31 17:38

[2008.07.31] 문교부 오프활동 일기 - 1

지난 7월 31일 목요일. 저희 문교부명동에서 큰 행사 하나를 치뤘습니다.



바로 문교부의 가장 큰 오프행사인, 건국60주년 기념 우리나라 인기만화 캐릭터 투표!! 두둥!!



사실 원래 날짜는 그 전 주말에 어린이대공원으로 내정되어 있었지만 가 내려서 장소와 시간을 급히 변경하게 되었어요^^;


이날도 비가 보슬보슬 추적추적 내렸지만, 저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프행사를 강행하기로 했답니다~!



오전에 저희 여자부원들이 먼저 예약해 놓은 인형 탈!을 가지러 갔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너무너무 귀엽지 뭐에요~


뾰롱뾰롱 뽀로로에 등장하는 귀여운 여우 에디~

 훌륭한 과학자가 꿈인 에디는 나름대로 박학다식한 영리한 꼬마여우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록 그 커다란 몸집을 운반하느라 힘은 들었습니다만, 저희의 오프행사를 위해 이쯤이야^-^


약속장소는 명동역 지하! 문교부원들과 오늘 오프행사를 도와주러 오신

 내무부 이지현님과 국방부 최웅석님을 만나 사물함이 있는 장소로 이동을 했답니다~~


그리고 간단한 홍보물을 제작하고 드디어 우리 장관님께서 인형탈을..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홍보용 포스터 붙이는 중~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짐을 사물함에 넣는 중이에요! 여우 에디가 완성되기 직전!!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짜잔!!!!!!!!!!! 정여우님 등장~~>_< 앞이 안보이는 여우를 위해 끌어줘야 해요;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행사를 진행할 곳으로 이동중입니다~ 여우는 벌써부터 관심집중!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리 도착하신 촬영팀 분들과 만났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격적인 오프활동 하기 전 문교부 단체사진을 남깁니다~ㅎ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저희의 바람과는 반대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첫 투표를 시작한 친구들~~ >


문교부의 오프활동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7.31 16:34

한국건설60년! 전쟁폐허를 복국하고 희망을 개척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건설60년! 전쟁폐허를 복국하고 희망을 개척하다!

 

자료 출처 :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06/e2007061716365569550.htm

사진출처:
차례로 위->아래 좌->우
1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06/e2007061716365569550.htm
2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06/e2007061716365569550.htm
3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06/e2007061716365569550.htm

1호선개통기념식 : http://cafe.naver.com/gunjacha/148
소양강떔완공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319629
연대별주요공사:  http://economy.hankooki.com/lpage/estate/200706/e2007061716365569550.htm

와우아파트붕괴사고현장: http://blog.naver.com/joymkw?Redirect=Log&logNo=120006856521
삼풍백화점붕괴사고현장: http://nemo.naver.com/nemo/29008/10
성수대교붕괴사고현장:  http://blog.naver.com/tmdruadlek01?Redirect=Log&logNo=50030392914

88올림픽잠실주경기장: http://cafe.naver.com/breezeurlife/595
인천국제공항: http://cafe.naver.com/cafechogo/5071
상암월드컵경기장: http://blog.naver.com/jej04?Redirect=Log&logNo=120009684891

현대태국파타니건설현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5&aid=0001968093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7.30 18:13

MP3,11개와 문화상품권 110개가 여러분 손에~! 외무부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대학생 사이버 건국내각에서, 여러분께 푸짐한 선물을 드립니다.

"위대한국민, 기적의 역사" 라는 필치 아래, 다양한 건국60년간의 성과를 이야기해보고, 알려드리는 우리 외무부팀 가온누리는

오늘도 멋진 포스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사이버 건국내각 11개 각 부서를 방문하시고, 각 부서의 베스트 4 포스트를 보신 후!

응원 댓글을 달아주시면! 추첨을 통해 MP3,11개와 문화상품권 110개가 여러분 손에~!

외무부 블로그를 방문해주시고, 많은 응원 날려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응원 댓글은 이 곳에 !!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7.30 17:33

서울 지하철 시리즈 : 2. 2호선 처음 계획은 순환선이 아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 지하철 시리즈

 

2. 2호선 처음 계획은 순환선이 아니었다?



1974년 어느 날, 안국동의 한 한식집에서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구자춘

홍익대 도시계획과 교수 김형만이 만났다.

김 교수는 서울은 이제 4대문 중심의 단핵도시에서

도심, 영등포, 영동(강남)을 중심으로 하는

3핵도시로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구 시장은 그 의견을 깊이 받아들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 계획된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노선)


앞서 양택식 시장 때 1호선을 계획하면서

2-5호선의 노선 역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영등포-왕십리까지의 구간으로 확정되었던

2호선 노선을 구자춘 시장은,

3핵을 중심으로 서울이 발전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강북 도심-영등포-영동(강남)-잠실-왕십리를 오가는

순환 노선으로 변경해버린다.


"구로공단 앞은 통과해야겠지."

"서울대 앞도 지나야겠지."

"대학가 앞이니 신촌도 지나야지."

1975년 2월 초순, 대통령 연두순시를 앞둔 어느 날,

도시계획과장과 지하철건설본부장을 시장실로 부른 채,

구자춘 시장은 색연필을 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서울시 지도에 선을 그어 나가기 시작했다.

20분 후, 서울시 지도 위엔

둥그런 형태를 띈 노선이 완성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변경된 서울 지하철 2호선 노선)


단 20분만에 단일노선이 순환노선으로 바뀌어버렸다.



본래 열차 노선은 단일노선이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때쯤,

순환노선이 만들어지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당시는 겨우 막 1호선이 건설된 시점.

이러한 상황에서도,

구 시장이 강하게 주장하는 '순환노선 기획안' 이라는

이 엄청난 프로젝트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고,

1978년 3월 9일, 이 계획대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착공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호선 건설 사진.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영상에서 캡쳐)


그리고, 순환 계획에 따라 차례로 노선이 건설되기 시작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을지로-성수-신설동-종합운동장-교대-서울대입구-시청의 순환선.



도심을 통과하는 을지로선까지 건설하자,

1984년 5월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시공식이 거행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左: 시공식 때 시청역을 달리는 2호선. 右: 2호선 시공식 때 참석해서 축하하는 대통령.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순환선인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전 구간 48km가 순환선으로 완전히 개통되어,

시민들의 교통이 한결 편리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청 로터리 앞과 서울시청에 걸린 2호선 전 구간 개통 축하를 알리는 표지판.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지하철 노선 선정과 계획은 많은 전문가의 동의를 구하며

신중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찌 보면 너무 대충 계획된 노선이겠지만,

현재 2호선의 역들은 서울의 주요 지역모두 통과하고 있고,

한강 이남 지역 인구가, 특히 영등포-구로-관악-강남에서만

1266000명이 늘어난 사실로 보아,

3핵도시론과 지하철 2호선이 서울에 끼친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실제로 2호선 건설로 인해,

서울의 4대문 내에만 집중되었던 도시 기능인구

점차 다른 지역으로 분산되었기 때문이었다.



지하철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면서,

지하철뿐만이 아니라 지하도 역시 같이 건설되었다.

이곳은 지금도 서울의 중요 상업지역으로 이용되는데,

을지로 지하에 있는 대략 3km가 넘는 지하 쇼핑센터

그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본인은 그곳에서 길 잃어버린 적이 정말 많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2호선 건설 때 같이 건설된 을지로 지하보도.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이렇게 건설되기 시작한 지하도가... 현재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부터 차례로 을지로, 영등포,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사진.

출처 을지로 : http://wow.seoul.go.kr/wow/photo/photo_thum_view.jsp?num=214024

영등포 : http://wow.seoul.go.kr/wow/photo/photo_thum_view.jsp?num=4426

고속터미널 : http://wow.seoul.go.kr/wow/photo/photo_thum_view.jsp?num=4698)


이러한 모습으로 변해, 상업지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7.30 17:21

농림부 컨텐츠 투표 이벤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학생사이버내각농림부

 그들의 '농담'을 들어보세요! 


지난 60년간 우리의 농촌, 산림, 어촌, 식품 등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변화는 끊임없이 '즐거움' 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대학생사이버건국내각 농림부는 즐거움을 키워드로

풍요의 기적,

생각의 기적,

생활의 기적

3가지 기적의 역사를 소개하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작은 기적과 숨은  일꾼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예전보다 먹을 것이 많아졌어요.

                   이것저것 따져보고 먹어야죠.

                           이제 농촌으로 놀러가요.



이러한 이야기가 농담에 있습니다.

                                                                                                     

아래 4개의 컨텐츠 중에 '최고의 컨텐츠'를 하나만 뽑아
현재 포스트에 응원댓글을 달아주세요~

푸짐한 상품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_<

바로바로 CLICK CLICK~

댓글도 바로 아래 gogo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7.30 17:19

서울 지하철 시리즈 : 1. 1호선 건설 과정의 Behind Story♬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 지하철 시리즈

 

1. 1호선 건설 과정의 Behind Story♬




자, 이제 드디어!

1971년 4월 1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서울역-청량리 구간의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 지하철 착공식. 출처 : 대한민국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 http://www.visionkorea60.go.kr)

경인(서울-인천), 경수(서울-수원) 기공식 역시 같은 해 4월 7일 인천 공설운동장에서

화려하게 거행되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이라면,

남영-서울역, 청량리-회기 구간에서는 잠시,

지하철은 멀쩡히 잘 달리고 있는데

지하철 내의 거의 모든 전등이 꺼지는

기이한 현상 을 체감할 것이다.

그 현상의 해답 역시, 이번 시리즈에 있다.




앞 시리즈에서,

철도청은 서울 외곽 지역 철도를 전철화 하는 공사를 맡았고,

서울시는 도심 지하철 구간 지하철 건설을 맡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데...

철도 전철화는 25,000볼트의 교류 전원을 사용해야만 했다.

지하철 건설은 1,500볼트의 직류 전원을 사용해야만 했다.

철도청의 기존 철도를 지하철에 맞춰 1,500볼트로 하면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 문제였다.

반대로 지하철을 철도에 맞춰 25,000볼트로 하면

전화선에까지 전류가 흘러들어 통화 장애  가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전류 방식이 다르다고 중간에 지하철을 갈아타게 만든다면

시민들의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지하철은 직류로, 철도는 교류로 하기로 하고

열차는 직류/교류 겸용으로 달리게끔 결정하였다.

물론 직/교류 겸용 열차가 단용 열차보다는 단가가 훨씬 비쌌지만,

시민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야 가격쯤은 감수해야 하는 법...

때문에 전류가 바뀌는 남영-서울역, 청량리-회기 구간에서는


류가 일치하지 않아 일시적으로 열차의 전원을 끈다.



그래서! 열차 내의 불이 모두 꺼지는 것이다.

그리고 열차만 관성으로 계속 주행되는데,

이를 사구간(dead section)이라 한다.

전류 방식이 바뀐 다음에는, 다시 전동차의 전원을 켠다.

전류 문제는 해결했으니 이제 공사 시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역 앞 공사사진. 멀리 당시 서울역 모습이 보인다. 출처 : 국가기록원 영상에서 캡쳐)




지하철(地下鐵)이지만 1호선은 그리 깊이 굴착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지하에서 터널식으로 뚫지 않고 지상에서 바로 파고 들어가는 방식을 채택했다.

공사비가 적게 들고 공사 기간도 단축되었지만

시내 곳곳에서 교통 혼잡같은

시민들의 엄청난 인내와 희생을 불러왔다.

특히나 70년대에는 서울이 개발되지 않아

서울역-종로 구간이 서울의 가장 혼잡한 지역이었을 터...

안 그래도 혼잡한 구역에서, 시민들의 불편함은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근대화와 앞으로 있을 생활의 풍요를 위해

시민들은 정말 고맙게도 공사의 불편함을 참아주었다.

어찌 보면 시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이라 볼 수도 있었겠지만,

보다 발전될 나라를 위해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준

당시 시민들에게 감사를.




서울 지하철은 일본의 동경과 오사카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 시도였다.

1972년, 지하철 공사가 진행되던 당시,

한국의 GNP겨우 300달러에 불과했다.

국민 한 사람이 일년에 대략 30만원 정도만 벌던 시기에,

우리나라는 지하철 건설이라는 대업을 이루어낸 것이다.

시민들도 지하철 건설이 신기해 구경하고 싶어하였고,

건설본부는 지하구간 공사 현장을 시민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호선 공사 시기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 영상에서 캡쳐)

(혹시 그때 구경해보신 분 계신가요? )



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서울 지하철이 상당한 이슈가 되었던 바,

대만의 교통부 장관공사 현장을 시찰하기도 했고,

시운전 때에는 하와이 호놀룰루 시장인도의 외무부 장관도 시승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운전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 영상에서 캡쳐)




1974년 8월 15일...

드디어 서울역-청량리 구간,

서울 지하철 개통!

이 구간을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13분.

지하철 건설은 실로, 진정한 대중교통시대의 막을 열었다 할 수 있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그날은 애통하게도 장충동 국립극장 광복절 행사에서

당시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운명한 날이었다.

그리하여 개통식에는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한 채

국무총리와 대법원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통식 사진. 출처 : 국가기록원 영상에서 캡쳐)


비록 개통식 날 비극적인 일이 있었지만,

1호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서울에서

도심 구간의 확실한 교통수단 역할을 해왔으며,

대한민국을 발전하게 만든 주 원동력인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었다.




(위 컨텐츠는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 2 (손정목. 한울)' 를 토대로 구성했습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2008.07.30 17:13

서울 지하철 시리즈 : Prologue.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 지하철 시리즈

 

Prologue.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




1955년...

서울의 인구는 대략 157만 명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70년...

서울의 인구는 대략 553만 명으로 증가했다.

인구의 증가는 무엇을 의미할까?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면 개인의 업무량과 교제량이 증가하면서

필연적으로 교통 인구  가 증가하게 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서울의 인구에 따라

서울시는 1965년 그 이름도 찬란한(?)

'시정 10개년계획안' 을 발표하게 된다.

이 계획에서 서울시 관료들은 제 1차적으로

14.88km 길이의 지하철 노선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다.

당시 서울 시장이던 김현옥은 교통난 완화책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서울시의 온갖 교통도로를 건설 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다니던 전차를 없애버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60년대 서울을 가로지르던 전차. 사진출처 : 광화문 연가 (이영미. 예담) )


당시 전차는 성인 남자가 달려가면 잡아탈 수 있을 정도의 속력이라

대도시의 교통수단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별명이 불도저이던 김현옥 시장마저도 지하철 건설마저는 쉽게 구상하지 못하는데

이유는 짐작했겠지만... 바로 '돈'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음 임기를 맡게 된 양택식 시장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하철 건설만은 하리라고 굳게 다짐한다.

그리하여 양택식 시장은

"서울의 교통난을 해결하는 길은

조속한 시일 내에 지하철을 건설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면서,

아주 강력하게 본인의 의사를 주장한다.




하지만 세상 일은 쉽지 않은 법...

그 당시 우리나라의 예산은 정말 바닥을 기고 있었고 (-_-;;)

따라서 외국 차관이 필요했던 바, 차관을 빌리려면 경제기획원 장관의 승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경제기획원 장관부총리 자리를 맡고 있던 김학렬

양택식 시장의 지하철 건설 계획을 듣자마자

단 한 마디로 그 계획을 일축한 후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와 같이 보고한다.



"각하, 서울에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



당황스러운가?

당시 그 보고를 들었던 박정희 대통령 역시 이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당시 김 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현 단계는 아직도 긴축경제가 필요하다, 안 그래도 인구 증가가 격심한 서울에 지하철 건설 같은 대규모 건설을 실시하면 인구의 격증 현상이 가중되며 주택난과 교통난도 훨씬 심각해진다, 아직 한국은 GNP가 200달러밖에 안 되므로 지하철은 투자의 우선순위가 되지 못한다..."

와 같은 논리정연한 말을 기관총 쏘아대듯 빠른 템포로 보고했지만,

대통령의 뇌리에 남는 말은 오직 하나.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

 


당시 버스 위주 시내교통한계  에 다다른 탓에

새로운 교통수단이 필요한 때라는 것은 대통령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

"지하철을 건설해야 서울의 교통난이 완화된다" 라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 중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갈등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당시 주일대사였던 이후락이 잠시 한국에 귀국했다.

평소 이후락 대사를 신임하던 박 대통령은 지하철 건설에 관해 의견을 물었고,

이후락 대사는

"지하철 건설은 세계적인 대도시의 공통된 추세"

라며 지하철 건설이 시급하다 주장한다.

사실이 그러했다. 당시 선진국의 대도시에서 지하철이 없는 도시는 없었다.

이제 대통령은 오히려 경제기획원 장관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부는 1970년 제4차 한일 정기 각료회의에,

서울 지하철 건설에 일본이 경제적, 기술적으로 협력해주길 요청했고,

일본은 그에 찬성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우리나라의 지하철 건설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금전적 문제였지, 기술적 문제는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의 토목, 건설 기술어느 정도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일본 정부는 차관 제공의 경제적 타당성, 일본 기술진의 협력 범위,

공사 지도 범위 등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에 교통조사단을 파견했다.

그들은 처음엔 한국의 토목기술 수준이 미흡한 상태라면

일본 기술진도 대거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찰 이후 토목, 건축기술에 관해서는

일본 기술진이 개입할 여지가 없음

확인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제,.

1. 서울역-종로-청량리를 연결하는 9.8km 구간 지하철 건설,

2. 서울역-인천, 서울역-수원, 용산역-성북 구간은 기존 철도를 전철화해 외곽 전철과 도심 지하철 연결,

3. 1974년부터 운영 계획. 도심 지하철구간은 서울시 담당, 외곽 전철구간은 교통부 담당.

을 축으로 하는 大 지하철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위 컨텐츠는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 2 (손정목. 한울)' 를 토대로 구성했습니다)


신고
Trackback 0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