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26 17:43

대통령과 봉고차의 숨겨진 사연 ♩사물로 보는 외교

사물로 보는 대한민국 외교 60년] - ① 대통령과 봉고차의 숨겨진 사연

 

자동차 박람회와 같은 대한민국의 도로.

 

<서울 시내 도로/ 와우 서울>


도로 옆을 걷다 보면 눈요기가 되는 멋진 차량들이 가끔 지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나다녀도 눈 길을 끌 수 없는 비운의 자동차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봉고차.


<출처/ 네이버 자동차>



모두의 주목을 받는 so coooool 한 자동차는 아니지만,

우리가 생활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시는 봉고차님.


전국 유치원생들의 통학시 안전을 책임지고 있으며

중고등학생들이 학원 갈때고,

아플때도 타게 되며, 경찰들도 출동시에 애용하는 차죠.


      필요에 의해서는 기꺼이 타겠지만 사랑은 못 받는 봉고차, 그 이유가 뭘까요?



필자가 친구 세명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A양: 디자인이 투박하자나, 봉고차는 디자인 한개 아닌가?

B군: 큰 학원 로고 붙이고 다니는데 좋아할 이유가 어디있어...

                     

                                        C양: 이름이.....쫌....봉고, 봉고, 봉고...





봉고


이 봉고라는 이름의 유례는 건국 후 약 30년 뒤, 남 과 북의 대립이 가장 치열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5년 무더웠던 7월, 온 국민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국가의 큰 행사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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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행사/ 역사스페셜 2003.6.7. 방영분>


 

건국 기념일도 아니었고 대통령 취임식도 아니었고 전쟁에 이긴것도 아니었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엘 하지 오마르 봉고 온딤바,

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의 작은 나라 가봉의 대통령이 1만 8천km나 떨어진 대한민국을 방문한 것이다.


 

<가봉의 대통령 El Haji Omar Bongo/ 동아일보>


봉고 대통령은 1960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가봉의 대통령으로 1967년부터 지금까지 40년간 재직 중이다.

지난 2005년에 16번째로 헌법을 고친 뒤 대통령에 당선돼 현재 7년 임기 중에 있으며

지난해에 이미 차기 대선(2012년) 출마를 선언해 놓은 상태다.

40년 장기 집권에도 불구하고 내전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다수의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가봉을 안정적으로 통치하면서

아프리카 지역 분쟁 해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1975년 봉고 대통령의 방문 당시 가봉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대한민국과 특별한 인연도 없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대통령을 위해

한국 정부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환영 행사를 준비한다.

 

환영 리셉션은 경복궁 안의 경회루에서 화려한 디너파티로 이루어 졌고 매번 행사마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함께 했다.

뿐 만 아니라 평소에 건강에 관심이 많은 봉고 대통령을 위해 경희의료원을 방문하여 

보약도 지어 주었으며 그가 맘에 들어하자 2년 후에는 한의사들을 가봉으로 보냈다고 한다.

한국대학의 박사학위를 원하자 바로 국내 석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대 박사학위를 주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7월달 스케줄은 온통 가봉의 대통령을 위해 짜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의 주인공 봉고차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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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 출시/ 네이버 블로그- 카즈의카즈스토리>


환영행사
 직전에 기아자동차에서는 9~12인이 탑승할 수 있는 신개념의 자동차를 선보이게 된다.

 이 차는 학원, 교회 등 여러 수의 사람을 수송해야 할 필요가 있는 국민에게는 최고의 발명품이었고

 출시 이후에는 큰 인기를 거둬서 기아자동차의 경영난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봉고차의 이름이 바로 가봉의 대통령 봉고에서 유례된 것이다.


갖 환영 행사로도 부족했는지 마침 출시된 자동차에 "봉고"라는 이름을 붙혀 주었다.

몇년 전 봉고 대통령이 네 번째로 방한 했을때 "한국의 한 미니 밴이 나의 이름으로 붙혀졌다." 라고 밝혔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은 왜 출시한 자동차에 봉고라는 이름을 붙혀 줘야 했을 정도로 봉고 대통령을 환영해야 했던 것일까?

가봉이라는 이름도 잘 모르는 나라에서 온 대통령의 환영 행사는

그 전 미국의 포드 대통령이 왔을때 보다도 성대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봉고 대통령 방한 기념 우표/ 머니투데이>



당시 급박하게 돌아갔던 국제 정세와 대한민국 외교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1960년대는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세계 열강으로 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국가를 수립했던 시기이다.

 

<아프리카 전도/ 택사스대학교 도서관>


이들 신생국들은 미국과 소련의 만들어 놓은 냉전체제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Group 77이라는 비동맹국 모임을 만든다.

77개 국들이 대부분 UN에 가입 하면서 그들이 UN 안건 처리의 새로운 핵심으로 부상하게 되는데.

미국과 소련도 이들 신생국들을 각자의 진영으로기 위해 노력하지만

더욱 더 애타게 동맹맺기 작업을 시작한 두 진영이 바로 남 과 북 이였다.



1970년대 당시 아프리카의 17개 나라가 중립을 선언했기때문에 자신의 편으로 끌기 위한 외교적 노력은 치열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봉고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통치 방법으로 선택한 대통령이었고

대한민국에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때의 봉고 대통령의 방한은 중립국인 가봉을 대한민국의 지지자로 만들기 위한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이러한 남북의 외교전쟁은 둘의 화해모드가 시작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19개에 달했던 아프리카의 공관들이 몇개 만을 남겨두고 모두 통폐합 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는 대사관 한사람만 지키는 1인 공관이 많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이익이 적은 나라에서는 공관들을 모두 철수 시켰다."

<김승호/ 한국 외교를 이끌어 온 외교관 33인의 회상 중 아프리카 공관 창설과 폐쇄 부분/ 여강출판사>




60년의 역사 동안 남북은 긴 외교 전쟁을 진행했지만 어쨌거나 지금  흐름은 화해의 역사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기나긴 소모전은 우리 민족에게만 상처로 남은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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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봉의 Renovation 백화점/KBS 역사스페셜 2003.6.7. 방영분>


"Renovation" 이 무엇인가. 우리말로 번역하면 유신이 된다. 가봉 대통령 일행이 백화점에 큰 관심을 보이자

한국의 건설 업체가 가봉으로 가서 건물을 지어주고 유신백화점이라고 이름을 붙혔다.


그로부터 몇 십년 후, 가봉에서 제일 높다는 이 건물은 거의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투자가 끊기자 망해 버린 것이다.








예전과 같은 환영 행사도 없을 것이고 투자도 끊겼지만....




우리의 봉고는 오늘도 달린다.


<출처/ 네이버 자동차>


http://blog.naver.com/mofa60

 

 

Written by 대학생 사이버건국내각 외무부 정책보좌관 최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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